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에서 귀향으로

풍요를 위해 일제히 상경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상경과 함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귀향, 귀촌, 이주를 선택하는 시대다.

교통의 발전과 커뮤니케이션 기술 혁신이 삶의 장소 선택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서울, 인천, 대구, 부산, 광주 등 지금까지는 부의 창출과 편리성을 위해 대도시로 상경했다면 이제 고향으로 지역으로 이주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성찰적인 40~60대 중 삶의 질을 높이고 더 문화적으로 살기 위해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제주의 문화 이민 열풍뿐만 아니라 지리산권, 남해권, 동해권으로 이주를 한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장시간 출퇴근 시간, 반려견을 키우기 어려운 주거 조건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대도시를 떠나 자연미와 경관미가 있고 노동의 자율도가 높은 지역을 선택하고 있다. 서핑을 좋아해서 강원도 양양을, 한옥이 좋아서 전주를, 자연과 돌집이 좋아서 제주를, 지리산이 좋아서 남원이나 하동을 선택하고 귀촌, 귀향을 한다.
기업가, 예술가, 디자이너, 문화기획자로서 지역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업의 기회가 더 높아서라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아서는 아니다. 윤리적, 미학적 차원의 선택인 것이다. 경제적 기준도 물론 고려하지만 미학적 윤리적 차원의 선택을 우선하는 새로운 세대의 성장이기도 하고 기존 세대의 성찰이기도 하다.

U턴과 J, 그리고 I

귀농과 귀촌은 간혹 들어본 듯하지만 문화 이주는 생소하게 느낀다. 귀농과 귀촌이 50대의 인생 설계, 인생 이모작,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귀향하는 느낌을 준다면 문화 이주(문화 귀촌)는 개인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대도시에서의 삶’이 아니라 지역의 소도시와 마을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 사회의 귀농 귀촌의 흐름은 유기농업이나 생태농업의 신념을 가지고 대안적인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던 이들을 중심으로 9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1996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만들어지면서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작된 귀향, 귀촌은 1997년 IMF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해고나 명예 퇴직에 처한 50~60대가 지역으로 U턴(고향인 농촌에서 대도시로 올라왔다가 귀향하는 경우)이나 J턴(농촌에서 살다 대도시로 올라왔다가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내려가는 경우)을 한다.

그 후 10년이 지나 2007년 다시 촉발된 전 세계 금융위기는 부동산 신화의 붕괴를 가져왔고, 20~30대 청년들은 부모 세대의 이념인 도시화와 산업화, 정보화를 통해 만든 세상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다. 집을 사기 위해 인생을 경제 활동에만 쏟아부은 부모의 현재를 보면서 ‘다른 식의 삶이 없을까’ 고민하던 20~30대들은 2008년 이후로 I턴(도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농촌으로 내려가는 경우) 형태의 청년 귀농, 문화 귀촌, 문화 이주를 결심한다. 최근의 현상은 I턴이 많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도시에서 텃밭 하나 없는 작은 집에 자신을 맞춰 살아야 하고, 산과 바다로 가려면 2시간 이상 차를 타고 달려야 하며 주말에 산이나 한강을 가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에 치여 지쳐버리는 현실을 더 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선택이다.

©안동시청

고향과 지역에서 소확행을 찾다

인류 역사상 여러 시기마다 또 여러 측면에서 문명에 대한 회의, 도시의 속도에 대한 회의 속에서 귀농, 귀향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지만 동시대의 문화 이주는 전 세계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20~30대의 문화 이주는 철학적 미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현상이다. 도시에서 경제 활동을 위해 청년기를 모두 내놓았던 40~50대들이 노동 소외의 구조와 다른 삶을 모색하려고 한다. 산업사회의 생산구조와 후기산업사회의 문화 소비가 만든 소비적 생산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양극화 체제에서 도시는 상위 20%를 하위 80%가 지탱하는 시스템임을 직시하고, 서로가 좀 더 평등한 관계에서 ‘소확행’으로서 현재를 살 수 있는 곳으로 지역과 고향을 상상한다. 물론 지역에서 대도시와는 다른 근대적인 학연과 지연의 배타성, 전근대적인 관계 방식을 부딪치면 좌절을 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보면 혁신이 에너지를 갖게 하기도 한다.

최근 문화를 통한 도시 재생, 문화적 지역 재생의 흐름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의 미감인지도 모르는 건물들만 늘어나는 도시가 아니라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기존의 산업도시, 경제도시, 패키지 관광도시가 아니라 소도시의 풍경과 경치를 유지하면서 작은 서점과 작은 카페와 돌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여행을 만들고 주3일 노동을 목표로 한다.

©안동시청

지속가능한 삶을 찾아 고향과 지역으로

지역과 고향을 생산기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내 삶을 디자인하는 장소로 보고 내가 살아갈 곳의 문화 환경을 생각하는 시대다. 지역으로 가는 문화적 이주자들은 일상적인 관계망에서 문화를 다시 바라보고, 지역과 고향에서 새로운 문화 미학과 스타일을 만들고자 한다. 자신이 도시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작지만 강한 직장과 가게와 농장을 만들면서도 자신을 위해, 아들딸의 교육을 위해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를 실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로 간의 작은 약속 체계를 만들어가고, 그 방식을 습득하면서 문화적 형식들을 만들며 그 속에서의 창작 활동은 새로운 지지자와 협력자를 만들게 된다.

이런 문화이주자들이 지역에 모이고 모인다면 대도시의 의식주 공급처나 생산기지 혹은 소비 관광 상품이 아니라 높은 삶의 질을 갖게 하는 생활 장소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지역으로 이주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2~3년차에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지역에서 10년 후, 20년 후의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삶의 이야기를 써내려고 가고 있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이광준 | 바람부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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