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인천을 기록하다①

인천과 인천 사람을 30년 가까이 카메라로 기록해온 인천 토박이, 사진가 김보섭을 만났다.

사진은 나의 감정을 반영하는 친구 같은 존재다.
내가 인천에 거주하는 한, 인천을 기록할 것이다
.”

어둑어둑한 흙빛 갯벌, 검푸른 하늘, 지평선 너머 푸른 바다보다 공장 굴뚝이 먼저 펼쳐지는 항구 도시, 인천. 시원하게 쭉 뻗은 파란색 바다가 물결치는 다른 항구 도시와는 사뭇 다른 그 풍광에 매료되어 한평생 인천만을 기록해온 사진가가 있다. 사진가 김보섭은 1955년 인천에서 태어나 초고등학교를 나왔다. 그가 인천을 떠나 있던 시간은 대학과 군대 시절이 전부. 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불문학도가 수십 년간 고향 땅의 사라져가는 풍경에 천착한 사연은 무엇일까.

1980년대 후반부터 인천을 기록해왔다. 처음부터 인천의 풍경에 주목했나?

김보섭_대학 때까지는 혼자 전국을 다니며 나만의 세계 속에서 사진을 찍었고, 이런저런 몇몇 순간들 속에서 서서히 사진이 주는 성취감, 쾌감을 알아갔다. 운명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흘러 인천 작업에 이른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내 관심은 자꾸 사진으로만 향했다. 책가방 안에 카메라를 늘 넣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혼자 찍곤 했다. 결국 군대 제대 후에 카메라 하나 들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뿌리 깊은 나무」나「샘이 깊은 물」잡지에 영향을 받아 나도 우리의 옛날 것들을 찾아다니고 싶었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남 화순적벽 수몰 지구 사람들의 근심에 찬 모습, 관매도 사람들, 진도, 동고차도, 서고차도 등지 시골의 돌담과 짚신 신고 지게 매고서 돌미역 캐는 할머니들을 찍었다.

1983년에 동아미술제 대상을 받았다. 인천 작업을 시작하기 전인데, 초창기 작업으로 거둔 결실이었나?

김보섭_대학 시절에 찍은 사진들로 응모했는데 덜컥 상을 받았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다시 인천에 돌아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진을 취미로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제야 인천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공원, 지금은 없어진 연수동의 갯벌 마을, 고잔의 소금창고, 차이나타운 중국집 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직업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인천에 당도한 셈이다.

김보섭_그렇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기관에서 강의를 듣는 등 틈틈이 공부했고, 사진계 사람들과도 교류하고 있었다. 언젠가 인천 사진을 가지고 당대의 사진가 몇 명을 찾아가기도 했다.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 객관적인 평가가 궁금했고, 조언도 듣고 싶었으니까.

「청관淸館, 인천 차이나타운」
ⓒ _김보섭

「청관淸館, 인천 차이나타운」
ⓒ _김보섭

그때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김보섭_기억에 남는 건 주명덕 선생의 얘기다. “사진은 텔레비전이 아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당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셨다. 그때 깨달았다. 한 장소를 담으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찍고 또 찍으며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걸. 그 후 청관의 화교들을 몇 년 동안 찍어 「청관淸館, 인천 차이나타운」을 전시, 출판하게 되었다. 주명덕 선생과는 그 후에도 함께 이런저런 작업을 했고 지금도 가까이 지내는, 존경하는 선배다.

인천의 다양한 지역 중에서도 주로 동인천을 많이 담았다.

김보섭_동인천이 내 고향이니까. 나는 인현동에서 나고 자랐다. 작업을 시작한 계기처럼 동인천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단순하다. 어려서부터 내 기억 속에 자리한 곳이라 익숙하기 때문이다.

「수복호 사람들」ⓒ김보섭

기억에 남는 장소와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하다.

김보섭_만석동에서 만난 수복호 할머니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런저런 곳을 돌아다니다 만석동에 갔을 때 수복호 할머니들을 보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 2년 동안 이분들을 따라다니며 한 분 한 분 사진과 글로 그 인생을 기록했다. 그때 만났던 분들 중 대다수가 지금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애틋한 마음이 있다. 「바다사진관」이라는 이름으로 출판과 전시를 진행한 북성부두와 그 어부들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의 한의사 강영재 선생, 「다복집」이라는 족발집 사장님과 가족들 떠올려보면 모든 장소, 모든 분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천의 사라져가는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어느 순간 생겼을 것 같다.

김보섭_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한 분 한 분, 장소의 마디마디가 나의 인천, 우리 인천의 이야기다. 기를 쓰고 기록을 했다. 지금이야 많은 작업이 시도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인천을 기록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시간의 흔적」ⓒ김보섭

「양키 시장」ⓒ김보섭

Q 사람들에게 인천의 옛 모습,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김보섭_많은 장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만석부두와 북성부두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만석부두 굴막은 물 들어올 때 할머니들이 굴 껍질을 까던 움막인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그때 할머니들이 신던 신발부터 바구니, 가스레인지 등이 버려진 채 동그마니 있는 모습은 하나의 작은 박물관이다. 북성부두 역시 고깃배들이 들어와 있는 조그만 포구인데 우리 인천의 진짜 옛날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토박이이자 사진가의 눈에 보인 인천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김보섭_인천 바다는 동해안처럼 푸른 물도 아니고 남해안처럼 잔잔한 수면도 아니다. 갯고랑에 갇혀 있는 갯벌, 그 고랑진 물이 인천만의 고유한 물이다. 그래서 나는 인천에서 바다 찾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꾸 카프리나 산토리니 바다를 여기서 찾으려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인천만의 바다를 찾아야 한다. 바닷가에 늘어선 공장 굴뚝, 작은 포구들, 천막 친 시장들, 개항장의 판잣집과 일본식 가옥들까지. 인천은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는 아니지만, 그 특유의 잿빛 풍경이 인천만의 모습이고 매력이다.

인천 토박이이자 인천 사진가김보섭에게 인천이란?

김보섭_결코 떠나지 못할 곳. 나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세상을 떠날 때도 인천에서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지금도 기록하고 싶은 장소가 있나?

김보섭_「수복호 사람들」은 책만 출판했지 따로 전시를 못했다. 결국 올해 11월에 인천, 이어서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전시가 끝난 후에는 중앙시장과 그곳 사람들을 기록해온 작업을 전시로 선보일 생각이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인천을 찍을 것이고, 그 모습을 세상에 알려 남기고 싶다.

인터뷰_편집팀
사진과 영상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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