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동안의 정성

수제화에 담긴 장인의 노고와 오래된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 「세대를 넘어-수제화 장인」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만드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신발, 수제화. 수제화를 한 켤레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제화 장인이 작은 것 하나라도 얼마나 정성들여 만드는지 알 수 있다. 과연 수제화 장인들은 어떤 마음을 담아 수제화를 만들까?

 

국립민속박물관은 2014년 ‘근현대 직업인 생애사’ 사업의 일환으로 송림수제화를 조사하고, 『을지로 수표교에서 4대 80년 송림수제화의 장인들』조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 특별전 「세대를 넘어-수제화 장인」에서 ‘백 년의 가게’로 83년 역사의 송림수제화가 소개되었다. 고객에게 ‘나만의 신발’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수제화를 만든다는 송림수제화 임명형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송림수제화의 역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임명형 대표이하 임명형_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1936년 10월, 저희 할아버님이신 이귀석 옹께서 을지로 수표교 지금 이 자리에 제화점을 개업하셨어요. 상동제화점에서 제화 기술을 배우시고 독립하신 거죠. ‘늘 푸른 소나무 수풀처럼 평생 신을 수 있는 구두를 만들자’는 뜻으로 ‘송림화점松林靴店’이라고 이름 지으셨다고 해요. 송림화점은 남성화를 중심으로 여성화도 포함한 맞춤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 기성화가 고개를 들면서 할아버님의 조카로서 2대 대표를 맡으셨던 저희 아버님(임효성)과 할아버님은 향후 등산 인구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수제 등산화로 눈길을 돌리셨다고 해요. 그 후 산악인 허영호 씨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산악인은 송림수제화의 등산화를 애용하게 됐죠. 제화공장을 차려서 기계로 구두를 만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할아버님은 ‘고객 한 명에게 완벽한 단 하나의 신발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작은 수작업 공방 형태를 고집하셨어요. 송림제화는 할아버님의 그 장인정신을 계속 이어가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Q. 송림수제화의 83년 역사 중 전성기와 고비는 언제였나요?

임명형_1930년대 할아버님이 창업하실 때가 전성기 아니었나 싶습니다. 할아버님이 송림화점을 창업하셨을 때는 고무신, 짚신을 신고 다니던 시대라 양화를 만드는 곳이 손에 꼽혔지요. ‘만석꾼’들만 양화를 시절이었죠. 한국전쟁 직전까지 꽤 호황을 누리다 전쟁 이후에 어려움이 컸다고 들었어요.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께서 등산화를 만들기 시작하셨답니다. 등산화를 2~3만원 안팎에 판매했는데, 평범한 직장인의 반년 연봉에 맞먹는 돈이었다고 하더군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상류층에서 등산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송림=등산화’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즈음 몇몇 대학교 학생들이 대관령으로 스키를 타러 가기 위해 송림에 스키화 제작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송림수제화가 개발 제작한 등산화 창 몰드_개인소장

1995년 북극해 횡단 당시 허영호 대장이 신었던 특수 제작 등산화_개인소장

 

Q. 사람들이 수제화를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임명형_신발 한 켤레가 완성되기까지는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2mm, 3mm의 작은 수치에도 디자인이 어긋난다. 1차적으로 신발이 완성되어 나오면, 필드 테스트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송림의 등산화를 오랫동안 신어온 전문 산악인들이 많은데, 허영호 대장이 대표적이다. 그에게 새로 제작한 등산화 샘플을 보내주면, A4용지 한 장 가득 장 · 단점을 빼곡히 적은 리뷰를 보내온다. 그렇게 등산화 한 켤레를 완성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 다음은 일반 고객들에게 테스트를 해 본 후 수정 사항을 반영해 완제품을 낸다.

사람들은 흔히 ‘수제화’라고 하면 그저 ‘손으로 만드는 신발’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는데, 송림의 수제화는 고객에게 ‘나만의 신발’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그 고객에겐 더없이 편안한 맞춤 신발이지만, 다른 고객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인체에서 발처럼 중요하고 예민한 부위가 또 없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도 발은 불편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Q. 역사가 긴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직원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임명형_송림수제화는 직원들이 한번 입사하면 퇴사하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해요. 현재 막내 기술자가 쉰 한 살이니 말 다 한 거죠. 평생 송림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일하다가 가끔 돌아가신 분들 얘기를 하면서 추억을 곱씹기도 하죠. 현재는 위층이 공장이지만 예전에는 살림집이어서 야근을 하는 날이면 같이 먹고 자면서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또, 두 아들도 대를 이어 송림수제화에서 일하고 있어요. 막내아들이 지금 스물일곱 살인데, 벌써 경력 7년 차예요. 두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제가 바쁠 때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시켜보곤 했지요. 그러더니 둘 다 제화를 전공하더라고요. 큰 아들은 요즘도 자기 신발을 스스로 만들어 신습니다. 단골 고객 중에 제화과 교수들도 더러 있어서, 이따금씩 학생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견학을 오기도 해요. 구두 한 켤레가 만들어지는 첫 단계부터 완성되기까지의 공정을 눈앞에서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목형(라스트, 골)_발의 모형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신발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구두 만드는 법과 고치는 법을 수록한 책자. 발의 구조와 생리,
발 재는 법, 재료, 피혁 재단법, 목골, 지형 재단법 등의 정보가 적혀 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으신가요?

