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에서 스키 타고 금강산 탐승하던 시절

한반도 남쪽 사람들도 북쪽을 자유롭게 누비던 20세기 초반의 여행 풍속도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2018년 6월 3일. 서울역 3층의 특별 매표소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팔았다.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린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다오」 행사를 통해서였다. 아쉽게도 이날 발행된 기차표로는 평양에 갈 수 없었지만, 최근의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기차 타고 북한 여행’이 조만간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지금부터 100년쯤 전. 서울(경성)에서 평양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은 기대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1925년 4월에 발행된 기차 시간표에는 19시 20분 경성을 출발한 급행 열차가 20시 11분 개성을 거쳐 이튿날 1시 15분 평양에 도착한다고 나와 있다. 고려의 오백년 도읍지인 개성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은 그 시절 학생들의 단골 수학여행지였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관광 안내서에는 금강산, 평양 등 조선의 명승지들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최신 유행을 즐기는 ‘모던 뽀이, 모던 걸’들은 경원선 특별 열차를 타고 원산으로 향했다. 함경남도 원산시 근교 신풍리에 한반도 최초의 스키장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1932년 2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화장품 광고는 당시의 유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광고에 등장하는 모던 걸은 스키를 메고 말한다. “(얼굴을 하얗게 지켜주는)구라부 크림이 없다면 일껏 재미있자는 스키도 잼병”이라고.

 

손기정 선수도 겨울이면 삼방스키장으로

신풍리 스키장의 뒤를 이어 원산 인근의 삼방과 외금강 지역에도 스키장들이 문을 열었고 유럽풍의 스키 휴양지까지 조성되었다. 덕분에 경성에도 스키 붐이 일어서 주말 스키 열차도 생겨났다. 경성의 스키어들은 야간 특별 열차를 타고 주말을 원산 스키장에서 보낸 뒤 일요일 오후에 상경했다. 겨울이면 신문과 잡지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스키 특별 열차 광고가 단골로 실린 것도 이 무렵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도 올림픽 뒤로는 삼방스키장의 단골 스키어가 되었단다.

 

 

겨울에 스키어들이 몰리는 원산은 여름이면 해수욕장을 찾는 이들로 붐볐다. 명사십리와 송도원, 송전 등 경관이 수려한 해수욕장들이 원산에 자리 잡았다. 해수욕장 특별 열차는 스키 열차보다 먼저 선보인 관광 상품이었다. 해수욕장을 비롯한 조선의 관광지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철도국은 명승지마다 호텔을 짓고 특별 열차까지 동원해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다. 덕분에 1930년대가 되면 대중들도 해수욕장을 즐겨 찾았다. 1930년대 말 소설가 송기원은 원산의 송도원 해수욕장으로 떠나려 했으나 표를 구하지 못해 하루 늦게, 그나마 좌석은 만석이라 값비싼 침대차를 타야만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소설가 정비석의 금강산 스탬프여행

모던 보이가 스키장을 찾고 대중들이 해수욕장을 즐겼지만,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여행지는 따로 있었다. 신라 사람 최치원도 그 아름다움에 반했다는 금강산. 조선 정조 때 사재를 털어 백성을 구한 제주도의 김만덕이 임금 앞에서 털어놓은 소원 또한 ‘금강산 구경’이었다. 이렇듯 평생 한 번 가기도 힘든 금강산 여행은 1914년 경원선 철도가 완공된 이후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이듬해 봄 매일신보가 ‘금강산 탐승회探勝會,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모임’를 모집한 것이 금강산 단체 관광의 시작이었다. 이후 여러 신문, 잡지의 주도로 전국에 금강산 탐승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경원선에서 갈라지는 금강산 철도가 생기면서 관광객은 더욱 늘었다. 금강산 철도 이용자는 1926년 881명에서 시작해 1931년에 1만 5219명, 1939년에는 2만 4892명으로 증가하였다.

 

 

1930년대 소설가 정비석은 금강산 명경대에서 스탬프 북을 한 권 사 기념인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 기록을 가장 유명한 금강산 기행문 중 하나인 「산정무한」에 남겼다. 이렇듯 스탬프 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름난 명승지나 철도역에서 기념 스탬프를 찍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주말 스키 열차를 타고 금강산 스탬프 여행이라. 믿기 어렵겠지만 그땐 진짜 그랬다.

 

참고 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편,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두산동아, 2008
권창규, 『상품의 시대』, 민음사, 20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편,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 글항아리, 2012
전봉관, 『30년대 조선을 거닐다(7) – 욕망의 해방구, 해수욕장』, 조선일보, 2005. 11. 18
조성하, 『퇴근길 전철 타고 스키장으로 설레는 밤』, 동아일보, 201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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