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풍자에 반한 예순 해

최근 큰 민화 전시들이 열리고, 곧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도 민화가 전시된다. 민화 수집가 안덕환 회장은 60년 넘게 민화와 함께한 소중한 날들을 이렇게 회고했다.

“왜 일본인은 세계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한국 고미술을 예찬했을까?”

오디오 수입회사를 운영해온 안덕환 회장이 처음 우리 고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부산 피난 시절에 읽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한 일본인이 세계 어떤 나라에도 조선만큼 가치 있는 도자기는 없다고 호평한 『한국 골동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을 읽고 호기심에 사로잡힌 것이다. 밤새 그 책을 읽고 충격에 빠진 고등학생은 언젠가는 우리 고미술을 소유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의 꿈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한 안덕환 회장은 전국을 누비며 고미술품을 찾아다녔다. 지금 그의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8폭 병풍은 전주의 고미술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의 첫 번째 민화 수집품이다. 나이 지긋한 고미술상은 20대 젊은이가 골동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의 관심을 기특하게 여기고 소여물통에 담겨 있던 민화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을음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담가 놓은, 꽃과 새가 그려진 8장의 그림은 그를 매료시켰다. 안회장은 고미술상을 졸라 그 민화를 손에 넣고 서울 집으로 왔다.

 

 

땟물을 빼려고 욕조에 그림을 담가둔 그는 갑자기 잡힌 부산 출장 때문에 1주일 동안 집을 비웠다. 귀가하자마자 그림을 꺼낸 그는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그림이 죽처럼 풀어진 것이다. 친분 있는 표구사에서 ‘오랫동안 서서히 말려보라’는 조언을 듣고 세 달 동안 말렸더니 그림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장지 위에 식물성 색소로 색을 입혀 수백 년의 세월도 견디는 우리 고미술의 힘인 것이다. 꿩, 공작, 까치, 봉황, 학, 원앙과 온갖 꽃들이 그려진 그 민화에는 부귀영화를 염원하던 우리 민족의 마음이 담겨 있다.

 

민화에는 우리 민족의 따뜻한 심성이 담겨 있다

“우리 고미술품에는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어 언제나 감탄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지요.” 그가 아끼는 작품 중 하나인 ‘까치 호랑이’ 그림을 보면 17세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이 넘친다. 소나무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고, 온순한 표정의 호랑이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여유로운 구도와 익살이 넘치는 모습,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그림 속 세상에 우리 민족의 심성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진다.

 

안회장이 아끼는 ‘까치 호랑이’ 그림. 힘이 넘치면서도 익살스럽고 여유가 있다.

 

젊은 나이에 민화에 매료된 안회장이 지금까지 수집한 민화는 4백여 점이나 된다. 조선시대 중후기부터 구한말에 이르는 시기에 그려진 화조도, 산수화, 풍속화 등 다양한 종류의 민화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왔기에 언젠가 전시를 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60여 년간 우리 고미술을 수집하면서 얻은 지식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특히 요즘 가짜 고미술 작품이 많아 진품을 구별하는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감정을 배우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고, 체계적인 수집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명망 있는 고미술 감정가와 전문가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 그의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졌다.

“민화는 격식 없는 그림입니다. 보는 순간 마음이 흐뭇하고 웃음이 나오는 익살스러운 그림에 간절한 소원을 담아 완성한 것이지요. 염원은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담은 그림은 보는 이의 진심과 맞닿아 그 뜻을 함께 하게 됩니다.”

 

옛 그림, 들여다보는 만큼 보인다

민화는 암울한 역사 속 유쾌한 그림이기도 하다. 민화가 유행했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은 조선이 기울었던 시기다. 어두운 시대를 잠시 잊고 싶어서였을까? 이 시기의 민화에는 화려한 꽃 그림, 행복과 사랑을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그림이 많았다. “우리 옛 그림은 오랫동안 들여다봐야 합니다. 빨리 지나치면 아무 의미도 읽을 수 없지만 바라볼수록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형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고 투자의 의미로 골동을 소유하고 있다면 너무나 불행한 일이지요.” 그 역시 그림을 수십 년 동안 이해하지 못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해독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순간에는 가슴이 확 트이는 감동을 느끼고, 여러 사람과 감탄을 나누고 싶은 기쁨이 넘친다.

 

안회장이 수집한 신라 불두佛頭. 해탈의 순간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안덕환 회장은 방대한 도자기 컬렉션도 가꾸어왔다. 그는 붕어가 그려진 조선 초기 술병과 천년 넘은 신라의 불두佛頭를 특히 아낀다. 술병에는 알을 낳으러 수초가로 가는 암붕어와 그 뒤를 따르는 숫붕어를 간결하게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수집가들에게 인기 없는 쥐색 도자기에,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도안이지만 안 회장은 이 작품에서 도공의 해맑은 생각을 읽었다. 천 년 동안 연못에 잠겨 있던 진한 미색의 불두는 매끄럽고 섬세하다. 그는 이 불두의 미소가 모나리자의 미소와 달리 푸근하며 해탈의 경지가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고미술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안회장은 오랫동안 오디오 수입회사를 운영해온 우리나라 최고 음향 전문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서양 고전음악에 심취했던 성장 배경도 고미술을 보는 그의 안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귀로 듣는 음악과 눈으로 감상하는 고미술에도 공통점이 있을까? “음악도 고미술도 감상하는 동안 행복해진다는 점에서 같아요. 음악은 많이 들으면 귀가 피곤할 수 있으나 고미술은 하루 내내 바라봐도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흐뭇해지지요.”

 

그는 주로 우리의 민화와 도자기를 수집하지만 서양 미술에도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서양화가 변종하, 박수근 등과 교류하며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근무하던 회사와 반도아트갤러리가 가까워서 박수근과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날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 “박수근 화백이 6척 장신이었어요. 그가 자주 그렸던 고목이 자신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항상 술을 사양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폐병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타계하기 세 달 전에 장례비로 쓰게 그림을 팔아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20점을 지인들에게 판매해줬습니다.” 고맙다며 박수근이 선물한 그림은 누가 전시한다고 하기에 빌려줬는데 아직까지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고미술과 함께한 예순 해, 그 마지막 바람

어린 시절 일본어 책으로 우리나라 골동을 공부하기 시작해 월급을 아껴가며 고미술을 수집해 온 안덕환 회장. 이제 고미술 평론까지 하는 경지에 오른 그는 우리 골동의 가치가 아직도 국제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섭섭하다. 젊은 세대가 서양 미술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 고미술의 매력에 눈을 뜨기를 바라는 것이 이 노수집가의 희망이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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