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반찬은 세대마다 다른 기억을 갖는다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정성껏 만들어주시던 도시락 반찬은 어떻게 변모해왔을까?

저녁 회의 때 지급된 편의점 도시락을 집으로 가져와 맥주 한 잔을 반주 삼아 한 끼를 먹는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자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꼬박꼬박 싸주시던 학창시절의 도시락 반찬이 생각난다. 누나의 도시락에는 없었던 달걀 프라이, 늘 도시락 한켠을 차지한 분홍색 소시지와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같은 마른 반찬들. 도시락을 함께 먹던 친구들이 가져온 김치는 집집마다 맛이 다 달랐다. 이런 반찬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필자는 어쩔 수 없는 ‘국민학교’ 세대다. 필자의 윗세대는 또 다른 종류의 도시락 반찬을 추억할 것이다.

근대 이전의 도시락은 찬합에 담긴 밥과 김치, 그리고 지천에 깔린 온갖 나물 반찬들로 이루어졌다. ‘들밥’ 또는 ‘두레밥’이라고 불리며 농사를 지을 때 먹었던 새참은 도시락의 일종이었다. 취나물, 고사리, 냉이, 달래 등의 제철 나물을 데쳐서 참기름 몇 방울을 넣고 무치면 맛있는 새참 반찬이 되었으리라. 근대 이전의 부엌은 부뚜막 위에 놓인 가마솥이 주를 이루었으므로 밥을 짓고 물에 삶을 수 있는 나물 반찬을 만드는 것과 오이와 무 등을 소금에 절이고 고춧가루를 첨가하여 싱싱한 생채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요리법이었다.

농림부 농사원 교도국 홍보자료

 

1960년대 들어 일반화 된 도시락 반찬

해방을 맞고 한국전쟁을 겪은 다음 1960년대에 들어 양은 도시락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도시락 반찬’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잡지 『새 가정』의 1963년 4월호 ‘이번 달의 도시락 반찬’코너에는 오징어구이, 장조림, 감자조림, 무생채, 오이생채, 고추장볶이(요즘은 볶음 고추장으로 불린다), 제육전, 산적 등이 소개되어 있다. 최근의 도시락 반찬과 다를 바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 미국으로부터 원조 받은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로 빵을 만들어 급식을 할 형편이었으니, 위에 소개된 도시락 반찬들은 꽤 고급 반찬이었을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가정의 부엌에 연탄불이 들어오고, 양은 도시락이 일반화되면서 이전까지 김치와 나물로만 이루어진 도시락 반찬도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제 어머니들은 가마솥이 아닌 연탄불과 냄비, 프라이팬을 이용해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즈음 양계산업이 발전하면서 ‘달걀 후라이’가 도시락 반찬으로 등장하고, 소시지 가공 공장이 생겨나면서 필자의 세대가 추억하는 ‘분홍 소시지’도 주요 도시락 반찬으로 등극하게 된다.

또한 각 가정에 보급된 석유곤로 덕분에 부엌에서는 두 개의 열원을 기반으로 생채와 나물로 구성된 반찬과 함께 조림과 볶음 위주의 마른 반찬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들은 우리나라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를 볶아서 분홍 소시지 옆에 놓아주시곤 했다. ‘옛날 도시락’의 모습에서 그려지는 분홍 소시지, 멸치볶음, 김치, 흰 쌀밥 위에 오른 달걀 프라이는 이렇게 1970년대에 완성되었다.

 

 

경제 성장, 산업 발전, 기술 발달로 도시락 반찬도 진보

1980년대 보온 도시락이 보급되면서 도시락 반찬은 다시 한 번 진보했다. 보온 도시락 덕분에 겨울에도 따뜻한 밥과 반찬, 그리고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국’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온 도시락은 따뜻한 국을 저장할 수 있도록 잠금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로써 여러 가정의 된장국과 무국, 육개장 등을 맛볼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가스레인지가 일반화되면서 다양한 요리들을 빠르게 조리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달걀 프라이가 달걀말이로 진화하고, ‘맥심’ 커피 병에 싸가던 김치가 김치 볶음으로 발전되어 도시락 반찬으로 사랑받았다. 또한 가스레인지 덕분에 불 조절이 중요한 튀김 요리가 일반화되었다. 도시락 반찬 인기순위 상위를 차지하는 돈가스도 이 시절에 등장한다.

1988년 올림픽 무렵 정점에 오른 고도성장과 식품가공 산업기술의 발전 또한 도시락 반찬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필자가 1980년대 학창시절에 처음 만난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의 맛은 한마디로 ‘신세계’였다. 그 시절 비엔나소시지는 단연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다. 이 무렵 캔can 제품류가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바쁜 어머니들은 참치와 스팸을 도시락 반찬으로 애용했다. 습도에 민감해서 비 오는 날이면 눅눅해진 상태로 먹어야 했던 김은 습도를 조절하는 실리카겔이 들어있는 포장 김으로 바뀌어 언제나 바삭하게 밥을 싸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도시락보다는 급식에 관한 추억이 많을 것이다. 1997년 초등학교부터 급식이 시작되면서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도시락은 최근 ‘편의점 도시락’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바로 그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큰 플라스틱 도시락에는 학창시절의 도시락 반찬보다 더 풍성한 반찬들로 가득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료 하나가 빠진 것 같았다. 그것은 급식업체의 이익을 위한 ‘식품첨가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엌을 지키시던 어머니의 ‘정성’이다.

 

 

글_신재근(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조리학과 교수, 『집밥의 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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