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인의 겨울 ‘필수템’, 남바위

방한모가 남바위 하나뿐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선 여인에게 남바위만한 겨울 필수 아이템은 없었다.

요즘 같은 겨울, 외출을 할 때면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털모자, 목도리, 장갑을 꼭 챙긴다. ‘윈터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빠뜨리지 않았는지 점검하고 길을 나서야 낭패가 없다. 이맘때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 오리털 점퍼와 털 부츠가 익숙한 학생들이 복식사 수업시간에 걱정 어린 마음으로 종종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 여인의 겨울 ‘필수템’은 무엇이었을까? 롱패딩, 롱부츠처럼 유행을 이끄는 겨울 아이템이 있었을까? ‘트렌드’에 민감했던 조선 여인의 방한 아이템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조선 여인에게는 몇 가지 겨울 패션 아이템이 있었다. 솜을 넣은 누비옷이 있었고, 손을 따뜻하게 하는 토시도 있었다. 그리고 겨울철 필수 아이템인 방한모가 있었다. 남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남바위

 

남바위는 방한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조선 여인에게는 남바위 외에도 조바위, 아얌 등의 방한모가 있었으나 보온 효과를 따지자면 남바위만한 것이 없었다. 남바위는 남녀 모두 사용하였는데 남자의 경우 만선두리, 휘항, 풍차 같은 여러 종류의 방한모가 함께 애용되었다. 반면 조선 여인에게는 남바위가 단연 인기였다. 남바위는 다른 어느 것보다 추위를 막기에 적합했다. 예를 들어 조바위는 이마와 귀를 덮으나 길이가 뒷목덜미에 미치지 못했다. 아얌은 이마를 덮으나 귀를 드러내 방한에 효율적이지 않았다. 남바위에 비해 조바위와 아얌에는 모피를 덧대기도 여의치 않았다. 조바위, 아얌 등은 조선의 혹한을 견디기에 남바위보다 마땅하지 않았다.

 

조선 여인의 윈터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었던 남바위는 이마, 귀, 뒷목덜미가 연결되어 머리와 얼굴을 포근히 감쌀 수 있는 형태이다. 남바위를 착용했을 때 신체의 보온 범위만을 말하자면 현대 패션인 후드 티셔츠의 모자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남바위는 머리 정수리 부분이 뚫려 있다. 남바위뿐만 아니라 조바위, 아얌을 비롯한 조선의 남녀 방한모는 모두 정수리가 열린 형태이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두한족열頭寒足熱로 일컬어지는 건강에 대한 지혜는 온돌 문화와도 맞닿아 있는 삶의 한 방식이었다. 방한모의 형태에서도 우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니 흥미롭다.

 

조바위
아얌을 쓴 기생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조선의 여인에게 남바위 유행은 더욱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해진다. 먼저, 남바위는 다른 방한모에 비해 비싸고 사치스러웠다. 남바위에는 다양한 모피가 더해져 실제로도, 보기에도 따뜻하였다. 남바위의 가장자리에는 초피貂皮, 서피鼠皮, 수달피水獺皮, 호피狐皮, 양털, 토끼털 등이 덧대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 초피 즉 담비털은 최고로 여겨졌다. 모두 중국에서 수입되었던 만큼 가격도 비쌌다. 수요가 한정되어 왕실과 당상관 이상의 고위 관료, 부인에게만 허용되었다. 남바위에 사용된 담비털이 신분과 부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조바위와 아얌에는 없던 보온용 모피가 조선 여인의 과시적 심리와 맞물려 유행을 일으켰다. 겨울 패션 아이템으로 남바위가 으뜸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사대부 집에서는 날마다 사치를 일삼고 서로 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내는데부녀자들이 초피 옷이 없으면 모임에 나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것으로 보면 풍속의 퇴폐를 더욱 알만합니다(成宗實錄6年 乙未 5月 庚申).

 

담비털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상소가 거듭되었지만 담비털로 인한 사치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담비털을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을 엄격히 제한하고자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담비털을 두른 남바위는 오히려 더 유행하였다. 담비털 외에도 족제비 가죽에서 채취한 ‘서피’라는 털도 귀한 것이었다. 담비털과 족제비털을 갖출 수 없는 조선의 일반 여인들은 여우털, 토끼털을 사용하였다. 남바위의 모체帽體 색상에 따라 덧대는 모피색도 달랐다. 밤색, 검은색, 흰색 등의 모피가 남바위의 색상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선의 최고급 하이패션을 유물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남바위

 

남바위가 사치품인 것은 모피 때문만이 아니었다. 최고의 옷감을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바위의 겉은 공단貢緞이나 무늬가 있는 모본단模本緞으로 만들었다. 특히 꽃문양이 있는 화문단花紋緞, 대화단大花緞으로 만들어진 남바위는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남바위는 검은색 고급 비단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지만 여인의 것은 자주색, 남색 등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담비털의 사치가 심해지자 이를 금지하여 모피를 사용하지 않은 남바위가 등장하였다. 고급 비단으로 모체를 만들고 모피 대신 검정색 공단으로 바이어스 단처리를 하였다. 이마 부분은 오색의 수실로 누벼 장식효과를 냈다. 안감도 명주를 대어 만들었다. 안쪽 전면에 털을 넣기도 하였고, 융을 대거나 솜을 두기도 하였다. 모피를 덧대지 않았지만 고급 원단을 사용하고 수공이 많이 든 만큼 남바위는 여전히 고가품이었다. 남바위 겉면에 길상문, 학문, 나비문, 봉황문, 국화문 등을 금박하여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하였다.

