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서 인생을 배우다

파도에 몸을 맡기며 사는 이들이 있다. 매 순간 다른 물결 앞에 인생을 배운다는 서퍼 김진수를 만났다.

서핑surfing은 파도를 타면서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오랫동안 주로 마니아들이 즐기는 ‘낯설고 먼 스포츠’였지만 최근 10년 사이 서핑 인구가 늘며 서퍼surfer들의 문화가 한결 익숙해졌다. 제주도와 동해안을 중심으로 수많은 서핑 장소 가운데 강원도 양양은 ‘서핑족의 성지’ 같은 곳이다. 양양 서핑 문화의 초창기부터 구심점 역할을 해온 ‘서프랩’의 김진수 대표. 한국 서퍼 1세대이자 서핑 문화 발전을 이끈 주역 중 하나로서 그가 말하는 서핑과 바다의 매력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Q 요즘 스포츠와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양양 서핑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서프랩은 양양 서핑 문화의 구심점으로 불린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김진수_지금은 양양 곳곳에 우리처럼 강습과 숙박 시설을 갖춘 서핑숍이 많이 자리 잡았지만, 내가 2014년 봄에 양양에 처음 둥지를 틀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스케이트보드, 스노보드, 웨이크보드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오다 자연스럽게 서핑을 접하게 되었다. 서핑에 푹 빠져 살다 결혼을 하면서 양양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서핑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언제부터인가?

김진수_12년 정도 되었다. 다른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때도 ‘언젠가는 서핑을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기술은 다를지언정 공유하는 문화와 감성은 같았으니까. 원래 내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고, 방송국에서 미디어 제작, 음악 콘텐츠 업무 등을 맡아 일했다. 양양에 정착하기 직전에는 익스트림 스포츠 브랜드 마케터로 근무했다. 취미가 점점 일로 확장된 경우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특히 양양의 바다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진수_처음 양양에 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발전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 못 했다. 다만 내가 이곳에 서핑샵을 열겠다고 결심하던 무렵의 양양은 10년, 20년 경력의 서퍼들이 꾸준하게 찾아오는 곳이었다. 나 역시 양양을 좋아해 가장 자주 즐겨 찾았다.

2014년 이후 햇수로 6, 그동안 양양과 양양의 서핑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나?

김진수_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양양 지역의 서핑숍은 10개도 안 됐다. 서퍼들은 서로 얼굴을 다 알만큼 커뮤니티가 좁았다. 2014년 ‘바루서프’라는 이름으로 시작할 때 매장 인테리어나 컨셉트 등에서 ‘브랜딩’을 시도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내가 마케터, 아내는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바루서프가 시발점이 되어 양양의 서핑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양양 지역에만 80개 가까운 업체들이 들어서 있다. 찾아오는 서핑 인구 또한 매년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김대표가 처음 시작할 때 10개도 안 되던 양양의 서핑숍이 이제 80개에 가까울 만큼 크게 늘었다.

양양 바다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김진수_인스타그램을 필두로 한 SNS의 영향이 컸다. 2014년 우리가 매장을 열었던 즈음 인스타그램이 그야말로 ‘터졌다’. 인스타그램으로부터 혜택을 입은 업종들이 있는데, 서핑도 그중 하나다. 멋진 사진을 자랑하고 공유하기에 좋은 아이템이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 영향이었다. 제2영동고속도로, 춘천고속도로, KTX 등이 개설되며 양양 인근으로 오는 교통편이 무척 좋아졌다. 양양의 서핑 인프라와 인접성이 두루 발전하며 서울 사람들이 ‘당일치기’로 다녀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도심에서 2시간 반 거리의 서핑 스팟spot을 상상하기 힘들다. 사실 한국은 서핑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다.

어떤 연령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서핑 인구의 다수를 차지할까?

김진수_서핑은 여전히 남자의 스포츠다. 그러나 새로 유입되는 인구 중에서는 20대~30대 직장인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레저도 유행을 타고 세대가 바뀐다. 스키와 스노보드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대신 서핑이 젊은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김대표의 설명을 듣다 보면 서핑은 하나의 스포츠이자 ‘문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핑이 현재의 유행을 넘어 하나의 고유한 문화로 발전할 수 있을까?

김진수_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 힘들지만 요즘 전 세계적으로 서핑의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그 이유는 비슷할 것이다. 과거 서핑은 특정 계층의 화려한 스포츠처럼 여겨졌는데, SNS와 유튜브를 통해 ‘나도 저걸 할 수 있겠구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서핑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 유행의 교체가 매우 빠른 편이라 걱정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유행은 잦아들더라도 서핑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서핑 입문자들에게 서핑과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한다.

김진수_요즘은 예순 살, 일흔 살 어르신도 자녀들과 함께 양양을 찾는다. 그분들에게 파도를 타겠다는 조급함이 있겠나? 즐기면서 체험하고 가는 거다. 천천히 여유롭게 시작해야 한다. 바다와 파도 앞에서는 개인의 체력과 경험에 따라 편차가 크다. 바다의 상태도 늘 다르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3개월 정도 꾸준히 배우고 도전한다면 대체로 혼자서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시기가 온다. 두 번째 조언은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파도 역시 마찬가지다. 계획한 날씨나 파도가 아니라도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처럼 처음 보드 위에 올라 파도를 타게 되었을 때의 쾌감은 감히 설명하기 힘들다.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이 시작된달까.

서퍼 김진수에게 바다란 어떤 곳인가?

김진수_나에게 서핑은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다. 파도라는 변화무쌍한 대상은 정형화될 수 없다. 어떤 서퍼도 똑같은 파도를 두 번 만나지는 않는다. 우리 삶의 사건들과 순간들이 그렇듯이. 파도는 마치 인생의 기회와 같다. 잘 타면 아주 좋은 보상이 오고, 감사하게도 지금 기회를 놓쳐도 다음 파도가 다시 찾아온다.

당신에게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것 같다. 바다에서 인생을 배웠다.

김진수_바다에 있으면 도인이 되는 것 같다(웃음). 조급하게 군다고 좋은 파도가 오는 게 아니고, 파도가 와도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 늘 나보다 뛰어난 경쟁자가 존재하고, 잘 탄다고 자만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파도로부터 배웠다. 완벽하게 몰입해야 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 나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을 넘어 삶 자체다. 희로애락이 파도 안에 다 있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지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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