이 땅에서 수제 맥주를 만든다는 것은

국내 수제 맥주 역사를 이끌어온 브루마스터 김정하를 만나 수제 맥주 문화의 변천과 그간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2004년에 브루펍brewpub ‘바네하임’의 문을 연 김정하는 우리나라 수제 맥주 역사의 산증인이다.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brew master이자 국제적인 맥주 경연 대회 참가가 막혀 있던 국내 브루어brewer들과 함께 불합리한 법규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수제 맥주 판매 수익금을 유기견 협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오랜 준비 끝에 경기도 남양주에 새로운 맥주 공장을 열고 생산 준비를 마쳤다. 그의 시선으로 2019년 현재 우리의 수제 맥주 문화를 조망해본다.

Q. 맥주를 몰랐던 스물다섯 젊은이가 자신이 자란 동네에 브로이하우스를 열었다. 수제 맥주와 그 지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김정하_요식업에 관심이 있어 대학도 조리과에 들어갔고 편입을 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취업하기 전 1년 정도 놀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신문에서 맥주 만드는 기계 광고를 보신 아버지가 ‘이 기계로 만든 맥주를 먹으러 가보자’고 제안하셨다. 원래 맥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거절하다가 결국 가게 되었는데, 수제 맥주는 내가 알던 맥주하고는 다르게 맛이 좋았다. 나고 자란 공릉동에 문을 연 것은 내가 요식업 경험이 없어서 상업지구에 차리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경험을 쌓기 위해 5년 정도만 운영하려 했는데, 결국 지금까지 하고 있다.

바네하임이 만드는 프레아(기본적인 에일), 란드(레드에일), 노트(스타우트) 맥주(왼쪽부터).

Q. 한 곳에서 15년 넘게 수제 맥주를 만들며 손님을 맞은 감회가 궁금하다.

김정하_15년이 지나도 바네하임은 처음에 생각했던 콘셉트 그대로의 모습이다. 손님들이 편하게 슬리퍼 신고 오고, 근처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지나가는 길에 들리고, 딸이랑 어머니가 와서 오순도순 한잔하기도 한다. 집 앞에서 헤어지기 아쉬워 맥주를 한잔하던 연인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와 맥주를 마시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자란 강북의 한 동네에 수제 맥주를 마시는 공간을 만들었고, 그곳을 맛있게 이용하는 문화가 있어 좋다.

Q. 동네에서 작은 맥주 축제를 열어도 좋을 것 같다.

김정하_안 그래도 몇 년 전부터 노원구청과 얘기하고 있지만 예산 문제도 있어 쉽게 허가가 나지 않는다. 내년에는 꼭 성사시키고 싶어서 구청장과 시의원도 만나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Q.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다. 브루마스터가 무엇인지 알려달라.

김정하_경력이 10년 이상은 되어야 하는 맥주 제조자다. 맥주 양조의 전반을 관리·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자격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국내에서 취득하는 절차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외국에서 관련학을 공부하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관련업에 종사하면 된다.

Q.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 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수제 맥주를 만들어 판매하는 브루펍brew pub 숫자가 증가해왔나?

김정하_2005년에 브루펍 숫자가 가장 많았다. 계속 그 수가 줄어 2013년에는 50개 정도만 남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점점 증가해 현재 120여 개 된다.

Q. 그사이 바네하임은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김정하_우리나라에는 반주 문화가 있다. 안주가 곁들여져야 술을 좀 더 편하게 마시는 편이다. 수제 맥주와 함께 먹는 음식을 개발해 메뉴를 구성한 것도 바네하임이 명맥을 이어온 요인 중 하나다.

