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목욕탕을 방문하다

한때 대다수 한국인이 방문했으나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목욕탕을 ‘민속’의 이름으로 기록해보았다.

나에로크 사람들은 모든 병이 피부에서 온다고 믿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원을 곳곳에 세웠다. 사원에는 피부에 깃든 귀신을 물리쳐주는 성수로 채워진 상자가 있으며, 상자 옆에는 피부를 신령하게 가꿔주는 사람이라 불리는 주술사가 있다. 본 연구자는 원주민들과 충분한 라포를 형성하여 이 사당에서 행해지는 의례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주술사들은 피부에 깃든 귀신을 쫒아내기 위해 신성한 장갑으로 피부를 문지른다. 엄청나게 고통을 수반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로크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표현하여 연구자는 이 시원하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했다.

 

윗글은 미시건대학교 인류학자 호러스 마이너Harace M. Miner가 1956년에 발표한 ‘나시르마 부족의 몸 의례’를 패러디한 것이다. 호러스 마이너는 ‘나시르마Nacirema, American을 거꾸로 뒤집은 단어’족이라 이름 붙인 한 원시 부족 집단을 관찰하는 느낌으로 1950년대 미국인American의 삶을 서술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한국인Korean의 일상생활 중 일부, 그 중에서도 근현대 생활문화조사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목욕 문화’에 주요 테마로 등장하는 목욕탕과 관계 지어 써 보았다. 매우 생소한 느낌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연구자를 포함하여 우리는 대개 하루에 한 번씩 몸을 씻는다. 하지만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에는 주기적으로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나에로크 족의 이야기처럼 어색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나에로크는 Korean을 거꾸로 읽은 단어이다. 근현대 한국의 목욕문화에 대한 민속학·인류학적 연구의 시작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목욕탕이 언제부터 한국의 생활문화에 등장했으며, 한국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목욕탕을 이용하였으며, 지금 사라져가는 목욕탕은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을까?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2018년 10월부터 ‘한국의 목욕문화: 목욕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제 갓 시작하여 데이터 집적의 수준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아직 냉탕 정도이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약 1개월 반 동안 조사했던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내어 보자면 의외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탕
‘사용 후 돌려주세요’ 라고 씌어 있는 남탕 수건
남탕 탈의실 내 이발소
남탕 탈의실 캐비닛

 

첫째, 목욕탕 굴뚝은 굵고 짧은 사각기둥과 가늘고 긴 둥근기둥으로 나뉜다

목욕탕 하면 굴뚝이다. 과거에는 톱밥이나 나무를 떼어 물을 데웠다고 하며, 벙커씨유, 경유를 거쳐 지금은 도시가스와 전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경유 보일러를 사용했던 시절까지만 해도 굴뚝에서는 눈에 보이는 연기가 나왔을 것이다. 원래 목욕탕 굴뚝은 벽돌로 세운 굵고 짧은 사각기둥이었다고 하나, 분지 지형처럼 공기가 모여 있는 곳, 주변 건물이 높은 곳 등 연기가 잘 빠져나가지 않는 지형은 콘트리트 몰드로 찍어낸 둥근 기둥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둥에 따라 목욕탕을 표시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사각 기둥은 타일로 목욕탕이라 붙여 픽셀의 멋을 뽐냈고, 둥근 기둥은 페인트로 칠해서 폰트의 멋을 뽐냈다.

 

둘째, 남탕에는 진짜로 샤워수건과 수건이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발소도 있다

몰랐다. 여탕만 들어가다 보니 정말로 몰랐다. 연구를 위해 목욕탕을 쉬는 날 남탕에 처음으로 들어가 봤더니 이발의자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발사는 없었다. 요즘은 남성들도 헤어숍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경우가 늘어나다보니 이발을 점점 그만두는 추세라고 한다. 연구자가 갔었던 목욕탕에서도 이발사는 없고 이발의자만 쓸쓸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샤워 수건과 수건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남탕 수건에도 ‘사용 후 돌려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수건 회수율은 아마도 소문 이하인가 보다.

 

셋째, 여탕에는 목욕바구니와 탄산언니가 있다

여탕 탈의실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 온 것은 목욕바구니의 행렬이었다. 거의 매일 목욕을 오는 사람들이 목욕용품을 바구니에 담아 보관해 둔 것이 캐비닛 위에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매일 목욕을 오는 사람들은 10회 또는 20회 단위로 목욕권을 끊어 목욕탕을 이용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목욕바구니에 적힌 바구니 주인의 이름이었다. ‘OO엄마’ 또는 ‘OO네’ 같은 이름을 벗고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 이름이나, ‘OO언니’처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명칭들을 볼 수 있었다.

 

여탕
여탕 탈의실 캐비닛 위의 목욕바구니
여탕 탈의실에는 탄산언니가 있다
온갖 음료가 이곳에서 제조된다

 

이발사가 있는 남탕과 달리 여탕에는 음료수를 판매하는 ‘탄산언니’가 있다. 보통은 ‘음료수 아주머니’라 불리지만 연구자가 갔던 어느 목욕탕에서는 특이하게 탄산언니라 불렀다. 이유인 즉 탄산음료를 이용한 독특한 음료수 제조 비법이 있다고 한다. 이온음료나 비타민 음료만 있는, 그마저도 잘 팔리지 않는 남탕과 달리 여탕의 음료수는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별미는 얼음을 가득 넣은 커피로 사우나 필수품이라고 한다. 얼음 리필은 불가라 하니 녹기 전에 호로록 마셔야 할 것 같다.

 

집에 욕실이 없었던 시절 우리는 모두 목욕탕에 다녔다. 명절이나 추석 전, 입학식이나 개학식 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가서 몸을 깨끗이 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거공간에 서양식 욕실과 샤워시설이 등장하고 매일 씻는 것이 간편해지면서 큰일을 앞두고 몸을 깨끗이 했던 청결의 사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때 대다수 한국인이 방문했던 목욕탕, 이제는 ‘민속’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글_이인혜|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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