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와 기술의 이중주에 의한 국수 변천사

세상 모든 국수는 원료와 제조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식재료와 제면 기술은 국수를 어떻게 변화시켜왔을까?

오랫동안 널리 퍼진 식품의 원조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렵고, 문헌이나 유물이 남아있는 식품이라 해도 같은 식품이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섭취해왔으며 많은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국수가 대표적인 예다. 국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존재한다. 최근 중국 신석기시대 토기에서 수수로 만든 국수가 썩지 않은 채 발견되며 중국의 국수에 대한 자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4천 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국수라니! 국수는 보통 ‘곡물가루를 물과 함께 반죽한 다음 얇게 펴서 물에 끓인 것’으로 정의된다. ‘곡물’과 ‘반죽’, ‘물에 삶는 조리법’이라는 세 키워드를 기본으로 국수의 형식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의 근본적 차이는 원재료

세상에는 6백 가지 이상의 국수가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국수의 종류는 원료와 제조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원칙과 그에 따른 요리 형식의 발전상을 잘 보여주는 국수 중 하나가 우리의 냉면이다. 냉면은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으로 나뉘는데, 함흥냉면은 밀가루에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들고 평양냉면은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섞어 만든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의 근본적 차이는 양념이 아닌 국수의 원재료에서 생긴다. 함흥냉면은 밀가루 외에 전분이 들어가 다소 질기며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이런 함흥냉면의 강한 식감은 비빔냉면 스타일의 맵고 짠 고명이나 진한 국물맛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반면 평양냉면의 국수는 재료의 특성상 쫄깃한 느낌이 없고 쉽게 툭툭 끊어진다. 메밀의 함량이 늘어날수록 그 특성은 더욱 강해진다. 평양냉면 애호가들은 메밀의 은은한 향기와 심심한 육수를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미식가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두고 이런저런 평가를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체험 안에서 맛이나 향기의 성분은 그저 경험될 뿐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어회나 와인처럼 향기 성분이 풍부한 식품의 특징은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메밀국수처럼 향기가 흐릿한 식품의 맛과 향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은은한 향기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 장치를 이용해 구분하는 것은 더욱 까다롭다.

눌러서 뽑는 냉면과 파스타는 국수 제조의 소수파

메밀이라는 식재료는 원래 국수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메밀국수를 만들 때는 반죽을 한 후 국수틀을 눌러 빠져나오는 반죽을 뜨거운 물에서 바로 익혀 면으로 만든다. 이런 방법은 오히려 밀국수보다는 가래떡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우리가 즐기는 냉면은 사실 얇은 메밀 가래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식품공학에서는 ‘압출 방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냉면이 전국적 사랑을 받는 데 비해 압출 방식은 국수를 만드는 방법 가운데 소수파에 해당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그 형태와 종류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파스타 중 가장 대중적인 형식인 스파게티 또한 드물게 압출 방식으로 제조한다. 압출 방식은 국수 제조의 가계도에서 소수파에 속하지만, 국수를 즐기는 입맛에서는 인기 가도를 달리는 셈이다.

냉면이나 막국수를 뽑기 위해 제작한 옛 국수틀을 살펴보면 냉면을 먹기 위해 선조들이 얼마나 큰 수고를 감내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뻑뻑한 메밀 반죽을 압출식 국수 형태로 밀어내기 위해 한 사람이 힘껏 눌러야 면이 뽑히는 국수틀이 기본이라면, 대량 제조를 위해 여러 명의 장정이 온몸으로 매달려야 하는 국수틀도 있었다. 몸통과 누름대, 공이, 다리 등으로 구성되었던 국수틀은 근대를 기점으로 손잡이와 반죽 주입구가 달린 형태로 변모한다. 요즘 냉면집에서는 국수를 내릴 때 현대식 제면기를 사용한다. 과거의 국수틀에 비해 수고를 덜 수 있는 고마운 물건이다.

국수틀

밀국수 인기의 일등공신은 끈끈한 글루텐

대부분의 국수는 밀을 원료로 사용한다. 밀이라는 곡물은 주성분인 전분과 함께 글루텐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글루텐 단백질은 물과 함께 반죽하면 강한 점성이 생겨 밀가루 반죽을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납작한 판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글루텐 단백질이 끈끈한 특성을 주기 때문이다. 세계 전역에서 국수의 재료로 밀가루가 인기를 얻은 과학적 이유가 거기 있다. 반면 메밀이나 쌀가루 반죽으로는 점성이 부족해 이런 밀가루 판, 즉 면대를 만들기 어렵다. 메밀이나 쌀가루를 사용해 칼국수 형태의 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에 밀가루 함량을 높이거나 밀가루에서 분리한 글루텐을 따로 섞어야 한다.
밀가루에 포함된 글루텐이 일으키는 알러지 때문에 밀가루 음식을 피하거나 글루텐 프리 식품을 찾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의미 없는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평가가 많다. 글루텐 알러지는 심각한 유전적 질환으로 글루텐 알러지를 보유하고 있다면 치료와 더불어 매우 엄격한 식이조절이 필요하다. 동양인에게는 글루텐 알러지가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 해서 후천적으로 유전질환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밀가루 포대

국수 제조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밀대를 밀어 칼국수를 만드는 풍경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면을 직접 제조하는 경우는 요식업계에서도 아주 흔하지 않다. 칼국수 전문점 중에서도 직접 밀대로 반죽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밀대로 밀어 면대를 만들어 먹는 국수는 이제 소멸한 것일까? 식품 공정을 엄밀히 살펴볼 때 그 대답은 ‘아니오’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섭취하는 국수인 라면 또한 일종의 칼국수를 만드는 공정이 포함되어 있다. 라면 제조 과정에 면을 꼬불꼬불하게 구부리고 튀기는 과정이 포함되어 그 완성 형태가 칼국수와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가장 처음 면을 만드는 과정은 칼국수와 같다. 밀가루에 물과 소금 등을 넣어 반죽하고 기계화된 밀대로 반죽을 얇게 펴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이 발전하며 나무 밀대 대신 롤러라는 장치를 이용해 밀가루 반죽을 반복적으로 눌러 아주 얇게 편다.

하나의 요리를 제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을 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돕는 다양한 도구와 지식이 새롭게 등장한다. 식품 기술과 공학은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라면 공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국수 롤러를 민속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글 |이동언_ 중앙대학교 생명공학대학 식품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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