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서양모자의 유행

‘모던보이’의 낭만 속으로.

경복궁을 시작으로 거리에 전깃불이 들어오고, 조선의 땅에는 증기기관차가 달린다. 경성 거리에는 우마차가 아닌 전차가 장악했다. 이들 신문물의 거리에 서양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늘어 갔다. 조선에 ‘개화開化’의 광풍이 불어 닥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모자의 왕국’으로 불릴 만큼 신분에 따라, 용도에 따라 상황에 맞게끔 다양한 모자를 써왔다. 대변혁의 시기인 개화기에 이르러 서양복을 도입하면서 모자 또한 서양의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1895년 단발령으로 상투를 자른 이후 허전한 머리에 갓 대신 모자를 쓰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복식 제도에서 양복洋服이 규정되고, 이 양복은 관료의 관복官服으로서 지식층의 상징이요, 사치품의 상징으로 새로운 모던 남성의 상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모던 보이에게 유행했던 모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래 그림은 『관보官報』 광무 4년 4월 19일,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에 규정된 문관복文官服의 모자들이다.

 

대례모<span class='small-top-text'>大禮帽</span>_ 형태가 산 모양 같다 하여 산형모자라 한다. 대한제국의 상징인 무궁화가 장식되어 있다.
중산모자<span class='small-top-text'>中山帽子</span>_ 일본 미츠코시<span class='small-top-text'>Mitsukoshi</span> 백화점에서 판매한 볼러<span class='small-top-text'>bowler</span>로 중산모자라 한다.
진사고모_프랑스제 실크 탑 햇으로 진사고모 또는 실크해트라 한다. 몸체가 접혀져 납작한 종이상자 안에 보관할 수 있고, 모자챙의 곡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상자의 형태가 유선형으로 휘어져 있다.

 

신식 관복으로서의 양복과 모자

180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세계 열강들에 의한 개항과 더불어 각종 서양 문물이 유입되었다. 통상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면서 우리의 의복제도 또한 양복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양복을 입은 사람은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신사유람단의 일원이었던 서광범으로, 요코하마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사 입은 후 빠른 속도로 지식층 남성의 복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세계 무대에 어울리는 옷차림을 갖추고자 1900년(광무 4년)에는 문관文官의 복식에 서구식 대례복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신식 문관 복식으로 대례복大禮服, 소례복小禮服, 상복常服이 있으며 그 용도에 따라 형태를 다르게 구성하였음을 볼 수 있다.

대례복의 모자는 산형모자山形帽子로 흔히 ‘나폴레옹 모자’로 불리는 그것이다. 그리고 소례복으로 연미복이나 후록코트와 함께 착용하는 모자는 실크 햇Silk hat이라 불리는 진사고모眞絲高帽가 있다. 마지막으로 상복常服은 뒷자락이 짧은 보통의 양복 재킷이며 모자는 구제통상모敺制通常帽, 즉 구라파제 모자로서 볼러bowler라 불리는 중산모자中山帽子를 쓴다.

다양한 모자의 향연

이밖에도 중절모中折帽, 조타모鳥打帽, 맥고모麥藁帽 등 다양한 모자가 유행하였다. 중절모는 꼭대기 가운데가 눌린 모양이고, 조타모는 작은 챙이 있는 둥글납작한 모양으로 헌팅 캡Hunting Cap이라 한다. 맥고모는 밀짚으로 만든 여름용 모자straw hat이다.『황성신문』 1905년 1월 6일자의 ‘양복부속품’을 파는 대흑옥상점大黑屋商店의 광고에서는 중산모를 ‘유행신형流行新形’으로, 중절모를 ‘고상우미高尙優美’로, 캡 형태의 조타모를 ‘운동모자’로 설명하고 있다.

 

양복 부속용품, 『황성신문』 1905년 1월 6일 _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모자가게 갑자옥모자점甲子屋帽子店에서 판매되는 모자를 담아주는 가방. 중절모를 쓴 남성이 그려져 있다.

 

낭만을 향한 또 다른 시선

한편, 멋쟁이 모던보이를 향한 또 다른 시선이 있었으니, 식민지 현실이나 사회모순에 대한 관심보다 유행 쫒기에 몰두하는 그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934년에는 모던보이들 사이에 맥고모자와 흰 바지가 유행하였는데, 모자는 구했지만 흰 바지가 없으니 흰 바지를 그려서라도 들고 다녀야 한다는 풍자만화가 등장하였으니 말이다. 가배(커피), 양장, 박래품(수입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향락적 사치에 몰두하던 모던보이에게 지식인으로서 선구적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매일신보』1934년 6월 25일_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오랜 과거부터 모자를 사랑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혼돈의 근대에도 다양한 모자를 즐겨 썼다.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근대 시기의 패션은 그 시대의 아픔과 애절함, 또는 특유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참고문헌
김미자, 『開化期의 文官服에 對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석사학위논문, 1974.

홍선표, 『근대의 첫 경험』,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7.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문화자료총서 -구한국 관보 복식 관련 자료집-』, 민속원, 2011.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글_이혜자│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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