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밥상에 한 그릇의 국수가 놓이기까지

21세기 한국은 1인당 가장 많은 밀국수를 먹는 나라가 되었다. 국수는 언제 어떻게 우리 밥상으로 전파되었을까?

여러분은 ‘국수’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는지? 밥맛이 없을 때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한 잔치국수, 비가 오면 생각나는 칼국수, 무더운 여름을 나는 데 좋은 냉면,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먹는 우동, 연인과 함께 먹는 파스타, 졸업식을 생각나게 하는 짜장면, 술 마신 다음날의 짬뽕, 밥 먹을 시간도 돈도 없을 때 사는 인스턴트라면. 이 모두를 우리말로는 ‘국수’라고 부른다.

면의 고향은 중앙아시아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설麥屑(밀가루)을 진말眞末이라고 부른다. 방언은 진가루眞加婁이다. 면은 음식의 이름이다. 방언은 국수匊水이다.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적었다. 왜냐하면 ‘면’은 반드시 밀가루여야 하는데, 조선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면’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면과 국수라는 단어의 초창기 용례가 기록된 정약용의 「아언각비」.

밀의 원산지는 동쪽으로 중앙아시아의 코카서스 지방에서 서쪽으로 이란 주변 일대로 알려진다. 기원전 5500년경에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밀이 재배되었다. 이후 기원전 3000년경에 유럽과 아프리카로 밀과 밀 농사법이 전해졌다. 중국에는 기원전 100년경인 전한前漢 시대에 중앙아시아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서 들어왔다.

봄에 씨앗을 뿌리는 봄밀은 여름에 비가 적게 오고 기온이 25℃ 이상을 넘지 않는 지역에서만 재배된다. 한반도는 여름에 장마가 있고 기온도 높아 봄밀 재배가 안 된다. 19세기 말까지도 황해도나 평안도의 일부 고원지대에서만 겨울에 씨앗을 뿌려 한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는 겨울 밀을 재배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20세기 이전만 해도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중국에서 발전한 국수 문화

중국 대륙에서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주식으로 먹었던 사람은 서북 지역의 북방민족이었다. 한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북쪽의 오랑캐란 뜻으로 호인胡人이라 부르며 낮춰보았지만 그들이 먹는 밀가루 음식은 매우 좋아했다. 6세기 초 가사협賈思勰이 편찬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간을 맞춘 고기의 즙으로 밀가루를 반죽하여 젓가락 굵기로 다듬어 약 30cm 길이로 자른 다음, 물속에 담가 손가락으로 부추 잎 모양으로 얇게 눌러서 하나씩 냄비에 넣어 삶아” 만든 ‘수인병水引餠’이란 국수 요리법이 나온다. 지금의 수제비를 닮은 이 수인병은 이후 마치 새끼줄처럼 손으로 길게 이어지게 만든 색병索餠 혹은 색면索麵으로 진화했다.

10~11세기에 장강長江 이북의 진령산맥秦嶺山脈 북쪽의 농민들은 밀농사를 매우 효율적으로 지었다. 그 결과 밀가루의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고 손으로 길게 늘어트리는 랍면拉麵에서 나무 판에 때려서 길게 늘어트리는 타면打麵에 이르기까지 각종 국수가 개발되어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북송의 수도였던 변량汴梁에는 온갖 국수 요리법을 뽐내던 국수 전문점이 많았다. 맹원로孟元老가 1147년에 완성한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오동나무 껍질 속의 섬유질을 말려서 갈아 밀가루와 함께 반죽하여 만든 국수인 동피면桐皮麵, 돼지고기 편육을 넣은 국수인 삽육면揷肉麵, 수제비처럼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서 펄펄 끓는 물에 넣고 삶은 국수인 대오면大燠麵, 돼지고기를 길고 얇게 채 썰어 솥에서 볶은 다음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국수를 삶아낸 육사면肉絲麵 등을 판매하는 국수 전문점이 나온다.

건진국수부터 인스턴트 라면까지, 한반도 국수 변천사

12세기 남송의 주희朱憙 는 『가례家禮』제사 상차림 그림에 밥과 함께 ‘면식麵食’을 적었다. 조상의 제사상에 올릴 정도로 곡물로 지은 밥과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일상식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본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렵게 밀가루를 구해 국수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오늘날 안동의 ‘건진국수’이다.

국수틀

하지만 조선 후기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국수의 재료는 메밀이었다. 늦여름이나 가을에 구릉지에 씨앗을 뿌리면 2~3개월 후에 수확할 수 있는 메밀을 가루 내어 전분을 섞어 반죽하면 단단한 돌덩이가 된다. 이것을 국수틀에 눌러서 끓는 물이 담긴 솥에 바로 내려서 건져 찬물에 씻어내면 메밀국수 타래가 만들어졌다. 겨울밤에 이 타래를 꽁꽁 언 동치미 국물에 말아서 먹었던 음식이 바로 냉면이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로부터 수입한 밀을 제분하는 공장이 평양 근처와 인천에 들어서면서 밀국수 먹기가 한결 쉬워졌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밀이 들어오자 동네마다 건면 공장이 들어섰고, 일본에서 발명한 인스턴트 라면도 1963년에 우리 스스로 만들게 되었다. 1960~70년대 정부가 나서서 분식을 많이 먹자는 캠페인을 펼쳤고, 그 결과는 한 세대를 거친 2000년대에 나타났다. 국내에서 생산한 쌀이 남아돌고 있지만, 국민 한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밀국수를 먹고 있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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