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천, 소주의 변화

희석식 소주는 ‘한국인의 술’이다. 20세기 초 탄생해 산업화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희석식 소주 제조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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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 가서 ‘소맥’을 마시자는 의견이 나오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희석식 소주를 마시지 않으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희석식 소주’는 발효라는 인간의 위대한 발견에서 나온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희석식 소주는 알코올 도수 94°의 주정酒精에 물과 향료를 희석해 만든 술이다. 전통 소주는 누룩을 발효해 밑술을 만들고 이 밑술을 증류해 만든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을 사용하니 굳이 밑술인 발효주를 만들 필요가 없다. 밑술 대신 원료에 발효균을 넣어 숙성시킨 다음, 술지게미를 거르지 않은 원액을 연속 증류기에 넣어 만든다.
연속식 증류기는 1826년 스코틀랜드의 클라크매넌셔Clackmannanshire에 살던 로버트 스타인Robert Stein이 발명했다. 재래의 단식 증류기와 달리 연속 증류기에서는 알코올 도수 94°의 주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주정에는 발효주의 독특한 향기가 나지 않는다. 주정은 그냥 마시면 치명적일 정도로 독하기 때문에 물을 섞어야 한다. 물을 섞었기 때문에 이름이 희석식 소주다.

신식 희석식 소주, 전통 소주를 대체하다

1895년경 연속식 증류기는 일본으로 수입되었고, 1920년대 조선에 술 공장을 운영하던 일본 업자들이 이 시설을 들여왔다. 일본에서는 연속식 증류기로 내린 소주를 ‘신식 소주’라고 불렀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신식 소주가 재래식에 비해 훨씬 ‘문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평양의 유지 이기찬李基燦은 1928년 10월 2일자 <동아일보>에 ‘평양은 공업도시라 하야 과연 양말, 호모護謨(고무), 소주 등은 평양의 소산所産’이라는 글을 실었다. 말 그대로 희석식 소주는 현대적 공업이었던 것이다.

전통 증류식 소주는 ‘소주고리’라고 하는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만들었다.
전통 증류식 소주는 ‘소주고리’라고 하는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만들었다.

고구마를 주원료로 만드는 신식 소주는 ‘무수無水 알코올’과 관련이 있다. 고구마 무수 알코올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2년부터 일본에서 석유 대용품으로 개발을 시작해 1937년경부터 실용화의 길을 걸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1936년부터 신의주와 안동 등지에 톱밥으로 무수 알코올을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섰다. 제주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주정용 고구마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 뒤 1936년 6월 고구마를 원료로 한 무수 알코올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제주도의 무수 알코올은 채산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결국 낮은 채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제주도의 무수 알코올 회사에서는 1938년 말부터 고구마 무수 알코올을 주정으로 삼아 신식 소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고단함을 달래준 소주 한 잔

고구마를 원료로 한 신식 소주의 생산은 1960년대 들어와 꽃을 피웠다. 1964년 12월 정부는 미곡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주정과 소주 제조에 백미와 잡곡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내렸다. 또한 외환을 아끼기 위해 주정의 또 다른 원료였던 당밀의 수입도 금지했다. 이때부터 고구마 주정의 희석식 소주가 생산·판매되었다. 여기에 이 무렵부터 시작된 이농 현상은 일제강점기 이후 남한에서 줄기차게 소비되었던 막걸리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해 노동자가 되었고, 고된 노동 후에 그들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술은 막걸리가 아니라 값싸고 독한 희석식 소주였다. 희석식 소주는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시달리던 국민으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다.

희석식 소주는 쌀 대신 곡물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과 산업화와 맞물려  1960년대부터 ‘한국인의 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희석식 소주는 쌀 대신 곡물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과 산업화와 맞물려  1960년대부터 ‘한국인의 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희석식 소주는 쌀 대신 곡물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과 산업화와 맞물려  1960년대부터 ‘한국인의 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희석식 소주는 쌀 대신 곡물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과 산업화와 맞물려  1960년대부터 ‘한국인의 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희석식 소주는 결코 좋은 술이 아니었다. 고구마·밀·감자·쌀 등에 들어있는 녹말을 발효시켜 만든 주정은 보통 94% 이상의 순 에틸알코올과 인체에 해로운 메틸알코올·아밀알코올·부틸알코올 등의 퓨젤오일이 섞여 있다. 질이 좋은 희석식 소주는 이 퓨젤오일의 함량이 아주 낮은 주정에 물을 섞어 도수를 25~30도 정도로 내린 술이다. 당시 주세법에서도 이 퓨젤오일의 함량을 일정하게 제한했지만, 문제는 퓨제오일을 제거하는 데 화학약품을 쓴다는 점이었다.
1973년 희석식 소주에 첨가된 과망간산가리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같은 해 1월 소주 첨가제가 인체에 해롭다는 세계보건기구의 통보를 받은 보건사회부에서는 ‘소주 등 주류 제조용 첨가물인 과망간산가리, 살리실산의 사용 금지’를 조치했다. 하지만 그 대체물이 문제였다. 희석식 소주업체에서는 ‘액티브 카본active carbon’이라는 활성탄소를 대체물로 사용했다. 이것은 당액·술·유지의 탈색이나 탈취제로도 쓰이는 화학물질이었다.

희석식 소주는 품질을 높여 21세기에도 인기

오늘날 한국의 희석식 소주 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 이상 퓨젤오일 함유 문제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순도 높은 주정을 생산해 희석식 소주를 만들고 있다. 한때 희석식 소주에 첨가했던 인공감미료 사카린도 유해물질로 판정받은 뒤 더 이상 넣지 않는다. 그 대신 인체에 무해한 천연감미료를 사용한다. 또한 활성탄소는 더 이상 퓨젤오일을 제거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탈취제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2000년대 이후에는 희석식 소주의 주정을 만드는 데 한국산 곡물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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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도시화 시대의 고충을 달래준 희석식 소주는 꾸준히 품질을 높여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발효주로 밑술을 만들고 그것을 증류한 ‘민속주’ 소주가 시중에 나왔다. 2000년대부터 몇몇 주류업체에서는 순 곡주 발효주를 밑술로 하여 만든 순수 증류주를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당들은 도수가 낮고 약간 달콤하면서 값싼 희석식 소주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형업체의 맥주가 맛이 없자 그 대안으로 ‘소맥’까지 스스로 개발해냈다. 한때 한국의 남성 주당들은 거액의 양주 마시기에 자신의 사회적 위세를 걸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국산 순수 증류주는 값이 비싸고 독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멀리한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격변기를 살았던 이색李穡, 1328~1396이 ‘술 속의 영특한 기운만 있으면 어디에 기대지 않아도 되네, 가을 이슬처럼 둥글게 맺혀 밤이 되면 똑똑 떨어지네. (중략)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표범 가죽 보료 위에 앉아 금으로 만든 병풍에 기댄 기분이네’라고 했던 술은 순수 증류주였다. 한국의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인의 ‘소주=희석식 소주’라는 인식을 떨쳐버릴 방안은 없을까? 이것이 고민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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