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살아있다

한옥 호텔 ‘혜화1938’을 지은 김원천은 한옥을 오래 생각해온 건축가다. 그는 한옥의 원형과 함께 ‘흐름’을 보자고 이야기한다.

한옥과 모던. 어울리지 않을 같은 것 같은 존재와 성질이 조화를 이룬 공간들이 전국에 자리하기 시작한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 여름 문을 연 혜화동의 한옥 호텔 ‘혜화1938’은 어느덧 하나의 흐름이 된 일련의 ‘모던 한옥’과 같으면서도 다른 공간이다. 이곳을 짓고 직접 운영까지 하고 있는 한옥살림 대표 김원천 건축가는 이곳을 통해 21세기 한옥의 존재, 그리고 전통의 의미를 새삼 묻는다.

 

Q. 호텔 이름을 보니 1938년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한옥인 듯싶다.
김원천 대표이하 김원천_그렇다. 1938년 무인년에 완공된 24평 한옥이다. 일제강점기였지만 이 집을 착공할 때만 해도 중일전쟁 초반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 땅에 한옥을 짓는 게 가능했다. 전쟁은 37년에 시작됐는데, 준비를 위해 여기에 공장이 많이 세워졌고 그때 많은 기술자들이 서울에 올라왔다. 그렇게 전쟁이 커지기 전에 가까스로 허가를 받아 지은 집이다.

 

Q. 파란색과 초록색 타일, 격자무늬 바닥 등 기존 한옥호텔과 비교해 모던하고 대담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경성구락부느낌도 나고.
김원천_그렇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한옥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민속촌이나 안동하회마을이니까.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의 한옥, 이 집이 지어진 시대의 한옥 그리고 지금의 한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와 지금이 또 다른 거다. 처음 이 집을 설계하고 인테리어를 할 때 그 타깃을 선정함에 있어 요즘 사람들 취향을 생각해야 했다.

 

 

Q. 한옥의 원형이 아니라 요즘의 취향을 생각했다는 게 흥미롭다.
김원천_지금 이 공간은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십분 넘게 걸어와야 한다. 그렇다면 북촌이나 서촌, 익선동의 게스트하우스들과 차별화된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는 없는 새로운 경험. 그래서 생각한 게 ‘사람들이 함께 쉬고 파티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것에 맞춰 가구나 공간의 높이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침대를 놓은 것도 그런 의도다. 일반적인 한옥에는 요와 이불, 보료가 깔려있지만 우리는 그런 걸 포기했다. 요즘 20~30대 젊은 친구들에게 한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40대 이상은 그래도 한옥에 직접 살았거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 세대라면, 젊은이들에게 한옥은 드라마에서 본 것이 전부다. 그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이 호텔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위한 이별 파티나, 지인들의 와인파티, 브라이덜 샤워를 하기도 한다.

Q. 전통 한옥이지만 차별화된 새로운 경험을 주는 공간이란 뜻인가?
김원천_나는 공간을 만들었지만 이 공간이 사람의 행위를 규정하기 보다는, 여기서 다른 뭔가가 파생되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뭔가를 찾게 되고, 그러면 이곳에 고객들 각각의 색이 입혀질 수 있다.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함에 있어 누군가 위에서 아래로 제시하는 방법을 넘어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는 것. 고객이 시간을 갖고 어떤 행위를 하면서 완성되는 거다.

 

 

Q. 공간을 설계하고 만든 건축가가 직접 운영, 관리까지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가?
김원천_그렇다. 이불도 갈고(웃음). 처음엔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어느 건축사사무소 옆에 한옥 한 채가 비어서 사무실로 확장하려 했는데 공간이 아까웠다. ‘그렇다면 여기에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내 손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욕심이 생겼다. 그 다음을 보고 싶었던 거다. 건축가가 클라이언트 요구에 맞춰 집을 짓고 나면 이후의 피드백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선 그게 가능해진 거다. 고객 응대를 하다 보면 말로는 주고받을 수 없던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흥미롭고 다양한 피드백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많은 걸 깨달았다. 오픈한 지 1년, 그 사이에도 공간은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며 얼마든지 변할 수 있더라.

