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나의 인생

‘축구 자료 수집 끝판왕’을 자처하는 이재형의 콜렉션에는 한국 축구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덕업일치’의 삶을 부러워한다. 요즘 말로 ‘덕업일치’란 한 분야의 ‘덕후’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루기 힘든 일이지만 일의 만족도는 그 누구보다 높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축구  자료 수집가 이재형도 그렇게 누구보다 행복한 남자다.

그는 30여 년 동안 4만 점이 넘는 온갖 축구 물품을 모아 온 수집가이자 29년째 한 축구 전문잡지사에서 일해 온 축구 저널리스트이며, 축구 역사 연구가, 그리고 K리그 30주년 기념 사업회 위원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축구에 바친 셈이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보상으로 시작하다

“초등학생 때 축구를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운동선수는 저에게 사치였어요. 결국 상고에 입학해서 대학도 공대를 들어가 금방 취직을 했는데, 그 일이 재미있을 리 없잖아요. 힘들었죠.”

어린 시절 그는 축구를 몹시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집안 사정이 허락했다면 계속 축구를 했을 텐데’하는 미련과 아쉬움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소년의 마음 속 허기를 채워준 것은 각종 축구 용품이었다. “어느 날 은행에 갔는데 축구공 모양의 플라스틱 저금통이 있는 거예요. 그걸 집에 가지고 와 너무나 행복해 했어요. 그때부터 학생이 모을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각종 월드컵 기념우표, 배지 등을 소박하게 모으기 시작했어요.”

 

‘축구선수’라는 꿈은 그를 축구 저널리스트, 축구 자료 수집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삶이 본격적인 ‘덕업일치’의 현장으로 들어선 것은 회사를 그만둔 뒤 지인의 제안으로 한 축구 잡지사에 입사하면서 부터이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베스트일레븐」의 전신인 「월간 축구」였다. 그의 일상은 행복의 날개를 달았다. 꿈에 그리던 축구 선수들을 직접 만나고 축구 현장을 뛰어다니며 장외의 청년 수집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맥과 수집 정보가 생겼으니 말이다. 집안에는 각종 축구 용품들이 산처럼 쌓여갔다.

 

그렇게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축구 덕후’는 축구 자료 수집가로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할 ‘사건’과 마주한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그는 그때를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눈빛은 반짝반짝, 말도 빨라진다. “1996년도에 우리나라가 일본이랑 공동으로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언론에는 연일 월드컵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일간지에서 그를 수집가로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의 기사가 실리자 이번에는 한 케이블 스포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방송이 나오고 나자 이번에는 같은 방송국에서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이 왔다.

 

이재형은 ‘선수의 유니폼에는 그 선수의 축구 인생이 담긴다’고 생각한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수집으로 인생을 채우다

“그때가 축구 자료 수집의 전환점이었어요.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적 개최’라는 취지로 제 축구 소장품전이 열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축구 관련 전시장도 없었고, 그런 전시회도 거의 처음이었지요. 그래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는데, 사람들이 비슷한 조언을 하더군요.”

그 조언인즉슨, 축구화나 축구공을 많이 모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물품에 담긴 사연과 역사성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유니폼과 신발이라도 누군가의 은퇴 경기에 입었던 유니폼과 신발 같은 것을 모아야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무릎을 탁 쳤지요. 그 전에는 그저 닥치는 대로 무조건 모았다면, 이후부턴 우리나라 축구 역사의 중요한 물품들을 모으겠다는, 수집에 관한 기준과 체계가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덧 수집은 저의 사명이 됐습니다.”

 

이재형은 자신의 다양한 수집품을 50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해놓았다

 

이런 그에게 가장 소중한 수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안정환의 골든볼’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안정환의 머리를 맞고 들어간 그 골든볼. 그가 수원 월드컵 경기장 기념관에 기증해 현재 전시되어 있는 그 공은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자료를 수집 하는지 잘 보여준다. 수소문 끝에 그때 심판을 봤던 에콰도르의 모레노 심판이 그 공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곧바로 남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레노에게도 소중한 그 공을 설득해 받아오기까지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철저한 작전은 필수였다.

“통역사를 대동하고, 선물도 준비해갔지만 만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결국엔 에콰도르에 있는 축구학교의 시설과 장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수락해 주더군요.” 그 일을 시작으로 그는 4강행을 결정지은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당시 마지막 키커였던 홍명보 선수의 볼을 이집트에서 공수해 오는 등 우리나라 축구사에 길이 남을 물품들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수집이 깊어지면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된다

축구화와 축구공, 유니폼, 각종 사진, 책자, 메달과 배지, 대회 팸플릿과 포스터, 골키퍼 장갑, 엽서, 마스코트 등등 그의 ‘보물창고’는 한국 축구 100년 역사의 박물관과도 같다. ‘한국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용식 선수의 1930년대 축구화, 축구 원로인 고 이광호 선생에게 받은 1930년대 ‘경평전(경성-평양 축구대항전)’의 공,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최정민 선수의 축구화, 해방 후 임시정부 시절 국가대표 정남식 선수가 해외 경기를 위해 발급받은 1940년대 여권 등 그의 보물창고에 놓인 귀한 수집품들은 우리나라 근현대 축구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국의 고물상은 물론, 해마다 비행기를 버스처럼 타고 다니며 전 세계 40여 개국을 헤맨 끝에 모은 것들이다.

 

이재형의 수집품들은 우리나라 근현대 축구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축구 자료 수집가로서 그는 언젠가 ‘풋볼아트 페스티벌’을 열고자 한다. 단지 박물관을 열어 전시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전국의 수집가뿐만 아니라 조각가, 화가, 디자이너, 음악가, 비디오 아티스트까지 각 분야 예술가들이 저마다 해석한 축구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커다란 축제의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행사를 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자나 깨나 축구만 생각하는 그에게 축구 관련 자료의 수집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는 일이다. “선수가 신는 축구화에는 그 선수의 축구 인생이 함축되어 담기지요. 마찬가지로 나는 수집을 통해 나의 사연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채워나가는 거예요. 축구는 나에게 인생이고, 종교예요.”

 

 

글_편집팀
사진_이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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