숑숑 피웅피웅 꽝!

TV만 켰다하면 게임 광고다. 한국이 ‘게임 강국’이라는 소리도 익숙하다. 80년대 전자오락실의 추억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었을까?

지금 40대 중반 이상이라면 ‘오트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7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오림포스 전자가 출시한 ‘오트론 TV 스포츠’는 텔레비전에 연결하고 손에 쥔 콘트롤러로 사격, 축구, 테니스, 스쿼시를 즐길 수 있는 ‘전자식 게임기구’였다. 게임 용어로 말하면 ‘콘솔console 게임’이다. 「퐁」과 「벽돌깨기」를 필두로 서구에서 인기를 끌었던 비디오 게임은 이렇게 한국에 상륙했다. 하지만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콘솔 게임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어린이들이 일본의 장난감 회사가 만든 「팩맨」, 「스크램블」, 「케이브맨」, 「인베이더」, 「슈퍼갤럭시안」, 「킹맨」 처럼 혼자 몰두할 수 있는 ‘게임기’에 빠져버린 것이다.

 

중동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필수 선물, 게임기

건전지 4개를 넣는 플라스틱 몸통에 배경 화면을 따라 우주선 등을 움직이는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나름 LSI 반도체와 진공 형광표시관 화면을 탑재한 게임기는 그때 막 출범한 프로야구 다음으로 인기 있었다.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싸우자!’ 어린이 만화 잡지에 실린 게임기 광고는 아이들의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했다. 그때 중동 건설현장에서 귀국하는 아버지들이 꼭 사갖고 들어오는 것이 게임기, 전자손목시계, 그리고 레고였다. 엄마 아빠를 졸라 게임기를 손에 넣은 어린이는 ‘권력의 맛’에 일찍 눈 떴을지도 모른다. 사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우리 집에 가서 「팩맨」 하고 놀까?”하면 끝이었으니까. 반대로 게임기가 없는 어린이는 게임 한번 하기 위해 권력을 추종할 수밖에 없었다.

 

닌텐도 ‘게임보이’는 게임기 한 대로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80년대 어린이들 중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은 아이들은 이 성경 말씀을 게임기를 통해 이해했을지 모른다. 영원한 게임기는 없었다. 뒤늦게 게임기를 손에 넣고 자랑하러 나갔더니 부잣집 아이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손에 쏙 들어오는 납작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를 갖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지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던 ‘닌텐도 게임&워치’ 시리즈는 또 하나의 신세계였다. 「낙하산」 같은 초창기 게임에 질리기도 전에 파노라마 화면의 「뽀빠이」와 「스누피」, 두 개 화면으로 즐기는 「동키콩」과 「라이프보트」가 속속 선보여 어린이들을 열광시켰다. 지극히 단순한 액정 화면에 사운드도 거의 없었지만 이 게임기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 중에는 성인이 된 지금도 닌텐도 게임&워치 시리즈를 수집하는 ‘키덜트’가 된 경우가 꽤 많다.

 

뿅뿅!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전자오락실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에 눈을 뜬 어린이들은 좀 더 ‘본격적인’ 게임에 도전하기도 했다. 용돈을 들고 ‘전자오락실’에 가 20원이나 50원을 넣고 ‘아케이드arcade 게임’을 즐겼다. 전자오락실에는 중·고등학생 형도 있고 담배 피는 아저씨도 있어서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하지만 큰 화면과 현란한 ‘뿅뿅’ 소리를 즐기며 전자오락을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인기 있는 게임은 게임기에 자기 동전을 올려놓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케이드 게임은 쉽게 말해 ‘전자오락실에 놓인 모든 게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인베이더」, 「갤럭시」, 「갤러그」, 「너구리」, 「동키콩」, 「뽀빠이」, 「제비우스」, 「하이퍼 올림픽」, 「미스터Do」, 「방구차」, 「소림사 가는 길」 등 지금도 레트로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는 80년대 초중반 명작 아케이드 게임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새로운 게임이 등장할 때마다 전에 보지 못한 액션, 세계관, 그래픽에 열광하면서 ‘대장’을 깨는 ‘비법’을 논의하고 전수하곤 했다.

 

‘슈팅 게임’은 80년대 초중반 전자오락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자그마한 것이라도 욕망이 모이는 곳에는 여지없이 사고가 생긴다. 오락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는 아이들은 어디서 방법을 주워들었는지 동전 넣는 구멍에 배드민턴 줄을 넣고 막 쑤셔댔다. 그러다보면 정말 동전 넣은 것처럼 화면에 ‘START’ 글자가 떴다. 그 모습을 들키면 오락실 아저씨한테 따귀를 맞거나 경찰서로 끌려갔기 때문에 아이들은 못 본 척 외면하거나 망을 보면서 도와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자오락실은 롤러스케이트장과 함께 ‘비행 청소년의 온상’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오락실에서 엄마한테 귀를 붙잡혀 끌려가는 아이들도 많았다.

 

PC게임과 콘솔게임

집에 ‘퍼스널 컴퓨터’가 있는 어린이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며 전자오락실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동전을 넣지 않고도 오래 오래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전자오락실에 있는 게임도 PC로 즐길 수 있었고, 오히려 전자오락실엔 없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비롯해 「로드런너」, 「금광을 찾아서」 같은 게임까지 할 수 있었다. 그 후 마이크로칩의 성능이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따라 PC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외국 게임이 정식으로 유통되고 「세균전」 같은 국산 PC 게임이 등장하면서 오늘날처럼 한국 PC게임이 ‘잘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70년대 첫 등장한 콘솔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큐브’ 등으로 진화했다.

 

여전히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인기는 덜하지만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가 개척한 콘솔 게임도 80년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진화해나갔다. 전자회사들은「재믹스」, 「컴보이」, 「겜보이」같은 콘솔 게임을 속속 선보였다.「슈퍼마리오」는 콘솔 게임을 즐기던 어린이들의 아이돌이었다. 아이들은 학교 갈 때 교과서보다 친구들과 교환할 ‘게임팩’을 먼저 챙겼다. 게임팩은 1994년에 ‘플레이스테이션’이 나오면서 게임 CD롬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40대들의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닌텐도 ‘패밀리 컴퓨터’용 게임팩과 ‘게임보이 컬러’용 게임팩

 

한때 이동통신사 광고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 TV를 틀면 온통 게임 광고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 「메이플스토리」 등등 90년대 후반 이후 국산 온라인 게임이 세계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이 ‘게임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도 벌써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왜 요즘 게임들은 꼭 이렇게 잔인하고 요란해야 하는 걸까? 용돈만 받으면 전자오락실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부모들도 이렇게 혀를 끌끌 찼을까? 게임은 이제 산업이자 문화요, 스포츠가 되었다. 이제는 단단해진 그 토대 아래쪽 어딘가를 들춰보면 80년대 오락실의 추억도 있을 것이다.

 

숑숑 피웅피웅 꽝!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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