Q. 해외의 맥주 경연 대회에 바네하임의 수제 맥주를 출품하기에 앞서 심사위원으로 먼저 활동했다.

김정하_국제 맥주 경연에 참가가 늦어진 것은 출품을 위해 맥주를 국외로 반출할 수 있는 법이 2015년에야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에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비어컵’에 답사를 간 적이 있다. 엑스포와 함께 열리는 이 대회에서는 수상작들을 마셔 볼 수 있는 갈라쇼와 디너쇼가 있다. 이곳에서 우연히 일본수제맥주협회장을 만나 수제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게 됐다.

김정하 대표는 양질의 수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최근 새 맥주 공장을 마련했다.

Q. 심사위원으로 경연에 참가한 소감을 듣고 싶다.

김정하_부담감과 책임감이 컸다. 맥주를 만드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데, 나로 인해 수상의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책임감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보다 먼저 시작한 심사위원들로부터 배운 것도 굉장히 많다.

Q. 국제 맥주 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했다. 2016년에는 제주의 벚꽃으로 만든 벚꽃 라거, 올해는 쌀을 재료로 한 도담도담으로 상을 받았다.

김정하_모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성을 쏟아 탄생한 맥주들이다. 수상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하니 부담이 더 커진다. 대회에 꾸준히 출품을 이어가면서 상을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맥주도 유행이 바뀌기 때문에 좋은 평가로 수상한 맥주가 몇 해 지나 탈락할 수도 있다. 좀 더 새롭고 좋은 맥주를 계속 개발하고 만드는 것은 나에게 의무와도 같다.

Q. 현재 구상하고 있는 맥주가 있나?

김정하_한국형 고제gose를 만들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대표적인 맥주로 소금이 들어간다. 신맛이 굉장히 강하고 짠맛도 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막걸리에도 산미가 있는 것처럼 적당한 산도를 지닌 한국형 고제를 만들고 있다. 고제에는 원래 밀이 들어가지만 한국형 고제에는 밀 대신 쌀을 넣어 만들었다. 계속해서 맛을 보고 있다.

김정하 대표는 국산 쌀 등을 활용한 한국형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다.

Q. 수제 맥주 생산과 판매를 위한 제도적 어려움이 개선되고 있다.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정하_식재료 같은 첨가물 제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해도 되는 여러 재료들이 있는데 이 첨가물 제한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만들 수 있는 맥주를 우리나라에서는 못 만든다. 맥주 양조에 대한 시설 기준도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한다. 천 리터짜리 탱크 다섯 개는 있어야 브루어리를 만들 수 있다는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는 소규모 브루어리를 만들 수 없다. 수제 맥주 문화의 확산을 정책이 막고 있는 셈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에는 그런 걸림돌이 없다.

Q. 수제 맥주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경쟁도 더 치열해지지 않을까?

김정하_이미 경쟁은 치열하다. 마트에서 맥주를 파는 대규모 브루어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 같다. 가격을 기준으로 매기던 주류세가 용량 기준인 종량세로 바뀌게 되면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지면서 가격 경쟁이 붙을 거다. 바네하임은 규모가 그만큼 크지 않아서 가격 경쟁이 걱정이다.

Q. 수제 맥주 창업을 꿈꾸는 청년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김정하_수제 맥주를 시작하려면 시설 자금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처음에는 욕심내지 말고 작게 시작하고, 펍pub도 같이 운영하는 게 좋다. 유통에만 매출을 의존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청년 창업을 위해서라도 소규모 양조시설로 브루펍을 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양조장을 늘리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지역에서 맥주 페스티벌을 자유롭게 열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청년이 맥주 분야에서 창업할 수 있는 여러 길 중 하나다.

Q. 수제 맥주를 접하지 않았거나 수제 맥주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유의 말이 있는가?

김정하_당장은 입에 맞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 한 번 정도 더 접해보면 좋겠다. 입에 맞지 않는 것은 그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니 말이다. 여러 식재료를 접해본 사람은 새로운 음식도 잘 먹는다. 다양한 종류의 맛을 열린 마음으로 즐기면 좋겠다.

글 | 편집팀
사진_김대진 | 지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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