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구로 소리를 알리다

조선시대 장신구를 수집하는 서도소리 명창 박정욱. 국악인이 여성 장신구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 일장춘몽이요, 세상 공명은 꿈밖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님의 생각이 간절하여 나 어이 할까요.”

 

그의 컬렉션을 이야기하자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였던 스승 김정연으로부터 배운 「수심가」 한 소절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들은 소리에 매료되어 시조창부터 공부한 박정욱 명창.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조선시대 왕비를 두 명이나 배출한 거창의 양반 가문이라 주위에 소리꾼이 없던 탓에 스스로 스승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1984년, 김정연 명창의 공연을 보고 매혹된 그는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평양기생학교 출신인 스승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고, 그녀의 물건을 보며 이야기 나누고 애틋한 사제지간으로 지냈지만, 스승은 병에 걸려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유품을 서둘러 처리하는 바람에 박정욱 명창의 손에는 수십여 점의 물건 밖에 남지 않았음이 아직도 아쉽다. 존경하는 스승의 유품으로 여성 장신구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박정욱 명창은 이후 족두리, 노리개, 머리 장신구, 자개함 등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스승 김정연에게 배운 소리와 인생

특히 그는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불렸던 서도소리 전수자로서 북한지역 장신구에 관심이 컸다. 남쪽 장신구가 섬세하다면 북쪽 것은 투박하면서도 화려하며 선이 굵다. 15년전만 해도 중국에서 들여온 북한 골동품을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보기 어려워졌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친목 모임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장신구 수집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지요. 멋진 골동품을 갖게 되면 기분이 좋아요. 요즘도 돈만 생기면 저축은 안하고 골동품상에 가곤 합니다.”

 

그는 조선시대 장신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스승 김정연과의 사연도 떠오르고,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의 추억도 담겨 있다. 조선시대 여성 장신구는 민화적 문양을 채색하는 형식이 많은데, 문양에 담긴 뜻을 읽어보는 재미도 새록새록 하다. “주로 장안평의 골동품상이나 컬렉터들에게 구매합니다. 좋은 물건이 나왔다고 해서 가면 항상 돈이 부족하기 마련이죠. 일단 있는 돈을 다 주고 몇 년 동안 할부로 지불한 다음, 마침내 물건을 집에 가지고 올 때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평소 절약하며 살지만 이상하게 골동품 수집에는 너그러워져요.”

 

 

 

 

평양의 장신구는 서도소리를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죠

그는 이렇게 힘들게 수집한 컬렉션을 공유하기도 한다. 몇 차례 외부 전시를 가졌고, 팔도 국악을 하우스 콘서트 형태로 감상할 수 있는 금요 국악공연장 ‘가례헌’에 스승 김정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만든 ‘금홍관’에도 수집품을 갖다 놓았다. 오래된 한옥을 뜯어와 실내를 장식한 가례헌에는 근대의 장신구들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언젠가는 김정연 명창 기념관을 만들어 평양 노래를 널리 알리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스승의 소리를 알리고, 서도소리를 계승하는 계기가 되겠지요. 젊은 국악인들이 평양의 장신구를 보면 서도소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그는 작은 장신구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다. 몇 해 전에는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서 그의 컬렉션만으로 「조선여류유행」이라는 조선시대 여성 장신구 전시를 열었는데 관람객들이 희귀한 북한 지역 장신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아산 의암리 민속마을에서 ‘평양 여성 자료관’이라는 전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중일 삼국의 전통 장신구도 각기 다릅니다. 중국은 금속 공예가 많고, 원단 자체에 수를 놓아 화려하게 옷을 만듭니다. 우리나라는 자연을 닮은 소박함이 돋보이며, 불로장생과 수복의 염원을 자수에 담아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일본은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이 특징이지요.” 통영 지역에서 만든 조선시대 자개함도 수집하는 그는 올해 말 자개함 전시도 열 예정이다. 예로부터 자개는 통영이 제일이라 과거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제가 치장을 많이 하지 않아 오히려 남성 장신구에 소홀했네요

모든 스승이 소중하지만 스승 김정연을 더욱 존경하는 이유는 그녀로부터 소리꾼의 자부심을 배웠기 때문이다. 스승 김정연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평양 기생의 자부심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 서도소리는 차가우면서도 애절한 것이 특징인데, 그녀의 소리는 얼음이 짝짝 갈라지는 것처럼 냉랭하고 쌀쌀맞았다. 그녀가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 있는 이유다. 그는 스승 김정연의 서거 이후, 배뱅이굿 전승자로 유명한 이은관 명창에게 소리를 배워 서도소리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국악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르다 보니 자연스레 자기 옷을 스스로 만들게 됐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얼마 전부터 한복 의상실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쇳대박물관에서 발행된 『전통 혼례의 아름다움』에 등장하는 한복과 장신구는 그의 작품이다. “사실 조선시대 남성 장신구가 여성의 것보다 많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갓, 탕건, 먹통, 필통, 귀주머니, 향낭, 관자, 노리개 등 장신구가 수려하고 다채롭습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치장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 장신구에 비해 다양하게 수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조만간 서도소리 음반을 시리즈로 발매할 예정이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94년 음반 발표 이후 오랜만의 녹음이라 즐겁다. 소리와 수집품을 통해 서도소리를 알리고 싶은 그의 바람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있다.

 

 

인터뷰_국립민속박물관 웹진 편집팀
사진_이혜련(Other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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