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내 기억에서 존재하는 곳이다

정선에서 태어났지만 정선을 떠난 사람. 하지만 정선에 매달려온 사람. 시인 전윤호를 만났다.

누구나 태어난 고향은 있다. 도시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랐든 첩첩산중 산골짜기에서 다람쥐와 뛰어놀았든 모두에게 고향은 지문처럼 남는다. 시인 전윤호에게도 고향은 특별하다. 91년 등단해 올해로 시작詩作 인생 28년째인 그는 동료 문인들로부터 ‘정선 시 좀 그만 쓰라’는 농담 섞인 핀잔을 받을 만큼 고향 정선을 그리워해왔다. 이번에는 그가 아예 시집 한 권을 정선에 통째로 바친 「정선」을 들고 왔다. 그에게 정선은 어떤 곳이기에 고향 사랑이 이리도 절절한 걸까.

Q. 고향을 노래한 시는 별처럼 많지만 이번 시집 정선처럼 한 권을 통째로 고향에 바친 경우는 드물다.

전윤호 시인 이하 전윤호_내가 거의 최초 아닐까 싶다. 30년 가까이 시를 써오면서 그간 정선에 대한 시를 많이 써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 정선에서 벗어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이제 정선을 정리하자는 생각으로 썼다. 이 시집을 마지막으로 해서 정선이라는 나의 고향을 정리하고 싶었다. 더 잊기 전에 한번 되살려보고 싶은 의미도 있었고.

Q.정선전윤호의 정선을 집대성했다는 느낌인데, 앞으로의 시는 정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건가?

전윤호_그렇다. 조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깊이 빠져 있으니까 다른 시를 못 쓸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사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형제나 친구는 남아있어도 전 같지는 않다. 고향이 있어도 결국 내가 살았던 그 시기의 기억이 고향인 거다. 현재의 정선과는 사람도 시간도 공간도 다 변했다. 어떻게 보면 고향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거다.

Q. 사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40여 년 동안 정선에서 산 적이 없는 셈이다.

전윤호_고등학교를 춘천으로 다니게 되면서 사실상 정선을 떠났다. 이후에도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에서 기획자로 2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다. 몸이 아파 자의반 타의반 전업 시인을 하게 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당진, 통영, 이천 등 공간을 제공해주는 후원자가 있으면 그곳이 작업실이고, 머무는 곳이었다. 그러다 2년 전 춘천에 후원자가 나타나 춘천에서 작업하게 되었다.

Q. 그래도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귀향해 살 생각을 할 것 같다.

전윤호_당연히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까 현실적으로 안 될 것 같더라. 예술가는 고향에서 홀대받는 숙명이 있다고들 한다. 나 역시 밖에서는 시인이지만 고향에 내려가면 그냥 ‘누구네 몇째 아들’이다.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또 하나, 나는 누군가 배려해주지 않으면 생활이 힘든 경제적 약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이번 시집은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그 대신 고향을 확실하게 기록으로 남겨놓겠다는 생각의 발현이기도 했다. 이제 고향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곳이 되었다.

정선을 떠나며
전윤호

북동 사람들이 장에서
막걸리 마시다 털어놓는
호랭이 얘기처럼
지만 아는 골짜기에 숨겨진
산삼 구뎅이처럼
길도 없는 벼랑 위에 고무신만 남긴
아직도 못 찾은 새댁처럼
너도 없는 강변에 피는 할미꽃처럼
평생 구하지 못한 내 방 한 칸처럼
함백산에 서 있다는 정암사 금탑은탑처럼
나는 간다
미쳐 곡조를 만들지 못한 아라리처럼
살아 있지 않아도 제자리를 지키는
몰운대 소낭구처럼
매일 밤 용소를 울리는 이무기처럼
설마 없어지기야 하겠나

Q. 정선에선 작품 활동을 하는 게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전윤호_몇 년 전 작업을 위해 정선에 가기로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작업실을 마련해주기로 한 분과 약속이 어긋나, 한 달 동안 여인숙에 머물면서 글을 쓰게 됐다. 친구나 친척한테 부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이 들면 그런 게 다 서로 불편한 법이다. 그때 ‘이제 더이상 고향에 내가 있을 땅은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마 나중에라도 고향에 내려가 글을 쓰기는 어려울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Q. 씁쓸하고 슬픈 이야기다. 늘 정선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노래하던 시인에게 막상 머물고 작업할 공간이 없다니.

전윤호_시인은 어딜 가나 항상 아웃사이더다. 시인이 인사이더가 되면 시를 못 쓴다. 오히려 그 이방인의 정서가 나에겐 맞는 걸지도 모른다.

Q. 마치 배우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고도 나중에 연기에 활용하려고 그 감정을 간직한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전윤호_모르긴 해도 시인은 그보다 더 심하다. 배우는 결국 연기를 하는 거지만 시인은 머릿속에 새겨 버리니까. 온전히 내 이야기니까. 만약 내가 정선에서 첫사랑하고 잘 되어서 결혼하고 살았다면 시인이 안 됐을 거다(웃음).

Q. 유독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한 시인으로서 내 고향 정선자랑을 좀 해달라.

전윤호_문학적 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시적인 경치도 일품이지만 ‘정선아리랑’이라는 위대한 노래도 간직한 곳이다. 나를 비롯해 한 살 위 최준 시인이 있고, 한 살 아래 박정대 시인이 있다. 연년생으로 3명의 시인이 정선에서 나온 걸 보면 확실히 문학적으로 토대가 있는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너 정선 갈 때 나 좀 같이 가자’는 문인들이 많다. 가면 남들 다 가는 아우라지 탄광 같은 관광지 말고, 강하고 산하고 풍경이 잘 어우러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이를테면 시집에 나오는 광대곡에서 몰운대까지 가는 길은 소금강 길이라고 해서 굉장히 서정적이다. 곤드레나물을 비롯한 봄날의 나물들이 가득한 정선 5일장 등 자랑할 것이 많다.

Q. 마지막으로 시인 전윤호의 정선과 고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전윤호_뻔한 대답 같지만 나에게 정선이란 ‘실락원失樂園’이다. 내 기억의 모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내 고향 정선은 실제 정선과 상관없는,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정선이다. 나 말고도 모든 이들에게 고향은 그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실제와는 상관없이 내 안에 있는 도원경桃源境. 결국 고향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라기보다는 각자의 기억 속에 머물러 존재하는 공간이다. 내 안에 있는 기억이다.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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