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가락국수의 추억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이 기차 여행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대전역 플랫폼에서 먹던 가락국수 이야기다.

늦은 밤 피곤한 몸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다
허기에 지쳐
가락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비닐 봉지에 담긴 국수 한 움큼을
끓는 국물에 금방 데쳐
한 그릇을 내준다.

2,000원짜리 가락국수인지라
내용이 서민적이다.
단무지 서너 조각이
국수 그릇에 같이 담겨져 있고
쑥갓 조금
약간의 김 부스러기
고춧가루가 몇 개 둥둥 떠있다.

시장 탓에
후루룩 젓가락에 말아 넘기면
언제 목구멍을 넘어갔는지 간 곳이 없다.
하지만 기차를 기다리며
막간을 이용하여
먹는 가락국수의 맛은 그만이다.

용혜원, <대전역 가락국수>

하얗고 통통한 면발이 맑은 장국에 먹음직스럽게 잠겨 있다. 국물의 온기를 타고 쑥갓과 김, 고춧가루의 매콤한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가락국수는 일본의 우동이 한국에서 현지화를 거친 결과다. 80년대까지 가락국수는 기차 여행의 상징이었다. 미리 삶아둔 국수와 끓여둔 멸치 육수, 간소한 꾸미라는 형식 덕분에 가락국수는 기차역 플랫폼 간이식당에서 쉽게 만들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가락국수 명소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대전역이었다. 1985년 3월 16일 경향신문에 실렸던 기사 ‘가락국수에 여수旅愁를 달래고’의 한 토막을 읽어본다. “역 구내에 들어온 육중한 철마가 숨찬 듯 경련을 일으킨다. 우르르 승강구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 얽히고설킨다. 대전역 플랫폼의 가락국수 판매소. 400원씩 받기가 무섭게 국수를 말아 내놓는 판매원의 손길이 번개 같다.”

대전역의 가락국수가 유명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증기기관차 시대의 기술적 한계였다. 150km 남짓 달리면 화차를 교체해야 했기에 경부선 열차들은 대전역에서 오래 정차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설정된 호남선의 분기 구조도 한몫했다. 호남으로 향하는 기차들은 대전역에 들어선 뒤 방향을 반대로 바꿔 다시 출발해야 했다. 열차들이 두 번째 출발을 준비하는 동안, 긴 여행에 출출해진 사람들은 플랫폼의 작은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들이켰다. 언제 출발할지 모를 기차이기에 국수를 먹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국물과 함께 홀랑홀랑한 면발을 입 안 가득 욱여넣던 기억은 우리가 아는 ‘국수’의 한 원형이 되었다.

시대는 바뀌고 기술은 진보한다. 디젤 기관차 시절까지만 해도 기차들은 대전역에 5분 이상 정차하곤 했지만, KTX가 놓이며 대전역 정차 시간은 2분 이내로 줄었다. 가락국수 가게 또한 플랫폼에서 대합실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은 플랫폼에 서서 사발을 기울이는 대신, 편안한 의자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주문한다. 그러나 가락국수의 소박하고 다정한 풍미만은 변함이 없다. 젓가락을 들고 하늘하늘한 국수를 입 안 가득 채워 넣으면 대전역과 가락국수가 품은 오랜 추억이 면발을 타고 마음 가득 번지는 것만 같다.

글_편집부
일러스트레이션_이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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