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꿈을 찾겠소

앳된 청춘들을 모아 농촌에서 조금 낯선 실험을 하는 남자가 있다. 충남 홍성 ‘젊은협업농장’ 정민철 대표는 어떤 희망을 보았을까?

“나도 시골 사람이니 어려선 농사를 지었지만 정말 힘든 일이에요.
도시 애들이 와서 생고생 하는 모습이 뭔가 짠합디다.”

 

택시를 타고 고불고불 농촌 마을로 들어가는 길, 행선지를 들은 기사 아저씨의 일성이 귀에 콕 박힌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 정민철 대표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이 2011년의 일이니, 노인들만 있던 작은 시골 마을에 푸릇한 청춘의 기척이 들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7년이다. ‘자본도, 기술도, 땅을 물려줄 농부 부모도 없는 청춘도 농사를 지어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실험에 나선 정민철 대표가 진행하고 있는 작지만 큰 모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젊은협업농장이라는 이름 안에 많은 답이 있지만, 어떤 곳인지 설명해 달라.

정민철 대표이하 정민철_농사를 짓고 싶거나 관심이 많은데 자본도 기술도 없고 방식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찾아와 원하는 기간만큼 농부로 살아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다.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학식, 졸업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협동조합이다. 다양한 직업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나눠보고 서로 괜찮으면 함께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산다.

 

Q. 협동조합인데, 생협이나 한살림 같은 경우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정민철_생협 같은 협동조합들은 출자를 통해 조합원이 된 사람들이 농산물을 사먹는 게 기본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조합원이 되면 생산에 함께 참여할 수가 있다. 매장에 가서 여기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받는 거다. 그 차이가 있다. 물론, 농산물을 팔아 수익이 나오면 일한만큼 배당을 받을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 농사짓는 친구들이 다 조합원이 될 필요는 없다. 굳이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우리 뜻에 공감하면서 ‘이 정도는 내도 되겠다’ 생각하는 경우다. 60대에 귀농하려는데 지금 출자하면 그때 여기서 농사지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된다. 그때까지 우리 농장이 남아있다면(웃음).

 

 

Q. 독특한 아이디어를 품고 실행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정민철_가까운 홍성군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라는 유명한 사립 농고가 있다. 오래 전 그 학교와 인연이 닿아 학교 일을 돕게 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친환경 농민을 양성하자는 것을 목표로 학생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치는 곳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민이 생겼다. 입학생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거다. 말은 학교지만, 특수한 곳이다 보니 처음엔 40대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쯤 가면서 30대가 많아지더니, 후반으로 가면서 20대가 중심이 되더라. 한마디로 농업에 관심 갖는 사람들 나이가 젊어지는 상황을 현장에서 목도한 거다. 하지만 거기서 바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Q. 농부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는 건 희망찬 소리 아닌가?

정민철_40대는 최소한의 자본을 가지고 있다. 30대만 해도 기술이 있다. 일정 기간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20대는 완전히 다른 얘기더라. 기술도, 자본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열심히 농사를 배웠어도, 막상 졸업 후 대책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일굴 농장이 없는데 농사만 가르치면서 농부가 되라고 하는 식이었다. 졸업생들은 ‘농사를 지으려면 자본이 필요하구나. 먼저 서울에서 돈을 벌어야겠다’가 되어 거꾸로 서울에 가는 엉뚱한 상황들이 생겨났다.

 

젊은협업농장의 이원석, 정민철 대표, 김세빈(왼쪽부터)

 

Q. 그 엉뚱한 상황들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찾은 것이 젊은협업농장이었나.

정민철_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실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계속 배우게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었다. 농촌 고령화가 점점 심해져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막상 아이들은 농사를 지을 ‘곳’이 없었다. 원인이 뭘까 고민하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러면 일단 내가 먼저 해보자!’ 하게 된 거다. 나 역시 자본도 없고 농업 기술조차 없는데 내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1년에 학교를 졸업하는 20대 청년 두 명 데리고 이 모험을 시작했다.

 

Q. 비닐하우스 한 동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정민철_세 명이서 이리저리 돈을 모아보니 가까스로 천만 원 정도가 모이더라. 이걸로 뭘 하지? 고민하다 일단 비닐하우스 한 동을 빌려 무작정 농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쌈 채소를 하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200평짜리 비닐하우스 8개와 3천 평 정도 되는 논을 임대해 일구고 있다.

 

Q. 많은 농산물 중에 쌈 채소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정민철_원래 농사는 계절을 탄다. 봄과 가을엔 일이 많고, 여름과 겨울엔 일이 적다. 가진 건 몸뚱이 밖에 없는 우리가 365일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작물이 쌈 채소였다. 기본적으로 돈이 되는 것을 찾은 게 아니다. 우리 조건, 그러니까 계속 일할 몸만 있고 돈은 없는 청춘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선정 기준이었다. 원래 농부들은 쌈 채소 농사를 안 좋아한다. 계속 일해야 하니까. 그래서 동네 농부들과 자연스럽게 상생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같은 것을 하면 중복되고 충돌이 되니까. 이래저래 쌈 채소가 답이었다.

