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갈모와 도롱이

우리 조상들이 비를 피하는 데 사용했던 갈모와 도롱이. 얼핏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무척 실용적이고 자연친화적이다.

비닐우산과 비옷: 우리를 편하게 하는 일회용 우구

‘비닐우산’이라는 게 있다. 아니, 있었다. 투박하게 깎은 대나무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파란 비닐을 덮은, 그런 우산을 팔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국어사전에도 당당하게 올라 있다. ‘대나무 오리로 된 살에 비닐을 씌워 만든 일회용 우산’이라고. 그랬다. 그건 일회용이었다. 꽤 종류가 많긴 했지만 유독 ‘비닐우산’과 비슷한, 얇고 가벼운 비닐로 만든 ‘비옷’이 있었다. 가볍고 값이 저렴했다. 게다가 빨강, 노랑, 파랑, 색깔까지 다양했다. 우산을 드는 대신 입으니 손이 자유롭고 편했다. 딱 하나, 단점이라면 쉽게 찢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 그것 역시 일회용이었다.

 

비닐우산_비닐을 씌워 만든 비를 피하는 도구. 10개의 대나무 살에 비닐이 덧씌워진 형태.

 

갈모: 맑은 날에는 소매 속으로 사라지는 쓰개

프랑스 여행가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 그는 조선을 여행 중이었다. 그런데 늘 비가 문제였다. 비만 오면 짐꾼으로 고용한 조선 사람들이 여행을 멈추고 쉬자고 졸라서 골치가 아팠다고, 그래서 여행이 더뎌졌다고 했다. “비가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조선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얼른 종이 갓을 꺼내 쓴다.” 투덜거림 뒤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빗방울 떨어질 때 일사불란하게 꺼내 머리에 쓰는 그들의 ‘종이 갓’ 만큼은 더없이 특별하고 흥미로웠노라고. 그 종이 갓, 갈모에 대해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은 “조선은 친구의 우산을 탐하지 않아도 되는, 정말 행복한 땅이다. 짙은 노란색 기름종이로 된 이 원추형 우산은 양쪽에 달린 줄을 턱 아래 매듭지어 고정하는데 기특하게도 아주 작은 모양으로 깔끔하게 접을 수 있기 때문에 날씨가 맑을 때면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의미심장한 찬사였다.

 

갈모_갓이 비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위에 덮어 쓰는 쓰개.
한지에 기름먹인 유지油紙로 만듦.

우편엽서_앞면에는 갈모를 쓴 남자가 당나귀를 타고 있음.

 

도롱이蓑衣: 안팎으로 풀을 엮어 만든 비옷

옛 그림을 보다가 도롱이 걸친 사공이 노 저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과 마주했다. 그림 속에는 지금 비가 오려나. 낭만적인 상상대신 궁금증이 일었다. 저 도롱이는 어떤 풀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찌 만들라는 기록 대신 그때 사용하는 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소 등에 덮어주는 언치를 도롱이 엮듯 하라고 쓰여 있다. 도롱이를 엮는 데 쓰면 좋은 풀을 뭉뚱그려 ‘사초簑草’라 불렀는데 흔히 알려진 것은 짚과 갈대와 띠풀 정도다. 이런 사초는 빗물이 잘 흘러내리는 특성이 있어 주로 윗부분에 썼다. 안팎을 촘촘히 엮어 여러 단으로 만들면 그만큼 빗물 닿는 면적과 스며드는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도롱이_띠를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띠를 날로 삼아 촘촘하게 결어 속을 만들고 외면에 띠풀을 드리운 형태.
양끝에 꼰풀로 만든 끈이 꿰어져 있으며 외면에 어깨끈 2개가 달려 있음.

 

유지우삼油紙雨衫 : 종이에 기름을 먹여 만든 비옷

도롱이라고 하면 으레 수북하게 풀을 엮어 만든 것만 떠올리지만 뜻밖에도 기록에는 종이 도롱이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냥 종이, 아니다. 기름 먹여 만든 탓에 유지우삼이라 한다. 굳이 바꿔 쓰자면 기름종이 비옷쯤 되려나. 육영공원 교사 조지 길모어G. W. Gilmore는 “비가 올 때 조선 사람들은 어깨에 도롱이를 걸치는데 짚이나 나무 혹은 풀로 초가집 지붕처럼 이어 비가 스미는 것을 막는다. 대개 비를 막기 위해 ‘방수외투’를 입는데 그 재질은 비를 막는 데 꽤 쓸모가 있는 기름종이다”라고 썼다. 그는 도롱이를 ‘방수외투’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물은 확실하게 막아주니까. 그 역할을 한 것은 기름이다. 흔히 오동기름이라고 하지만 들기름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해진 건 없다. 기름이 물을 밀어내는 것은 확실하지만 종이에 기름 먹인다고 모두 비 가림 도구가 되는 건 아니다. 기름보다 중요한 건 종이다. 그래서 갈모와 도롱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남달리 질기고 튼튼했던 조선 사람들의 종이, 한지를 칭찬하는 내용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도롱이_짚풀을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상단은 꼰풀을 꿰어 주름을 잡고 끈을 내었음.

 

그들의 우구 VS 우리의 우구: 참으로 다른 시작과 끝

모두 재료가 단순하다. 나무, 종이, 풀, 기름이 고작인 갈모와 도롱이도 나무와 비닐이 전부인 비닐우산과 비옷도. 그런데 그 끝은 영 단순하지 않다. 갈모와 도롱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낡은 도롱이는 거름더미에 넣어 함께 썩힌 다음 거름으로 썼다. 그들의 우구는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비닐을 붙이고 이어 만든 우리의 우산과 비옷은 그럴 수 없다. 나무 대신 플라스틱을 쓰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지금 몇 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재료들로 비를 가린다. 문제가 간단치 않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갈모가, 도무지 비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도롱이가 부러운 이유는 따로 있다. 적어도 그들의 우구는 자연을 망가뜨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게 가장 부러울 뿐.

 

참고문헌
GW. Gilmore, 1892, 『Korea from it’s Capital』,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and Sabbath-School Work.
Georges Ducrocq, 1904(1993),『Pauvre et Douce Coree』, Zulma.
Percival Lowell, 1885,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Harvard University Press.
『성호사설星湖僿說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03045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대표전화 02-3704-3114    팩스 02-3704-3113

발행인 윤성용    담당부서 섭외교육과  © 국립민속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