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주를 만든다

한국에는 왜 세계에 내놓을만한 명주名酒 제품이 없을까? 경북 문경 ‘오미나라’ 대표 이종기의 삶은 그에 대한 답이다.

그의 도전은 운명이었다. 1990년 주류회사 근무 경력 10년차였던 이종기 대표는 스코틀랜드의 해리어트 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대표가 가져온 우리의 약재 침출주를 맛보고 주임 교수가 농담 섞은 악평을 했다. “한국 사람은 술과 약을 구분 못하나?” 당황한 이 대표는 그때 ‘세계인이 감탄할 명주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우리나라 농산물로 명주를 만들기 위해 20년 동안 서른 가지 재료로 백 개가 넘는 시제품을 만들었으나 양조용 품종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오미자를 발견했다.

 

술은 관능적 매력이 중요하다. 이 대표는 매혹적인 색깔을 가진 오미자에서 명주의 재료가 될 가능성을 보았다. 오미자의 색을 유지하고, 오묘한 다섯 가지 맛을 조화시키기 위해 프랑스 샹파뉴를 거듭 방문하며 연구했다. 그는 결국 2010년에 오미자 와인 특허를 내고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선보였다. 그가 만든 오미자 와인은 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들었다.

 

‘천하명주’라는 호기로운 문장 아래 ‘오미로제’가 숙성되고 있다.

 

Q. 오미자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어떻게 오미자로 와인과 브랜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종기 대표이하 이종기_한국을 대표하는 명주를 만들 수 있는 독창적 원료를 찾다 오미자를 만나게 됐다. 오미자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우리 농산물로 우리 술을 만들면 술 제조와 농업을 함께 부흥시킬 수 있다.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밥은 굶더라도 제사에 쓸 술을 담글 곡식은 따로 저장해두었을 만큼 우리 민족은 술의 원료를 소중히 다루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와인과 위스키는 병째로 수입하고, 막걸리와 맥주, 소주를 만드는 원료 역시 대부분 수입한다. 39년째 양조釀造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주를 만들면 우리나라 술 관련 산업도 함께 발전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Q. 올해가 오미자 와인 개발을 완결하는 해라고 들었다. 그간의 성과가 궁금하다

이종기_명주를 만들기 위해 20여 년 동안 연구 개발한 끝에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자 와인, 오미자 브랜디, 사과 브랜디를 선보였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은 2012년 한미 정상회담, 2018년 동계 패럴림픽 환영 리셉션 등에서 만찬주로 선정되며 세계에 알려졌다. 오미자 와인은 문경 지역 농업에도 긍정적 효과를 선사했다. 10년째 문경 농가에서 오미자와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문경바람’ 브랜디를 만드는 사과는 매년 150톤씩 구매한다. 오미자는 매년 50톤 정도 구매했는데,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매달 1천병씩 군납軍納하기로 하면서 내년에는 100톤 넘게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원래 술은 그 지역의 농산물로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우리 농업과 술 생산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기쁘다.

 

이종기 대표는 ‘한국에서 마스터 블렌더로 불릴 만한 유일한 사람’으로 꼽힌다.

 

Q. 폭염이 이어져 오미자 수확이 괜찮을지 걱정이다. 최근 근황도 궁금하다

이종기_아무래도 올해 오미자 수확은 예년보다 떨어질 것 같다. 10월에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신제품을 발표할 예정이라 바쁘게 지냈다. 스파클링 와인은 샹파뉴 메소드와 샤르망 메소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샤르망 메소드로 만들면 와인의 풍미가 무겁지 않고, 숙성 기간을 줄일 수 있어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새로운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은 사람들이 보다 친숙하게 마실 수 있도록 샤르망 메소드로 만들었다.

 

Q. 와인은 페어링pairing이 중요하다. 오미자 와인은 어떤 음식하고 잘 어울리나?

이종기_포도로 만든 와인은 한식에 아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반면 오미자 와인은 한식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김치찌개, 삼겹살, 돼지고기 두루치기 등에 두루 잘 어울린다. 오미자의 선홍색 빛깔과 다섯 가지 관능적인 맛은 기분을 돋워준다. 오미자 와인은 풍미가 복잡 미묘하고 마시고 난 다음의 여운도 길다. 오미자에는 간 보호 성분이 들어 있어 숙취도 덜하다.

