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그리는 봄

노래 속에서 봄은 어떻게 표현돼왔을까? ‘노래의 언어’를 연구하는 국어학자 한성우 교수가 답을 들려준다.

노래는 우리의 삶, 그리고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다룬다. 시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노랫말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단위의 시간이 나온다. 여러 단위의 시간 중에서 노래가 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 단위는 무엇일까? 시, 분, 초 등은 너무 숨 가쁘게 흘러가니 다소 유장한 흐름을 보이는 노래에는 적당하지 않다. ‘시월의 마지막 날’ 혹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과 같이 특정 달이나 날도 노랫말에 등장하지만 노랫말이 골고루 다루기에는 달이나 날은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노랫말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시간 단위는 계절이다. 네 계절의 뚜렷한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해마다 때가 되면 되돌아오니 노랫말로 안성맞춤이다.

 

노래방에 등록된 우리 가요 25,000여 곡을 분석한 결과 나타난 노랫말 속의 계절. 출처_『노래의 언어』.

 

요즘 들어 봄과 가을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각 계절은 모두 세 달씩이니 계절의 경중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노래가 다루는 계절은 꽤나 차별이 있고, 우리의 통념과도 많이 다르다. 노래와 계절을 관련지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가을이지만 제목이나 가사 모두에서 가을은 네 계절 중 꼴찌다. 가을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가을 노래가 인상에 깊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등장하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노래 가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계절은 봄

그래도 봄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머리와 꼬리가 없이 순환하는 계절이지만 계절을 꼽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봄이다. 얼었던 대지가 녹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니 봄은 곧 시작으로 여겨진다. 제목에서는 겨울에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가사에서는 독보적인 1위에 자리 잡고 있다. ‘봄’은 ‘봄날, 봄비, 봄바람, 봄맞이, 봄처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계절에 비해서 훨씬 더 다양한 복합어로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가을이 노래의 계절이지만 실제 노래 속에서는 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 속의 봄은 새로운 시작을 뜻할 때가 많은데 이는 자연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식물은 봄이 되어야 비로소 싹을 틔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달력을 따라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3월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봄의 속성은 노랫말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다. 「봄맞이」, 「유쾌한 봄소식」, 「봄이 오는 길」 등 새롭게 오는 계절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것들이 제목에 그대로 잘 반영된다.

 

 

그런데 노랫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봄은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봄노래는 그렇지 않다. 만물을 소생시킬 ‘봄비’마저도 쓸쓸함으로 표현한다. 얼었다 녹은 대지나 그 속의 생명들에게는 한없이 반가운 봄비이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내리면 눈물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별을 했지만 봄비를 맞으며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으며 떠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니 다행이긴 하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신중현 작사, 박인수 노래 「봄비」 1967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와 사랑 심어놓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이혜민 작사, 배따라기 노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 1987

 

 

흔히 계절과 인생을 동일시하여 비유하기도 하는데 ‘봄날’은 당연히 인생의 황금기로 묘사된다. 싹이 돋고 꽃이 피는 시기이니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추미림 작사, 김용대 노래 「청춘은 꿈」 1960)라는 노랫말도 만들어진다. 그러나 ‘봄날’은 ‘가다’라는 동사와 극히 잘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이 노래들 때문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1954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김윤아 작사, 김윤아 노래 「봄날은 간다」 2001

 

봄날은 가고 또 온다

나이가 든 세대들은 ‘연분홍 치마’를 먼저 떠올리고, 젊은 세대들은 유지태와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영화와 함께 김윤아의 노래를 떠올린다. 둘 다 봄날의 아스라한 아지랑이를 닮아 있다. 꼬물꼬물 올라가는 기류를 따라 자신의 젊은 날도 저 멀리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따뜻한 봄날의 한가운데서 가는 봄날을 걱정하게 하고, 가버린 봄날을 추억하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그 이치를 잠시 있고 가는 봄날을 서러워한다.

 

 

그러나 그리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장범준 작사, 장범준 노래 「벚꽃 엔딩」 2012)이라 노래하는 현명한 노래꾼도 있다. 봄이 되면 이 노래의 순위가 역주행을 하듯이 봄은 매년 빠지지 않고 온다. 봄날이 오고 가는 것이 이치인데 굳이 가는 봄날만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봄날은 온다.

 

 

필자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서 한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일상의 다양한 언어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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