 

또한 남바위는 모양과 장식이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남바위가 조선 여인의 겨울 필수 아이템이 된 것은 착용하였을 때 모습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마, 귀, 뒷목덜미로 이어지는 남바위 형태는 옆에서 보았을 때 3단계의 유려한 곡선이 흐르는 미감이 있다. 한옥 기와의 처마 선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우리나라 산등성이의 곡선을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제비꼬리 모양이라고도 하는 남바위의 뒷모습 역시 연미복처럼 절제된 마무리가 아름답다.

 

남바위

 

남바위가 아름다운 것은 풍차風遮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풍차 또한 조선의 방한모로 남녀 공용이었지만 여인들에게는 인기가 덜했다. 풍차는 남바위와 형태가 거의 유사한데 ‘볼끼’라는 부분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볼끼는 양쪽 볼을 감싸는 형태로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방한모 중 하나이다. 남바위만으로 추위를 막지 못할 때는 종종 볼끼를 더하기도 하고 바느질로 남바위에 연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미묘하게도 볼끼를 남바위에 더한 것과 볼끼가 하나의 원단으로 제작된 풍차와는 미감이 다르다.

 

볼끼가 처음부터 한 감으로 달려 있는 풍차는 둔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며 예쁘지 않다. 남바위의 옆모습에서 나타나는 3단계 곡선의 흐름이 볼끼로 인해 사라지면서 풍차는 직선적이고 투박해졌다. 반면 남바위에 볼끼를 따로 가져와 안쪽으로 연결하면 옆선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남바위와 다른 볼끼의 색상배치로 생동감을 더할 수도 있다. 남바위가 검정색 화문단에 검은색 모피이면, 볼끼는 자적색의 공단에 흰색 토끼털로 색상을 대비시키는 방식이다. 남바위와 볼끼가 합쳐진 양상이 여러모로 훨씬 아름답다. 착용한 날씨나 코디네이션에 따라 탈부착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풍차風遮

 

남바위는 모체 앞뒤 정중에 트임을 두는 방식도 풍차와 다르다. 남바위는 머리 크기에 따라 적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앞뒤 중앙에 약 1~2cm 트임을 두었는데, 풍차는 뒤쪽에만 트임이 있다. 트임이 있어 착용이 용이하다는 점도 있지만, 갑갑해 보일 수 있는 방한모에 경쾌한 느낌을 준 기교가 멋스럽다. 앞뒤 트임은 남바위만의 디테일한 매력이다. 남바위의 앞뒤 트임 아래에는 매듭, 술, 보석 등이 장식되었다. 남성 남바위에는 없고 여인의 남바위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수식이다. 더불어 산호줄, 비취 등 보패류의 구슬 끈을 남바위 앞뒤로 연결한다. 구슬 끈은 한 줄로 매달았는데 착용 시 좌우 어느 한쪽으로 늘어지게 되어 비대칭의 미감도 살려준다. 술은 분홍색이나 붉은색으로 곁들였다. 마치 한복 치마에 매단 노리개의 율동감을 남바위에 재현한 듯하다.

 

남바위가 필수 소장품이 된 데는 예의를 갖출 때 쓰는 관모로 인식된 까닭도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남바위의 인기가 높아져 널리 착용되었다. 특히 이렇다 할 관모가 없었던 조선의 여인에게는 예모禮帽로 활용되었다. 상중喪中에도 날씨가 추울 때면 남바위를 착용하였고 이는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상중에 예모로 남바위를 쓸 때는 겉은 흰색 명주, 안은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고 모피를 덧대며 장식을 배재하였다. 겨울이 아닐 경우에는 모피를 제외하고 흰색 비단만으로 만들어 썼다. 혼례, 회갑연 같은 축하 의례의 경우 남성은 남바위를 쓰고 예모의 의미로 관모를 그 위에 덧쓰기도 하였으나 점차 남녀 모두 남바위만을 예모로 사용하게 되었다. 방한모로서, 관모로서 남바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남바위(왼쪽)와 조바위를 쓴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판화로 제작했다

 

보온을 하기에도 적합하였고 사치품으로도 손색이 없었으며 형태가 아름다웠던 남바위는 조선 여인의 필수 겨울 아이템이었다. 외출을 하거나 행사에 참여할 때는 예의를 갖추는 관모가 되었다. 할머니, 어머니 세대까지만 해도 최고의 겨울 필수품이었던 남바위가 서양의 털모자와 목도리에 자리를 내준 현실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시상요원의 남바위 유니폼처럼 시간을 넘어 현대의 겨울에도 남바위의 실용성과 품격, 그리고 멋이 되살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감상에 젖어 본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국사편찬위원회 편,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두산동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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