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펜심’

만년필을 모으는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그에게는 글 쓰는 이가 으레 필기구를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사연이 있다.

“막상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선, 고민이 좀 됐어요. 비싸고 희귀한 만년필을 갖고 있는 수집가가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2003년 첫 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권의 ‘나무 책’을 써 온 우리나라 대표 나무 전문가다. 그런 그가 만년필을 모은다고 했다. 저마다 특별한 사연 하나 간직하지 않은 수집가가 어디 있겠냐만, 그의 만년필 수집 이야기에는 눈이 번쩍 떠지는 애틋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소박했다. 그가 말한 대로 어쩌면 그의 수집은 매체에서 소개하는 ‘컬렉터’들과 비교해 조금 옹색할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인 숫자도 많지 않고, 깜짝 놀랄 만큼 비싸거나 세상에 몇 자루 없는 희귀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배송비 포함 천오백 원짜리부터 비싸 봐야 20~30만 원 안팎의 만년필 자루들. 고규홍은 수집을 위해 집이나 차를 파는 무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끌린다. 그의 사연엔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어떤 콤플렉스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요란하진 않지만 절절한 노력’이 담겨 있다.

 

고규홍이 수집한 만년필들은 소박하지만 절절한 노력이 담겨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만년필로 쓰다

그와 만년필의 사연은 거의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9학번인 그가 대학생 시절,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학교 선배와 작은 대포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어느 날이었다. “선배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냈어요. 파카 45로 기억하는데, 아주 낡은 은제 만년필이었죠. 은이다 보니 손 닿는 부분이 까맣게 변해 있었어요. 보는 순간 아주 낡았다는 느낌이 오는 것이었죠.” 선배는 일제강점기부터 신문기자 일을 했던 아버지가 아들이 신문기자가 되자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부러웠어요.” 그의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선배가 아버지에게 받은 것은 단순한 선물 이상의 ‘가보’였고, 이를 자랑스럽게 지니고 다니는 선배의 이야기는 ‘클래식한 기품’으로 똘똘 뭉친 것이었다. “부러운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특히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어요. 저의 아버지는 무학無學, 그러니까 초등학교도 안 나온 ‘무식쟁이’였거든요. 이북에서 내려와 막노동하면서 우리를 키운 사람. 그러니까 만년필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부러움을 더욱 짙게 만든 것은, 그것이 앞으로도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거는, 죽어도 극복할 수 없는 부러움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직접 모으자’고 생각했다.

 

‘부러움 때문에 만년필을 모으게 됐다’고 술회할 때 고규홍의 눈빛은 반짝였다.

 

이후 학생 신분으로 버스비를 아껴 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용돈으로 만년필을 샀다. 만년필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자 양복을 사주겠다는 친척 어른에게 ‘대신 만년필’을 외쳤다. 중앙일보 기자로 취직을 한 다음에는 수집이 한결 수월해졌다. “매달 월급이 나오니까요. 회사에서 가까운 남대문 수입상가에 자주 갔어요. 거기 가게 아줌마랑 친했죠.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월급날 살 테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마시라고 하면 정말로 따로 보관해주셨어요.” 그렇게 기자 시절엔 해외 출장을 가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구매 대행’을 부탁했다. 주변에서도 이런 저런 만년필이 생기면 당연한 듯 그에게 건넸다. 그렇게 한두 자루가 모이고 모여 이제 100여 자루 남짓. 한 자루만 산 해도 있고, 열댓 자루 이상 산 해도 있다. 만년필을 사려고 빚을 내거나 통장을 깨지 않고, ‘토큰비’를 아끼고 술값을 아껴가며 가지고 싶은 것을 사 모았다.

 

 

만년필로 써내려가는 옛 시와 나무 이야기

재작년 그는 수집 인생에서 가장 귀하달 수 있는 만년필을 구입했다. “아버지가 96세 나이로 돌아가셨어요. 유품을 보니까 예금통장이 다섯 개 있는 거예요. 누이랑 쪼개고 집사람이랑 쪼개고 하니까 저한테 127만원인가가 남았어요.” 그 돈으로 그는 만년필 두 자루를 샀다. 좋아하던 파버 카스텔을 사고, 돈이 조금 남자 델타 제품을 하나 더 샀다.

마침내 만족이랄까, 어떤 충족감이 들었을까? “만족이라기보다… 뭔가 복잡하죠. 제가 평생 그 선배의 만년필을 그렇게 부러워했는데… 어쨌든 이게 아버지가 직접 쓰다 물려준 만년필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물려준 거라는 생각은 가질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남긴, 마지막 유산으로 산 거니까….” 그렇게 아버지의 유산으로 만년필을 구입한 뒤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이제 만년필 끝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만년필을 향한 애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종의 ‘파더 콤플렉스’에서 시작된 수집이었지만, 만년필은 어느덧 삶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일 터.

 

부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은 만년필이 어느덧 고규홍의 일부가 되었다.

 

7~8년 전부터 그는 스프링 노트에 만년필로 옛 시를 베껴 쓰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면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 편 이상의 한시漢詩를 만년필로 쓴다. 그렇게 시를 쓴 노트가 작업실 한켠에 쌓여있는데, 그 높이가 1미터를 훌쩍 넘는다. “한시가 엄청나게 많아요. 그 방대한 시들을 다 베낄 수 없으니 그 중에 나무가 들어있는 시만 쓰는데 이게 또 나무를 연구하고 집필하는 작업에 도움이 됩니다. 그 결과로 올해 『나무가 말하였네 : 옛시』라는 책도 냈지요.”

 

마치 불교 경전을 필사하는 사경처럼, 그가 옛 시를 쓰게 된 연유는 바로 ‘만년필 관리’다. 본디 물건이라는 것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금세 망가지고 만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는 ‘손글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저는 사실 누구보다 먼저 워드 프로세서를 썼어요. 1990년대 초에 벌써 컴퓨터 사용법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년필은 사 모으는데 쓸 일이 없는 거예요(웃음).”

 

만년필에 대한 책을 한 권 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숨이 붙어 있는 한 나무를 공부하고 책을 쓰고 강연을 이어갈 것이고, 만년필도 계속 모으겠지만 이에 관해 책을 쓰는 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만년필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나무만으로도 평생 할 이야기가 많아요. 다만 필사는 계속할 것 같아요. 말년에 심심하지는 않겠죠(웃음). 아버지 덕에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 만년필 수집과 필사는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됐으니까요.”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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