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에서 손품으로 가족에서 개인 중심으로

가족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장보기.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며 장보기의 주체와 방식도 바뀌어 왔다.

20세기 이후 우리 사회는 역동적으로 변해왔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족에 대한 관점 또한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60년대, 70년대를 지나며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의식도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은 오히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이며, ‘삶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등 산아제한을 위한 표어는 당시의 의식변화를 위해 활용되었고, ‘다남多男이 다복多福’이라 여겼던 인식도 점차 변화해갔다.

가족을 위한 장보기의 주체는 주부였다

1960년대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부들은 설, 대보름, 추석 등 명절과 세시음식 준비로 재래시장, 이름하여 전통시장을 찾았다. 특화된 수산시장, 약재시장, 농산물시장에서는 장가방을 들고 실속 있는 물품을 사려고 흥정하는 주부들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발품에 대한 보답으로 ‘덤’을 요구하고, 상인들은 그에 응하면서 ‘정’을 나누는 장보기 생활상을 만들어 냈다. 가족은 자녀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대가족 생활과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핵가족 생활이 일반적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장보기 정보를 수집해서 가족생활을 위해 싼 가격으로 양질의 생활용품을 구입하기 위한 ‘발품’의 노력은 가히 여성들의 능력과도 맞물릴 정도였다. 알뜰살뜰한 주부의 살림 솜씨가 칭송받았던 시기에 장보기는 주부들이 지혜를 모아 해야 하는 주된 역할이었다. 가족을 위한 장보기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로 여성에게 그 역할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대가족의 본격적인 해체와 맞물려 장보기의 주체와 시스템도 변해갔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며 ‘쇼핑’이라는 용어가 생겨났고, 주부 혼자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던 풍경은 점차 사라졌다. 대형 할인마트에는 주말마다 가족들이 자가용을 타고 찾아오는 ‘나들이를 겸한 장보기’ 모습이 보편화되었다. 이런 변화상의 요인 중에는 양성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시대적 요청도 있었다. 핵가족 안에서 역할 분배가 달라지며, 장보기의 주체가 주부로부터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 함께 하는 ‘가족 쇼핑’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주부가 갖고 다녔던 장바구니는 어느새 종이 상자와 비닐 가방으로 대체되었고, 가까운 마트에 전화로 배달을 요청하는 것도 장보기의 풍속도가 되었다. 핵가족 생활과 맞벌이의 보편화로 대형 할인마트는 주말에 북새통을 이루었고, 상대적으로 전통시장과 주변 지역 상권은 크게 위축되었다.

발품의 시대에서 손품의 시대로

21세기 들어 한국의 가족상은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었다. 결혼 기피 현상과 더불어 결혼연령의 상승, 이혼율의 증가, 고령화 등의 사회변화와 맞물려,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에 우리 사회의 1인 가구 비율은 15.5%였으나 이후 그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2020년에는 30%, 2045년에는 36.5%가 될 것이라고 한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정보화시대의 개막과 맞물려 장보기의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1995년 처음 등장한 TV 홈쇼핑은 발품의 시대를 손품의 시대로 변모시켰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인터넷 쇼핑몰은 TV 홈쇼핑과 함께 가정에서 손품으로 장보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2017년 인터넷 쇼핑 연간거래액은 111조 8,900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중 모바일 쇼핑도 61.5%인 67조 8,706억 원을 차지하여, 집에서의 장보기 아니라, 걸어다니며, 밤낮을 구별하지 않고 개인의 장보기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여성 중심, 가족 중심의 장보기에서 개인 중심의 장보기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장보기가 가장 활발한 국가는 한국으로 나타났고, 장바구니는 스마트폰과 배송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전통시장뿐 아니라 대형 마트도 축소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보기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1인 가구의 증가

1인 가구는 ‘도시형 생활주택 선호’, 편의점의 가정간편식, 소포장 반찬, 1인용 가전제품, 가전 렌탈 등 소비에 집중하고 있다. 1인 가구의 장보기는 쇼핑 시장 전체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노동시간의 변동과 유연근무제 등에 따라 ‘자유’, ‘편리’, ‘가성비’, ‘가심비’ 등을 고려한 이들은 신속한 ‘배달’을 원하며, 편리함과 신선함을 강점으로 한 ‘새벽 배송’ 장보기도 선호하고 있다. 이제 맞벌이 가족, 무자녀 가족,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도 이런 장보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장보기 생활사는 가족 구성과 형태, 나아가 정보통신 산업의 발달에 의해 크게 변화했고, 앞으로도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보기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소비자 뒤에는 ‘배송’을 위한 기사들의 노동환경 문제, 배송에 사용되는 1회용 포장사용으로 인한 환경 문제, 온라인 장보기에 사용되는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문제, 배송사고로 인한 소비자 문제 등 다양한 생활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장보기’란 필수적인 생활이지만, 과거 재래시장에서의 감성적 교류 대신 편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주영애 |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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