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이 전하는 ‘마음의 고향’

또 다른 나의 고향, 외할머니 댁 이야기.

추석 때면 우리 가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할머니 댁을 간다. 이곳에 오면 우리 엄마는 한없이 순수한 소녀로 돌아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엄마가 어렸을 때 새까만 고양이를 키웠는데, 그냥 까만 고양이가 아니라 네 발에는 하얀 양말을 신은 것처럼 하얀 털이 나 있었는데 어쩜 그리 예쁘던지. 그 애가 나만 따랐다니까.

엄마는 학교 가는 길이 너무 멀고 무서웠단다. 엄청 어렸을 때였는데 비가 무척 많이 내린 날이었어. 그때마다 물이 불어 넘치는 강물에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다리를 건너야 했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데.”

엄마는 일요일 아침에 할머니 집안일을 도와드리고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 게 최고의 행복이었단다. 그때 이승철 오빠 팬이 됐어. 책상 앞에 포스터도 붙이고 테이프도 사서 듣고 정말 좋았어. 너희들이 지금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야.”

외할머니 댁 수돗가

외할머니 댁 수돗가 옆 장독대

엄마의 고향에는 엄마의 모든 유년 시절이 담겨있다. 엄마가 쓰던 책상, 엄마의 등굣길, 엄마가 좋아했던 비밀 장소, 엄마가 좋아하던 꽃과 나무 등등 엄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엄마의 유년 시절 속으로 들어가 어린 모습의 엄마와 친구가 되어보곤 한다. 어린 시절 속 엄마는 내가 고민했던 것들, 고민하고 있는 것들과 같은 고민을 하며 성장해나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스무 살이 지나고 나서야 나의 철없던 날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엄마와 내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에게 고향이 옛 추억 상자라면 나에게 엄마의 고향은 마음의 고향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엄마의 흔적을 따라가며 나의 과거를 반성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나를 상상해볼 수도 있는 푸근하고 아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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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댁 앞마당 저녁모습

추억의 공간인 외할머니 댁에서의 명절은 분주하다. 외할머니 댁의 수돗가는 비밀의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저곳에서 할머니표 된장과 간장이 숙성되어 시골 내음 물씬 풍기는 시골 밥상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끔 풀장이 되기도 한다.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리고 놀면 그 유명한 워터파크가 부럽지 않다. 저기서 할머니와 엄마를 도와 채소를 씻어서 손질하며 할머니와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정말 행복하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며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별이 한두 개씩 뜨기 시작한다.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앞마당으로 나와 같이 한 상을 차리고 바비큐 파티를 한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떠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할머니와 엄마의 손맛이 듬뿍 담긴 음식들을 먹는 것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는 무르익어간다. 그렇게 고향의 추억을 음미하며 외할머니 댁에서의 밤이 저물어간다.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머니와 나.

이렇듯 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명절을 핑계 삼아 잠시 고향을 찾아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절실한 시간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흔적을 따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이루고 싶은 다짐들을 되새기는 등 고향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보는 것도 명절의 또 다른 매력일 것 같다.

어쩌면 고향은 단순히 나고 자란 곳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가면 한없이 설레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샘솟기도 하며 떠날 때가 다가오면 한없이 그리워지고 다시 가고픈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과 사진 | 문수지(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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