임명형_1990년대 후반에 처음 만난 고객이 생각나네요. 우리나라 어디서도 본인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만들어 줄 곳을 못 찾아서 몇 년 째 캐나다로 신발을 맞추러 가는 분이었어요. 어느 날 방송으로 송림수제화를 알게 되자마자 전남 광주에서 한 걸음에 달려오셨죠. 송림에서 만든 신발을 신자마자 그분이 “캐나다에서 열 번 이상 가봉한 구두를 신었을 때의 느낌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지금까지도 송림에서 그 고객의 신발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 한 분은 노동을 하시는 고객인데, 일이 험해서 세 달에 한 번 꼴로 신발을 바꿔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분이 송림에서 등산화 한 켤레를 제작한 다음, 4년을 꼬박 창만 갈아서 잘 신으셨어요. 어느 날 그분이 웃으면서 “송림 신발 덕분에 돈 벌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랜 단골 중에는 1970~80년대에 만든 신발을 수선해서 지금까지 신는 분들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3대째 운영하고 있다보니 단골고객들도 많이 있습니다. 서울, 경기 지역은 물론이고 마산, 부산, 창원, 완도, 목포 등 멀리서도 많이 오십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입 소문을 듣고 찾아오시는 고객이 대부분이었죠. 9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방송 등에 보도된 것을 보고 찾아오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오랜 단골 고객은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전화로도 주문을 많이 해요. 미국, 호주, 일본 등 해외 고객도 많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 송림수제화가 백 년의 가로 소개됐습니다. 장인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명형_‘장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다 보니까 이만큼 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신발을 만들 때는 기술자 · 디자이너로서의 고집과 자존심도 있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고집이 아니라 고객의 불편함이 깨끗이 사라질 때까지 다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이에요. 진정한 신발 장인은 제작자가 아니라 발이 불편한 고객들이죠. 스스로 신발을 만들 수가 없어 제작자를 찾아올 뿐, 수많은 신발을 몸으로 체험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신발에 대해 잘 알아요. 그 경험과 지식을 제작자에게 전하면, 제작자가 그것을 신발로 구현하는 겁니다. 송림수제화의 기술자가 신발 장인인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우리를 키운 것이죠. 모든 신발 제작자가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지 않을까요?

 

Q.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집중해서 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임명형_수제화 제작 공정을 흥미롭게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전시장에 쭉 진열해놓은 발 모양의 ‘라스트’를 주의 깊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내 발은 어떤 모양일까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이번 전시가 ‘수제화’의 의미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단순히 ‘기계가 할 수 있는 공정을 손으로 만드는 수제화’인지, ‘처음부터 한 사람의 발을 완벽히 이해하고 만드는 수제화’인지 말이죠. 발 크기를 재는 첫 단계부터 신발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한 사람이 책임지고 만드는 신발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Q. 이번 전시를 보는 관람객 중에 20~30대 젊은 층이 꽤 많습니다.

임명형_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요 고객층이 40대 이상이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고객 평균 연령이 점점 내려가는 추세예요. 심지어 20대 고객도 많습니다. 젊은 고객일수록 취향이 뚜렷해서 이미 처음 올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신발의 디테일을 모두 정해서 와요. 디자인뿐만 아니라 신발의 여러 디테일에 대해서 제안하거나 추천해주면 수긍도 빠른 편이고요. 자기가 어떤 신발을 신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Q. 이번 전시에 선보인 송림수제화의 유산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 전시를 보며 가장 감회가 컸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임명형_사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오랜 시간 열심히 신발을 만들어왔을 뿐이라서 전시를 할 정도로 내세울 만한 부분이 있는지도 자신이 없었고요. 하지만 전시가 점차 형태를 갖추고 완성돼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송림수제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바로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송림을 세우신 할아버님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이 전시를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고, 또 뿌듯합니다.

 

Q. 송림수제화의 대를 이어갈 두 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임명형_‘지금처럼만 하라’고 늘 얘기합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만 하라고. 변하지 말고, 욕심을 버리라고 당부합니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 규칙을 잘 지킨 덕분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를 하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찾아온 거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임명형_지난 2014년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송림수제화를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했습니다. 송림의 83년 역사를 이 한 자리에서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동시에 시대가 흐른 후에도 이 터가 서울 시민의 추억이 담긴 가치 있는 장소로 남겨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하더군요. 지금까지 걸어온 83년을 지나, 송림의 100년 또한 이 자리에서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전 「세대를 넘어-수제화 장인」은 2018년 6월 20일부터 10월 15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열린다.

 

 

글_웹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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