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술로 평온과 풍작을 빌다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 조상들은 다양한 음식으로 연중 평온무사와 풍년을 빌었다.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은 정월음력 1월 1일부터 시작된 신년 축제의 피날레이다. 일 년 중 첫 보름달이 뜨는 이 날, 민가에서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연중 평온무사平穩無事를 기원하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다.

 

조선시대에 대보름은 ‘술과 음식이 즐비하니, 대개 일 년 중에 제일의 명절로 여긴다(『추재집』, 조수삼)’라고 했고 19세기 중반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를 드리는데, 지금 본조本朝, 조선의 풍속도 그렇다.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제하는 날짜를 상원일上元日로 옮겨 놓았다. 잡과와 유밀油蜜에다 찹쌀을 넣어 짓는 밥을 약밥藥飯이라 하는데 이것을 가묘에까지 올리는 것은 잘못된 풍속이다. 지금 풍속에는 경향京鄕, 서울과 지방과 반상班常, 양반과 상놈을 막론하고 상원절上元節, 정월대보름을 가장 중하게 여겨 대보름이라 하고 추석절을 한가위漢嘉會라 하여, 술ㆍ고기와 기타 음식을 많이 장만하여 서로 주고 받는다’라고 할 정도로 대보름은 특히 음식을 즐기며 밤에는 달맞이를 하는 흥겨운 행사였다.

 

정월대보름에 반드시 먹는 약밥은 신라 소지왕 10년(488년) 1월 15일에 까마귀가 임금을 구한 일화에서 시작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풍습이다(『삼국유사』 1권 사금갑射琴匣). 때문에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부른다.

 

정월대보름 아침에는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빌며 호두 등을 깨물었으니 이를 ‘이 굳히기’라고 한다

 

음식으로 복을 빌다

정월대보름 날 먹는 음식은 맛이나 영양으로서의 음식보다는 구복과 주술적 의미를 지닌 것들이 많다. ‘정월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구하여 한잔을 마시니 세속에서 이를 ‘귀밝이술’이라고 한다(『세시기속』, 조운종).’ 귀밝이술은 이명주耳明酒, 명이주明耳酒, 유롱주牖聾酒, 치롱주治聾酒, 이총주耳聰酒로 부르는데 아침 식사 전에 청주를 데우지 않고 먹으면 귀가 밝아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년)에 ‘상원 이른 아침에 날밤 · 호두 · 은행 · 무 등을 깨물면서 “일 년 열두 달 무사 태평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하고 축수하니 이것을 이 굳히기固齒之方라고 한다’고 했다. 이 굳히기는 부럼이다.

또 경남에서는 대보름날 조반의 반찬으로 반드시 청어를 구워 먹는 풍속이 있다. 이날 구운 청어를 먹지 않으면 “비리가 오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살이 오르지 않고 마른다는 뜻이다. 또 이날 조반에 생두부를 먹으면 그해 살이 찐다고 일부러 이것을 먹는 사례도 있다(『한국세시풍속사전』 정월편, 국립민속박물관).

 

정월대보름을 ‘나물 명절’이라고 부를 정도로 보름에는 나물을 많이 먹는다. ‘정월 보름날에 묵은 나물을 먹어야 여름에 더위 먹지 않는다(『경도잡지』, 유득공)’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해에 말리거나 저장해 두었던 여러 가지 나물로 반찬을 해먹는데 묵은 나물이라는 뜻에서 진채陳菜, 보름날에 먹는 나물이라고 상원채上元菜라고 하였으며 민간에서는 ‘보름 나물’이라고 불렀다. 북한에서는 요즘도 정월대보름에 나물을 즐겨 먹는다. ‘평양에서는 고추잎나물, 구엽초나물, 고사리, 고비, 능쟁이나물 등을 즐겨 먹었는데 이러한 것을 ‘검정 나물’이라고 불렀다. 이밖에 함경도 지방에서는 도라지, 더덕, 취, 미역 등을, 강원도 지방에서는 호박, 오이, 무우(무)를 썰어 말린 오가리, 버섯 등을 마른 나물로 하였다(『민속 음식과 식생활』, 2015년).

 

정월대보름은 ‘나물 명절’이라고 불릴 만큼 나물을 많이 먹는 날이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대보름 날에 ‘명이 길어지라’는 의미를 담아 나물이나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복쌈’이라고 했다. 복쌈은 ‘명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이날에 김이나 취나물 등으로 쌈을 싸서 먹는데 많이 싸 먹을수록 좋다고 한다. 복쌈은 개인의 복과 그해의 풍작을 바라는 의미다. 북한에서는 보름에 국수를 즐겨 먹는다.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이면 이날을 ‘작은 보름’이라고 하면서 국수를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보름 명절에 국수를 즐겨 먹은 데는 길게 늘어진 국수 오리처럼 명이 길게 오래오래 살 것을 바라는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민속 음식과 식생활』).

 

풍년을 기원하며 오곡밥을 지어 먹다

신체와 관련한 것들과 더불어 한 해 농사를 기원하는 음식들도 즐겨 먹었다.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음식은 오곡밥五穀飯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게 쌀, 조, 수수, 팥, 콩을 섞어 지은 밥으로 보름에 먹는다 해서 ‘보름밥’ 또는 많이 먹어야 그해 농사가 잘된다는 믿음에서 ‘농사밥’으로도 부른다.

‘일부 지역에서는 열 나흗날(작은 보름, 14일) 먹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일찍 흰 쌀밥(백반)을 먹는다. 밥을 아침 일찍 먹어야 농번기에 부지런하게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대보름날(또는 열 나흗날) 다른 성을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해의 운이 좋아진다고 해서 여러 집의 오곡밥을 서로 나눠 먹었다. 열 나흗날 저녁에 아이들이 몰래 빈 집에 들어가서 오곡밥을 훔쳐다 먹기도 했다. 오곡밥을 얻으러 사람들이 많이 와야 일꾼도 많이 생겨 풍년이 든다고 믿기 때문에 주인은 이 모습을 봐도 모른 척한다(『한국세시풍속사전』 정월편, 국립민속박물관). 여러 집의 밥을 섞어 먹는다 해서 백가반百家飯으로도 불렀다.

 

오곡밥과 나물은 가장 대표적인 정월대보름 음식이다

 

또 쌀을 세는 단위인 ‘섬’을 사용한 섬만두를 먹기도 했다. 섬만두는 벼농사가 잘 돼 쌀섬이 많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크게 만들어 먹는 만두를 말한다. 속을 크게 꽉 채운 만두처럼 농사가 잘되어 쌀섬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섬만두는 평상시 만드는 만두보다 속을 꽉 차게 넣어 크게 만들어 먹었다.

 

성현1439~1504은 ‘향반香飯, 약밥’이란 시에서 ‘(정월대보름은)배가 부르니 흉년의 가난함 못 느끼겠네’라고 읊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봄이 오고 둥근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 술과 음식과 사람들이 있으니 일 년 중에 이런 날은 없었다고 할 만큼 정월대보름은 풍성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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