 

젊은협업농장은 쌈 채소로 농사를 시작했다. 365일 쉼 없이 일할 수 있는 작물이기 때문이었다.

 

Q. ‘젊은협업농장의 형태를 갖추고 출범을 하게 된 건 언제인가?

정민철_1년 동안 농사를 짓고 겨울을 맞았다. 어느새 우리 셋 말고도 사람들이 하나 둘 불어나 십여 명이 되어 있었다. 소문을 낸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더라. 한두 달만 쉬다 가겠다는 사람들부터 외국인까지 있었다. 오는 사람 안 막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다만 우리는 ‘생태적으로 살고 싶다’, ‘자급자족하고 싶다’ 이런 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온 친구들보다는 그야말로 막막한 청년들, 절실한 친구들을 선호했다. 그리고 농촌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는 건강한 친구들. 이 친구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다. 젋은협업농장은 2011년에 그렇게 탄생했다.

 

Q. 지금까지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농장을 거쳐 갔나?

정민철_세기 힘들다. 서울시와 함께 2주 동안 농민 체험 기회를 주는 ‘이주농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방학을 맞은 중고등학생도 많이 다녀갔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 다양한 친구들이 왔다가 갔다. 현재는 9명의 친구들이 농장에 함께 있다. 그간 독립해서 자기의 농장을 일군 친구도 있지만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가거나 근방에서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그런 것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을 다녀간 모든 사람들이 농부가 될 필요는 없다.

 

Q. 이곳을 거쳐 간 모두가 꼭 농부가 될 필요는 없다?

정민철_그렇다. 실제로 농민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어려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농민이 안 되면 실패냐? 아니다. 다양한 재주를 가진 친구들이 농업 주변에 얼마나 배치되느냐에 따라서 그 농업이 살고 죽고가 결정된다. 농장 주변에 다양한 친구들이 배치되어 서로 교류하면 그 농장은 사는 거다. 이를테면, 여기 포스터를 봐라. 서울에 있는 디자이너한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 삶에 대한 이해도 측면에서. 그런데 여기 이 디자이너들은 우리 옆에서 함께 술 먹고 농사를 지으며 우리를 봤다. 그들이 만드는 포스터는 다른 거다. 보통 농장들은 농업이 아닌 다른 직업군 사람들이 오면 왜 오냐고 한다. 사진가, 패션 디자이너 같은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이들과 함께 농업의 저변을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협업농장 식구들은 해 뜨면 농사짓고 해 지면 공부한다.

 

Q. 그래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건가?

정민철_낮에는 농사를 짓고 저녁엔 강좌를 듣게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도 듣는다. 이곳을 찾은 20대 젊은이가 요즘 같은 백세 시대에 80년 가까이 농사만 지을까? 지겨워서 못한다. 이곳에 있는 동안 공부도 가르치자고 생각했다. 마침 다양한 직업군의 친구들이 모이니 재미있는 일들이 파생되더라. 음악 하는 친구가 와서 ‘팜farm므파탈’이라는 팟캐스트도 하게 되었고, 사진 찍는 친구가 와서 근사한 사진들을 찍고, 행사가 있을 때 재기발랄한 포스터도 만든다. ‘혁신’, ‘엄청난 아이디어’ 같은 것은 천재들이나 하는 거다. 하지만 여기서 만나지 않았던 어떤 두 개가 만나니 혁신이 가능하더라. 농업과 패션이 만나고, 사진·교육·복지가 만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날지 모른다. 이 친구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장기적으로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Q. 농촌과 청년의 미래에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나?

정민철_일종의 셀프 실험이었다. 진짜 가능한지 우리가 한번 해보고 그 모습을 보여주면, 남들도 ‘어, 가능하네?’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개인의 의지나 배움의 방향 때문에 못할 수는 있지만 불가능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농촌은 비어 있고 도시는 실업률이 높은데, 농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재기발랄한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고 있고, 이런 움직임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건 맞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앞으로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는 것이다. 농촌에 청년이 들어오기만 한다고 해서 그냥 건강해지지 않는다. 무너진 공동체 문화가 살아날까, 아니면 도시 청년들의 개인주의 문화가 농촌에도 가속화될까? 하지만 농촌은 기본적으로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야만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한 곳이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고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나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농촌은 본래의 가치를 유지하고, 청년들은 이곳에서 희망을 찾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렇다면 이전과는 다른, 좀 더 새로운 모습의 농민이나 농촌이 형성되지 않을까. 희망을 보았냐고? 그것이 지금 나의 꿈이고 희망이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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