 

Q. 원래부터 전통 건축과 한옥에 관심이 많았나? 현대건축을 전공했지만 전통 건축에 뛰어든 사연이 궁금하다.
김원천_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도에 나무를 직접 다루는 목수 일을 4년 정도 했다. 그 후 설계사무소에 들어가서 7년 정도 일했는데 그곳도 한옥을 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한옥을 한 셈이지만, 원래 관심사는 단청이었다. 단청을 그리는 화공이 되고 싶어 ‘한국문화의 집(KOUS)’의 단청반을 수강했는데, 건축을 전공했다고 하니 ‘건축이면 대목이지!’ 하는 거다. 그래서 아주 우연히 대목 일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왔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한옥 구조나 이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목수 일을 통해 독학을 할 요량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많이 배웠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규장각 권역의 복원 일에 막내 목수로 참여하면서 나무의 성질도 알게 되고 막연하게 그림으로만 봤던 궁궐 건물을 공부했다. 힘들었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Q.
그때 대목장 일을 배우면서 한옥의 매력에 눈을 뜬 건가?
김원천_한옥이어서가 아니다. 나무로 집을 짓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선조들이 어떻게 다루고 만져왔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웠다. 건축과를 나왔으니까 ‘한옥이 왜 아름답지?’ 하면 처마선, 비례 같은 것들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결과물이었다. 쉽게 구할 수 있고 우리한테 맞는 나무를 쓴 거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크기에 맞게 건축을 한 거다. 중국에서 내려 온 어떤 법칙이 우리나라 환경, 상황에 맞게 완성된 거다. 그러면서 우리 도시에 남아있는 한옥을 어떻게 개조하고 보존하면 좋을지 깨달았다. 단순히 한옥이 어떤 오브제, 전통이 아니고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

 

Q. 한옥은 살아있다? 그 깨달음이 혜화1938’의 모던함으로 이어진 건가?
김원천_‘한옥’과 ‘전통’은 어느 시점에 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한옥을 복원한다고 하는데, 어느 시점 어느 시대 한옥의 복원인가? 경복궁 근정전은 조선 초에 지었는데 자료는 흥선대원군과 고종이 복원했을 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복원을 어느 시점, 어느 모습으로 해야 하나? 지금까지는 일단 한옥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면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 전통한옥이란 무엇인지,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김원천_한옥과 전통의 보전과 보존 못지않게 그것을 지금 시대에 맞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어떤 문화재가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관한 정보를 만들고 기록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제 그것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 ‘그때의 지혜가 이렇게 반영됐으니까, 앞으로 이걸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 공간이 시간의 변화를 어떻게 계속 담아왔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앞으로의 전통과 민속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흐름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 그리하여 앞으로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며 나아갈 것인지 생각하자는 거다.

 

Q. ‘혜화 1938’ 일주년을 맞은 소회와 앞으로의 바람을 들려달라.
김원천_우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남아있는 전통으로서만 한옥을 본다. ‘어느 시점에 우리 조상이 살던 집’이라는 의미에 멈추어있다. 하지만 이건 거주 공간이고 계속 움직이는 문화다. 어느 시점에 우리 조상이 필요해서 만든 이 집에는 지금까지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모습이 축적되어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 공간이 지금 이 시점에 호텔로 쓰인다고 하는 것은 그 연속성 안에 있는 거다. 설계하고 시공하는 입장, 관리하는 입장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정해진 것을 따르거나 이어 받는 게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담아야 하는 거다. 건축가로 설계만 했을 때는 몰랐던, 팔자에 없던 호텔리어가 되다 보니 사는 사람 입장에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건축가로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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