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라는 꽃을 모으다

50여 년간 1만 5천여 권의 잡지와 서적을 모은 김효영의 서재는 대한민국 근현대 출판물의 역사다.

“잡지는 그 시대의 생활, 풍속, 예술, 스포츠 등 문화 전반의 흐름을 대변하는 기록문화라고 봅니다. 섞을 잡자에 기록할 지를 써서 잡지이지요. 종이 지자가 아니에요. 잡지는 그렇게 온갖 것을 기록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책 수집가 김효영. 경기도 성남시에 자리한 그의 자택 지하 서고엔 50여 년 간 모아온 각종 잡지와 서적, 기록물 1만 5천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이곳은 단순한 수집가의 서재가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 출판 문화사가 담긴 역사박물관으로 보인다. 이중으로 된 책장 말고도 바닥부터 이중 삼중으로 수북이 쌓아 놓은 책들의 종이 냄새가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인다.

 

 

잡지는 시대를 대변하는 기록문화다

그의 수집사는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64학번이니 반세기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엔 장준하 선생이 만든 <사상계>라는 월간지를 대학 교재와 함께 들고 다니는 게 일종의 멋이고 지성인의 상징이었어요. 팔에 딱 끼고 다니면 기분이 좋았지요.” 그러던 차, 1964년 9월에 <신동아>가 복간되었다. 1931년 창간되었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936년 폐간되었던, 당시에도 역사적 잡지였던 그 <신동아>가 다시 나오니 그 시절 뜨거운 피를 가진 대학생은 당연히 <신동아>를 보아야 했다. 더구나 잡지사에 보낸 독후감이 당첨되어 우편으로 책 한 권을 받게 되자 이후 신동아를 매달 사 모으게 되었다. 그렇게 30년 동안 <신동아>만 4백20권을 모았다. 잡지 수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30대까지만 해도 여력이 되는 한도에서 한두 권씩 모으다 8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했다.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서가에 가득하지만, 그가 집중적으로 모은 책은 잡지 창간호를 비롯해 각종 교회와 기관, 기업의 100년사, 그리고 성경, 서울에 관해 쓴 시와 소설, 에세이집 등이다. 특히 잡지는 그의 수집인생을 연 <사상계>, <신동아>를 비롯해 <주간야구>, <주간서울>, <퍼즐월드> 같은 연예 · 스포츠지, <보그>, <엘르> 같은 외국계 패션지를 비롯해 1940년대 월북문인들의 작품이 실린 <인민>, 남조선노동당 당수 박헌영이 글을 기고한 <적성> 등의 ‘불온서적’까지 시대와 종류를 망라한다. 100년사 역시 근대에 문을 연 학교와 교회, 기업, 지역의 백년사뿐만 아니라 국악, 기생, 흥사단, 전래 동화, 각종 스포츠까지 실로 광범위한 분야의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 최근엔 심훈의 상록수에 푹 빠져 150여 권의 상록수와 관련 기록, 기념품 등을 모으는 중이다.

 

 

그간 모은 잡지 창간호만 8천여 권, 100년사는 2천여 권, 종류별 성경도 4백여 권. 칠순을 넘긴 나이, 지금도 한 달에 수십 권씩 새로 구입하는 와중에 그가 밝히는 숫자는 꽤나 정확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컴퓨터 엑셀 파일에 사진과 함께 목록을 작성합니다. 노란색 도서관카드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걸 작성해서 가지고 있었는데, 그 숫자도 너무 많아지니까 컴퓨터를 활용했지요.” 뿐만 아니다. 책들의 뒷장이나 그 안쪽에는 ‘김효영 장서’라는 인장을 꼼꼼하게 찍어놓았다. 수집가의 꼼꼼함과 그 애정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동네에서 헌책방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모두가 넉넉지 않던 시절, 학생들은 새학기 참고서, 전과, 교과서 등을 헌책방에서 사곤 했으니까. “청계천, 노량진 등지에 큰 헌책방이 많았어요. 독립문, 연신내 쪽에도 있었고. 전국을 다녔지요. 인천 배다리 시장 쪽 굴다리에도 헌책방이 있었고 안양, 수원, 대전 등등. 지금도 몇 안 남은 헌책방 주인들은 친하니까 창간호나 백년사 좋은 게 나오면 연락을 주곤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서점과 경매 사이트도 이용하고, 인사동 등에서 열리는 경매장도 열심히 찾는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와 같이 창간호 등을 모으는 동호인들이 많았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친한 몇 몇은 여전히 모임을 이어가며 일 년에 한두 번 ‘회지’도 발행 중이다. 이들은 지난 2010년 경기도 안양에서 ‘책 수집가 4인4색’ 전시를 열기도 했다. 이밖에 단독으로 전시를 가지기도 하고, 각종 책 전시에 소장 책을 빌려주는 일도 여러 번.

“잡지사들이 영세하고 중간에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보니, 잡지를 발행하는 곳조차 창간호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멀쩡한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한번은 육군에서 발행하는 <육군> 창간호를 육군본부도 가지고 있지 않아 빌려준 적도 있다. 이를 인연으로 <육군>에 관련 글을 기고하자 대령으로 전역한 어느 군인이 자신이 모아 온 창간호 70여 권을 들고 찾아 온 적도 있다. 그런 식으로 수집가들과 인연을 맺고 서로 교류를 하는 것 역시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다.

 

 

근현대 출판 문화사의 산증인

반세기 동안 수많은 책과 잡지를 모아 온 그가 꼽는 최고의 잡지는 무얼까. 1976년 3월 창간되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강제 폐간된 <뿌리 깊은 나무>와 1970년 발행되어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샘터>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우리나라 잡지사에서 아주 중요한 책이지요. 국한문 혼용과 세로쓰기를 당연하게 여기던 당시,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처음으로 시작했고, 사이즈나 종이의 질도 당시로선 획기적이었거든요. 무엇보다 내용도 아주 건실했지요. <샘터> 역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좋아합니다.”

 

인터넷 뉴스, 전자책, 소셜 미디어 등의 발달로 주간이나 월간 잡지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는 <샘터>처럼 건전한 생각을 담고 우리의 삶을 내실 있게 표현한다면 잡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잡지를 비롯해 대한민국 근현대 출판사의 생생한 목격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니 가볍게 넘겨 들리지 않는다.

오랜 세월 가슴으로 모아 온 책들이지만, 조만간 좋은 소장처만 나타난다면 이 모든 걸 기증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2~3년 안에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나이가 있다 보니까 관리하기도 힘에 부치고. 잘 보관해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어요. 물론 기증 후에도 수집은 계속되겠지요. 수집은 내 인생 최고의 친구니까요.”

 

 

창간호만 수천 점을 모은 그가 생각하는 잡지란 한 떨기 꽃이다. “하루에 지는 꽃이 있고, 백일 가고 천일 가는 백일홍, 천일홍도 있지요. 잡지도 마찬가지예요. 창간호가 곧 폐간호가 되기도 하고, 몇 년에서 때로 몇 십 년까지 잡지들은 각자의 수명 안에서 나름의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해왔어요. 노란 꽃, 파란 꽃, 하얀 꽃, 분홍 꽃이 있듯이 그 다양한 색을 가지고 등장했다 사라지는 잡지들은 한 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귀한 기록유산이고, 저마다의 모양과 색을 뽐내며 피었다 사라지는 꽃과 같아요.”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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