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바람 큰 기쁨

111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폭염. 이제 ‘손풍기’는 여름 나기 필수품이 되었다.

요즘 우리의 처지는 사막을 걷는 낙타와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1일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9.6도, 강원도 홍천은 40.6도를 기록했다. 1907년 기상청이 서울의 기상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 기온을 경신한 것이다. 111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폭염. 지구의 기온은 계속 상승해왔다고 하니 유사 이래 가장 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집안에 놓여 있던 선풍기를 한손으로 쥘 수 있을 만큼 작게 축소해놓은 ‘손풍기’. 이것은 손에 들고 다니면서 거리에서든 버스 안에서든 만만치 않은 바람으로 땀을 식힐 수 있는 고마운 존재다. 작년만 해도 ‘머스트 해브 아이템’까지는 아니었는데 핸드폰으로 날아오는 폭염 재난 문자메시지에도 놀라지 않게 된 올해는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여름 필수 아이템이 돼버렸다.

 

손풍기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는 것이 부채다. 방구 부채, 접부채, 둥근 부채 등 우리 조상들은 여러 모양의 부채와 함께 여름을 났다. 부채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부채를 확 펴면서 시선을 집중시키거나 부채를 접으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음을 알리고 부끄럽거나 불쾌할 때는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부채는 실용적인 물건이면서 멋, 기품,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소리꾼이나 무당에게는 직업적 상징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2018년 여름의 손풍기는 실용에 집중한 물건이다. 부채처럼 선물로 주고받으며 정을 나눌 순 있지만 그 무엇보다 ‘지금, 여기, 바람’에 대한 절실한 바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손풍기에 멋과 낭만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은 없다. 폭염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 계절, 그런 말을 꺼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손풍기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운 휴대용 선풍기. 손풍기는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_이우식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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