 

Q. 양조뿐만 아니라 우리 술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종기_향음주례鄕飮酒禮, 사상견례士相見禮 등의 의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 민족은 예절을 완성하는 한 요소로 술을 중요하게 여겼다.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도 술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성인식을 이르는 관례冠禮, 계례笄禮에서는 술을 내리면서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축원했다. 혼인할 때도 표주박에 든 술을 신랑 신부가 나눠 마시면서 부부가 되었음을 알렸다. 그래서 집집마다 직접 술을 담가 먹었는데 일제시대 들어 모든 술에 세금이 부과되면서 우리 고유의 가양家釀 문화가 사라지고 전통 술 산업도 붕괴되었다. 지금까지도 술을 통제 대상으로 여기는 국가 정책이 이어지고 있으니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예의를 갖추고 즐기는 술 문화는 장려해야 한다. 여기 ‘오미나라’의 프로그램 중에서도 ‘와인 에티켓’ 체험이 인기다. 술은 함부로 권하지 않고 서로 정성을 다해 정갈하게 권하고 받아야 예의가 있다고 하겠다.

 

증류, 숙성 등 오미나라에서는 술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Q. 한국에서 양조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이종기_술을 만든 지 올해 39년째다. 앞으로 백년 쯤 지나 오미자 와인이 우리나라 민속주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 내가 만든 술이 세계적인 명주가 되면 나의 양조 철학이 더 인정받고 확산될 거라고 믿는다. 한국에서 술을 만들 때 가장 힘든 건 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포도 품종은 무려 1만 여개, 사과 품종은 약 8천 개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양조용 품종을 따로 재배해 품질 높은 술을 담글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양조를 외국에 의존하게 되고, 발전도 늦어지고 있다. 유기농 오미자로 좋은 술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앞으로는 우리 농산물 중 매실과 자두를 이용해 새로운 술을 만들어보려 한다.

 

Q. 이곳 오미나라에 오니 술을 어떻게 만드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 좋다

이종기_유럽의 와이너리에 가도 제조 과정을 전부 다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는 언제든지 양조 과정을 볼 수 있고, 와인 제조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오미나라는 ‘콘텐츠의 보고’이자 농업의 6차 산업화 성공 모델로 손꼽힌다. 1차 산업으로 오미자 계약 재배, 2차 산업으로 오미자 와인 생산, 3차 산업으로 와이너리 투어 진행하며 6차 융복합 산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연간 1만2천여 명이 오미나라를 방문하고 있다. 올해 신제품 출시를 마무리하면 마케팅을 열심히 해서 오미자 와인을 널리 알리려고 한다.

 

Q. 명주의 조건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종기_좋은 품질은 기본이며 아름다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오미자 와인에는 좋은 스토리도 많다. 와이너리가 있는 이곳은 문경새재 과거길이 만들어진 조선 초기부터 주막이 있었던 곳이다. ‘문경’이란 지명은 문희경서聞喜慶瑞에서 유래된 것으로 ‘기쁜 소식을 듣고 상서로움을 경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술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영조가 오미자주를 즐겼다는 것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승정원일기』에는 영조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오미자주를 즐겨 마시자 신하들이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영조는 19세의 중전과 재혼하고, 미식가로서 음주를 즐기는 등 아주 건강했다. 하지만 신하의 걱정을 줄여주기 위해 오미자주가 아니라 오미자차를 마시고 있다고 변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오미자 와인은 사랑의 묘약이다.

 

 

Q. 최고의 양조가로서 어떻게 후학을 양성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종기_2년 전 베이징 와인 전람회에 참석해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는 물론이고, 중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품질이 꽤 높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명주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적 명주가 탄생한다는 것은 세계에 그 나라의 문화를 수출하고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1980년 OB에 근무하면서부터 세계를 돌아다니며 데킬라만 제외하고 모든 술의 양조 방법을 배웠다. 와인, 샴페인, 진, 위스키, 브랜디, 럼 등 안 만들어본 술이 없다. 지금 당장은 후학을 양성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오미나라가 세계에 알려지면 젊은 세대에게 나의 양조 지식과 철학을 전하고 싶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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