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전성시대

강렬한 색깔, 간결한 구호로 무장한 각종 포스터가 차도와 전봇대, 골목길을 수놓던 시절이 있었다.

문화계에서 ‘복고’는 언제나 인기 있는 컨텐츠다. 30~40대 이상에게는 향수를 선사하고,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인 어린이와 청소년에겐 세련과는 거리가 멀어 더욱 유쾌한 ‘병맛’의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기절베개’, ‘꿀잼영어’, ‘철벽쿠션’, ‘보습 끝판왕’ 등 입에 짝짝 붙는 간결한 문구와 일부러 촌스럽게 꾸민 ‘복고 광고’는 확실히 시선을 잡아끈다. 지하철이나 길가에 붙어 있는 광고판, 인터넷에 뜨는 각종 광고 이미지를 보면 어린 시절 보았던 각종 선전 포스터들이 절로 떠오른다.

 

촌스럽고 어설퍼 더 친근했던 그때 그 포스터들

2018년의 눈으로 보면 인쇄소에서 그때그때 급하게 만든 포스터들은 어딘지 어설프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친근하다. 요즘 광고 이미지들이 40여 년 전 포스터 느낌을 가져오는 건 꼭 ‘복고’가 인기여서만은 아닐 테다. 그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 어설픔에 끌리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1990년대 초반까지도 길가 어디에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지금처럼 선전 매체가 다양하지 않았으니 주택가 골목길과 많은 이들이 다니는 차도의 벽면은 온갖 문구로 도배된 포스터들의 광고판 역할을 했다. 전봇대는 아예 포스터의 전시장이었다. 사실 내용은 단순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꺼진 불도 다시보자’, ‘엄마는 신고하고 아빠는 잡아내자’ 등 가족계획, 화재예방, 반공방첩 등 정부의 정책을 알리기 위한 각종 공공 캠페인과 계몽 포스터들이 대세를 이뤘다. 문화계의 포스터들도 엇비슷했다. 특히 에로 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70~80년대 선정적인 영화 포스터들은 길가는 이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한때 영화 포스터는 대중에게 가장 큰 시각적 자극을 선물한 매체였다

 

그 시절, 포스터 제작은 정부나 광고 기획자들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초등학생들이 문방구에서 꼭 사야 하는 미술시간 준비물엔 수채화 물감과 함께 ‘포스터 칼라’가 반드시 들어 있었다. 채도 높은 강렬한 원색에 쫀득한 질감을 지닌 포스터 칼라를 붓에 묻혀 하얀 도화지 위에 짙게 칠하고,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강렬한 문구를 짜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포스터를 보면 그 시대를 안다

포스터의 전성시대는 대략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다. 우리말로 된 현대적인 의미의 포스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광복 직후에는 쥐잡기, 구강 위생 등 생활 위생을 장려하거나 왜색 말살, 저축 장려 등의 구호가 적힌 계몽 포스터가 주를 이뤘다. 약품 광고나 영화 포스터도 하나 둘 등장한 이 시기 포스터들은 대부분 인쇄소 화공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의 발발로 국방부에서 제작한 반공 포스터와 각종 징병 · 모병 포스터 등 전쟁 관련 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반공 · 방첩 포스터가 제작 배포되었다

 

이후 1960년대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대였다. 이에 따라 포스터들도 경제 개발 정책을 선전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하지만 산업과 경제가 발달하면서 마침내 현대적인 디자인 개념이 포스터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포스터 문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선전 포스터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등의 공업 생산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상품 포스터들이 대거 등장했고 다양한 컬러와 일러스트레이션이 포스터에 활용되어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수출입국’이 지상 목표인 시대였던 만큼 1966년 상공부 주관으로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가 개최되면서 세련된 디자인의 포스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전람회는 1977년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개최되고 있는 유서 깊은 공모전이다.

 

1960년대 포스터는 경제 개발과 생활 개선 등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포스터가 전문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본격적으로 제작된 시기는 1970년대부터다. 그 유명한 ‘작은 불도 크게 보고 꺼진 불도 다시보자’ ‘일순간의 방심이 평생을 망친다’, ‘단 한 번의 부주의로 국방재산 재가 된다’도 이때 등장했다. 광고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대기업들이 각종 신문광고와 선전 포스터를 대거 쏟아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사고는 순간에 후회는 영원히’, ‘나라사랑 자연사랑’, ‘자연은 아름답게 환경은 깨끗하게’, ‘축복 속에 자녀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 ‘둘도 많다!’ 등의 표어가 적힌 포스터가 등장했다. 또한 후반으로 가면서 컬러 TV와 서울올림픽을 통해 포스터의 수준도 한 단계 도약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포스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뛰어난 디자인 인재들이 텔레비전 광고와 출판, 영화 쪽에 몰리면서 포스터는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포스터가 마지막 불꽃을 피운 최후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영상 매체가 발달하고, 인터넷까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포스터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볼거리가 부족했던 그 시절, 포스터가 남겼던 시각적인 충격은 언제까지나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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