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인천을 기록하다 ②

사진가 김보섭은 인천의 역사를 꾸준하게 기록해왔다. 그의 렌즈에 포착된 인천의 지난 이야기들.

밤열차<br>  인천역에서 출발하는 야간 열차의 모습. 인천과 서울을 잇는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 철도였다. 경인선은 1900년 7월 개통 이래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과 수도 서울 사이 27km 거리를 이으며 수많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수복호 사람들<br>   인천에는 ‘수복호’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섬으로 굴을 따러 다니는 배’를 일컫는 표현이다. 한국전쟁 이후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은 수복호에 올라 굴을 따서 어렵게 생활을 꾸렸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끈끈히 이어 온 가족애는 수복호 사람들의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수복호 사람들<br> 인천의 만석 부둣가 축대에는 ‘굴막’이 있었다. 굴 포대를 힘겹게 옮기지 않고 포구에서 바로 굴을 까기 위해 만든 움막이었다. 굴 까는 사람들이 수백여 명에 달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의 흔적<br>  인천은 대표적인 산업 도시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기도 했다. 인천 동구 해안가에는 선창산업, 한국유리 등 수많은 공장이 모여 있었다.
양키시장<br> 인천 동구 송현동 중앙시장은 ‘양키시장’으로 유명하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양담배와 군복 등을 파는 노점이 생기며 붙은 이름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전성기를 누리고 서서히 쇠락해 현재는 재개발 사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행<br>  인천은 해안과 항구, 섬으로 이뤄진 바닷가 도시다. 바다는 인천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생계의 수단, 외부를 향해 활짝 열린 관문이었다.
청관<sup>淸館</sup>, 인천 차이나타운<br> 인천 차이나타운은 개항 이듬해인 1884년 청국 조계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화교들은 이곳에서 대를 거듭하고 문화를 지키며 삶을 이어왔다.
청관<sup>淸館</sup>, 인천 차이나타운<br> 차이나타운의 건축물에는 화교의 오랜 역사가 스며 있다. 한국 근대 건축과 현대 건축의 어느 마디에 놓아두어도 낯설, 중국식 창틀과 문,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청관<sup>淸館</sup>, 인천 차이나타운<br>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 1세대는 대부분 산둥 지역에서 건너왔다. 한국식 중화요리의 대표적 형식들은 차이나타운 중식집들에서 차근차근 완성되어왔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중국 식문화의 본산인 셈이다.

사진_김보섭
글_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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