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해야 솟아라

아무나 쉽게 산천 유람을 떠날 수 없었던 조선 시대의 해맞이 풍속도는 어땠을까?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가 밝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해맞이 명소들은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우리 옛 전통인 듯하지만, 사실 새해 첫날 해맞이 풍습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시작은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생겨난 ‘정동진 해돋이 열차’였다. 특히 새해 첫날이면 정동진 넓은 모래사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붐비자 전국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해맞이 명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 모든 곳들이 ‘신년 해맞이 마케팅’을 펼치면서 새해 첫날 해맞이 풍습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의 신년 해맞이 풍속이 한 몫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근대 이전의 우리 역사에는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특별히 여겼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과는 상관이 없었지만 조선 시대에도 해맞이 풍습은 있었다. 동해 낙산사와 해금강 총석정, 지리산 천왕봉 등은 누구나 한번쯤 가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고 싶어 하는 일출 명소였다. 그리고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글과 그림을 남겼다.

 

정선_‘문암관일출’, 국립중앙박물관

 

해맞이의 설렘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

일출을 묘사한 조선시대 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의유당意幽堂 남씨南氏의 「동명일기東溟日記」다. 영조 45년(1796) 함흥판관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함흥에 살게 된 의유당이 동해의 일출을 보고 남긴 기행문이다.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편 길게 뻗쳤으니, 진홍대단眞紅大緞 중국에서 나는 비단의 일종 여러 필을 물 우희 펼친 듯, 만경창파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옥하고…”로 시작하는 일출 묘사는 조선 시대 가사 문학을 대표하는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남편을 조르고 졸라 일출을 보러 온 의유당은 혹여 일출을 못 볼까 전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사족 부녀로서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고 규정했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동해 바다 해맞이는 평생에 두 번 오기 힘든 기회였기 때문이다.

 

여성만큼은 아니었으나 조선 시대 남성들도 일출 명소에서의 해맞이에 마음 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조19년(1586) 지리산에서 일출을 기다리던 조선 선비 양대박梁大樸은 한밤중에 일어나 날씨가 맑기를 기원했다. 그 덕분인지 “붉은 구름이 만리에 뻗치고 서광이 천 길이나 드리운” 일출을 보고 「두류산기행록頭流山紀行錄」을 남겼다(두류산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또 다른 일출 명소인 해금강 총석정을 찾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도 일출을 기다리며 잠을 설쳤다. 다행히 어둠을 뚫고 솟은 태양을 목격한 연암은 그 장엄한 모습을 ‘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이란 시로 남겼다.

 

정선_‘낙산사’, 국립중앙박물관
양양낙산사도_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그림으로 남은 조선 시대 해맞이 풍경

해돋이 그림은 조선 시대 화가들의 단골 메뉴였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정선鄭敾도 해돋이 그림을 여럿 남겼다. 정철이 「관동팔경關東八景」에서 노래한 낙산사의 일출을 담은 ‘낙산사도洛山寺圖’, 서울 남산(목멱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 강원도 고성 삼일포 인근의 해돋이 풍경을 담은 ‘문암관일출도門巖觀日出圖’ 등이다. 이중 낙산사는 조선 시대 최고의 일출 명소로, 정조正祖의 명을 받고 금강산을 그리기 위해 떠난 김홍도金弘道 또한 낙산사의 일출을 그렸다. 정선의 그림보다 더욱 사실적인 김홍도의 ‘낙산사도’는 2005년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던 낙산사를 복원하는 기본 설계도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왕실 화원이었던 백은배白殷培는 의유당이 보았던 함흥 구경대龜景臺의 일출 장면을 그렸다. 함흥십경咸興十景 중 하나인 구경대는 동해안으로 돌출된 전망대 같은 절벽이다. 그림 속 거북이 머리처럼 튀어나온 구경대 위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 몇이 저 멀리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손을 뻗어 붉은 해를 가리키는 모습이 요즘의 해맞이 관광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의 새해 첫날 해맞이 풍습에 조선 시대의 해맞이 풍경이 겹쳐지는 까닭이다.

 

참고문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편,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 글항아리, 2012
최석기 외 옮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돌배개, 2007
장유승, ‘[역사와 현실] 해맞이의 유래’, 경향신문, 2018. 1. 3
주기중,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20 – 해돋이 사진의 미학’, 중앙일보, 2016.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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