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프랑스 신문을 보다

“어릴 때 할머니가 고물상을 하셨어요. 그런 점들이 지금의 취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열차의 기적소리가 수시로 울리는 옛 동네. 놀랍게도 혼잡한 서울 용산역 부근의 작은 골목이다. 첨단 건물이 즐비한 이 동네의 숨은 뒷골목은 세상의 변화에 관심 없는 척 뒷짐을 진 것처럼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다. 마침 이르게 찾아온 봄볕에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함께 만개했다. 필름이 개발되기도 전의 촬영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가 이규열의 등대사진관이 있을 법한 곳이다.

 

사진가 이규열은 철판에 유제를 바르고 마르게 전에 촬영하는 19세기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 그가 ‘취향에 걸맞게도’ 자신이 작업하는 방식을 개발한 그 시절의 문화예술과 인쇄기술이 집약된 신문을 모으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2세기 전 삶에 대한 호기심

타고난 취향이 옛 물건을 좋아하는데다 여행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전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된 것도 수집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견문이 넓어졌어요. 외국에서도 인쇄매체를 들여다볼 일이 많고, 그렇게 눈을 뜬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부인과 프랑스 여행을 갔다가 엑상 프로방스의 한 벼룩시장에서 「르 쁘디 주르날 Le Petit Journal」을 발견한 것은 큰 전환점이었다. 한장 한장 종이를 넘길 때마다 팔랑팔랑 코끝을 간질이는 오래된 먼지 냄새와, 빛은 바랬으나 여전히 생생하고 세련된 그 그림들의 매력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때부터 대략 십오 년 동안 외국에 출장을 가면 본능적으로 벼룩시장과 헌책방을 둘러보며 옛 신문을 사 모았다. 가장 좋아하게 된 「르 쁘띠 주르날」 외에 「르 수히흐 Le Sourire」, 「위니베르 일리스트흐 L’Univers illustré」, 「르 히흐 Le Rire」, 「솔레이유 뒤 디멍슈 soleil du dimanche」 등 150여 년 전 당대를 주름잡던 신문들이 그의 책상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가 수집하는 소재는 옛것이되, 수집하는 방식은 21세기 ‘신문물’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베이 경매 사이트에서 원하는 물품 항목에 ‘태그’를 걸어놓고 늘 주시한다. 그렇게 하면 원하는 물건이 올라왔을 때 ‘알람’이 뜬다.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 늘 그렇지만 좋아하는 품목은 평소엔 ‘가뭄’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곤 한다.

 

 

수집은 기다림이다

“기본적으로 활자, 인쇄 매체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잡지보다는 인쇄 매체의 원류에 보다 가까운 신문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그 중에서도 당시 프랑스는 세상의 온갖 신문물, 첨단 문화가 모두 모이는 곳이었고. 그 시대 신문엔 당시의 문화가 용광로처럼 집약돼 있어요. 빠져들었죠.” 그가 지금까지 모은 옛 프랑스 신문들은 대략 100여 점. 관심을 갖고 보다 보니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도 보도 사진 대신 삽화나 일러스트를 사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상업 사진가로 첫 공중촬영을 시도했던 펠릭스 나다르도 신문에 사진 대신 삽화를 실었더라고요.”

 

언어는 낯설어도 그가 모은 신문들의 삽화를 보면 대략의 기사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물원에서 사고가 일어나 놀란 사람들과 허둥지둥 현장으로 달려가는 경감들의 모습, 파리 유명 인사의 성대한 결혼식 풍경, 마르세유 축제의 한 장면 등등. 한 장의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그날의 숨결과 많은 이의 표정, 상황 등이 생생하게 담긴 한 장의 삽화는 그 자체로 시대의 기록유산이다. 당시 신문이 최첨단 문물이었던 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재능 있는 화가들의 솜씨가 그 안에서 자웅을 겨뤘다.

 

이규열이 수집한 옛날 프랑스 신문에는 당시의 생활, 문화, 기술이 담겨 있다.

 

그 많은 신문 가운데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바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 삽화가 실린 「르 쁘디 주르날」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프랑스의 초청을 받아 만국박람회에 참가했는데 경복궁 근정전을 축소해서 만든 한국관의 모습과 이를 둘러보는 유럽인들, 한복을 입은 한국인들의 모습을 한 장의 기록사진처럼 잘 표현한 삽화가 실렸다. 그는 이 신문을 구입하기 위해 꽤 애를 먹었다. 처음 이베이 경매에 올라왔을 때 구입을 놓쳐 분한 마음에 발만 굴렀는데 6개월 뒤 거짓말처럼 같은 신문이 시장에 올라왔다. “만국박람회 당시 신문이라니, 우리 근대사에서 한국이 세계에 소개된 첫 장면이잖아요. 얼마나 자랑스럽고 뜻 깊은 순간인가요. 그때 ‘수집은 기다림’이라는 걸 알았어요.”

 

 

사진가 이규열은 이렇게 매력적인 옛날 신문을 모으고 있지만 사실 꼼꼼히 들여다볼 시간은 많지 않다고 고백한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모아놓은 신문을 여유 있게 들여다보는 재미보다 구입하는 순간의 희열이 더 크단다. 관심사도 넓고 다양해 한때 에디슨 시절의 전구, 오래 전 물병 등을 모으기도 했다. “뭐든지 원류, 기원, 즉 ‘오리지널’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사진도 그래서 초창기 작업을 하구요, 신문도 마찬가지죠. 언젠가는 카페 같은 공간을 열고 이 수집품들을 전시해 많은 이들과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인터뷰_국립민속박물관 웹진 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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