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은 즐거움이다

음반 수집가 최규성의 컬렉션은 방대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수집은 즐거움이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베란다에 쌓여있던 LP들이 비바람 맞고 습기가 찼더라고. 3백장 넘게 버렸어요. 아, 정말 미안하더라고.” 40여 년간 수집한 수십 만 점의 LP와 CD, 음악 서적, 포스터가 빼곡히 들어찬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피곤한 얼굴로 취재팀을 맞은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이 인사말 대신 건넨 말은 꽤 특이했다. 그는 습기가 차서 버리게 된 LP 이야기를 꺼내며 ‘아깝다’가 아니고, ‘미안하다’는 단어를 썼다. “그럼요, 미안하죠. 저 아이들한테. 제가 보관을 잘못해서···.” 그가 수집한 방대한 대중음악 관련 자료들은 그에게 그냥 ‘물건’이 아니다. 철저한 의인화가 이뤄져야만 가능한 표현. 그 말은 최규성과 그의 컬렉션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이자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자문위원장, 엠넷 MAMA한국방송대상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대중가요 LP가이드북』, 『골든인디컬렉션』, 『걸그룹의 조상들』 등의 저자라는 화려한 프로필의 주인공. 최규성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엄청난 양의 근현대 대중음악 관련 아이템을 수집한 당대의 컬렉터다. 이건 꽤 특이한 경우다. 대부분의 컬렉터가 이론에 약하고, 평론가는 컬렉션에 약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수집가와 연구가의 영역을 포괄하니 이 분야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희귀 대중음악 관련 자료나 이미지가 필요할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그다.

 

최규성은 음반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관련 도서, 기사, 포스터 등도 수집한다.

 

개인적인 수집이 역사로 발전하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 하지만 수집 인생은 십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40년이 훌쩍 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록 밴드 딥퍼플의 ‘하이웨이 스타’를 듣고 충격을 받은 사춘기 소년은 음악에 심취해 각종 음반을 사들였다. 용돈을 받으면 동시대 가수의 음반을 사 모으고, 옛 것을 ‘발굴’하기 위해 청계천을 돌아다녔다. 욕심은 욕심을 부르고 수집은 수집을 부르는 법. 모으다 보니 가수들 음반뿐만 아니라, 그들이 등장하는 잡지와 신문기사, 광고 포스터 등으로 수집 품목이 넓어졌고, 지금은 옛 가수들의 가요대상 트로피, 무대 의상, 심지어 이효리, 아이유가 모델로 등장한 소주병까지 컬렉션의 영역이 되었다. “예전에 ‘핑클빵’ 기억나요? 그게 없어요. 혹시 찾으면 저한테 연락 좀 주세요. 하하.” 이제는 귀한 자료가 나타나면 경매에 붙이기 전 먼저 연락을 받는 위치가 되었지만, 여전히 각종 온·오프라인 경매에 촉수를 뻗고 산다. “전국에 온갖 경매가 있어요. 코베이, 동아옥션도 있고. 늘 주시하고 있어야 하죠.”

 

대중가요로 백과사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음악 카세트테이프는 이삿짐을 정리할 때 휴지통으로 직행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대중가요사가 하나의 예술, 학문으로 인정받는 시대. 최규성은 그 과정에 자신이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현재 그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손잡고 대중가요 앨범 1만 1천 장의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리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30명의 필자를 동원해 3년 8개월 째 진행하고 있는 인생일대의 프로젝트.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좋아하면서도 무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요.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동시대의 역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죠.”

 

즐거워서 시작한 수집이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수집은 여전히 즐거움이다.

 

수집은 제게 즐거움을 주는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에요

꾸역꾸역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중요한 자리에 올라선 경우가 있다. 그러다 즐거움보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 법. “전 아니에요.” 최규성은 단호하다. “지금도 즐거워서 수집을 하고 있어요. 제 좌우명이 ‘재미있게 살자’예요. 이걸 다 사 모으려니 돈 때문에 좋아하는 술도 끊었지만(웃음). 죽을 때까지 이런 것들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는 게 소원이죠. 열정은 식지 않았거든요.”

 

 

중요한 대화는 어느 정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할 무렵, 그가 하나 둘 컬렉션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좋은데, 혹시 알아요?” 최백호가 ‘낭만에 대하여’를 만드는데 영감을 줬다는 에이스 캐논의 ‘Laura’를 시작으로, 아트록의 전설 뉴트롤즈, 아르헨티나 여가수 그라시엘라 수잔나,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프리카 록 밴드 오시비사의 노래들, 김도향과 손창철이 결성한 전설의 듀오 투코리언스의 ‘들리지 않네’까지. 그가 구비한 최고급 음향 장비에서 전설의 명곡들이 ‘뿜뿜’ 울려 펴진다.

 

최규성이 음반 수집가이기 전에 음악 애호가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음악 애호가로서 그의 마음은 중학교 1학년 소년의 그것과 달라지지 않았다. 수집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수집은 하나의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가 ‘평생 내 곁에 있어줄 친구들’이라고 표현하는 그 많은 수집품들. 그가 소개하는 명곡을 감상하며 애정이 있으니 가능했던 저 무시무시한 컬렉션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그의 컬렉션은 추억을 박제하는 행위도 아니고, 의무감에 사로잡힌 우직한 잡식성 모으기도 아니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즐겁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소유하고 싶어진다. 수집이란 그 정직한 욕망의 일차원적인 결과물이다. 그 욕망에 누구보다 솔직했던 한 사람의 40여 년 역사가 파주의 한 아파트에 숨쉬고 있었다. 어쩌면 2백 년 뒤의 민속박물관이 바로 이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대중문화는 수백 년 뒤 민속이란 이름으로 박물관에 전시될 테니까. 그리고 최규성의 수집품은 그 박물관이 꾸려지는 데 큰 공헌을 할 테니까.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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