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여유, 신분을 피우다

단순하게 생긴 담뱃대.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기호품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몇 가지 공감각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밥만큼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당신은 쇠 대접에 장수 막걸리를 꼴꼴꼴 따라 목젖을 울리며 꿀꺽꿀꺽 잘도 넘기시고, 젓가락으로 짠지 한 점 집어 우걱우걱 참 맛있게도 씹으셨다. 쇠와 쇠가 부딪히던 ‘탕탕’ 소리도 떠오른다. 처마 골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당에 일렬로 구멍을 파던 장마철, 대청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시던 당신이 긴 담뱃대를 재떨이에 두드릴 때 빗방울 사이로 퍼지던 소리. 그것은 오래 산 남자만이 낼 수 있는 소리, 집안의 어른만이 울릴 수 있는 소리, 무료함과 무심함이 배어 있는 소리였다. 당신은 큼지막한 원통형 ‘사자표’ 성냥갑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작게 두 번 톡톡 긋고, 다시 한 번 힘차게 그어 불을 피웠다. 유황 냄새와 함께 호르르 타오른 불꽃이 잦아들면 당신은 담뱃대에 불을 붙여 입에 문 다음, 볼을 홀쭉하게 만들며 담뱃대를 빨았다. 뻐끔뻐끔. 담뱃대는 집안 최고 남자 어른인 당신만의 물건이었고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방해하기 힘든 그만의 전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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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에도 트렌드와 럭셔리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긴 담뱃대를 자주 손에 든 건 아니었다. 주로 ‘거북선’ 같은 일반 담배를 피웠다. 담뱃대에 썬 담배를 담아 피우는 방식은 이미 남자 기호품으로서의 역할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1616년(광해군 8년)에 일본에서 담배가 처음 들어오고 담뱃대가 보급됐을 때 이 땅의 남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지 않다가 신유년(광해군 13년, 1621년)부터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할 때면 술과 차 대신 담배를 내놓을 만큼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담배의 인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새로운 물건이 보급되면 그것에 의미가 부여된다.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예절이 생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긴 담뱃대長竹를 쓸 수 없다’는 관습이 생긴다. 국정을 논의하러 모인 관리들이 담뱃대를 물고 잡담이나 지껄이는 행태가 벌어진다. 연꽃 필 무렵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가야금 연주를 듣던 선비와 기생이 신윤복의 풍속화 「청금상련聽琴賞蓮」 속 주인공이 되는 문화적 해프닝이 벌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물건과 도구에 관심이 많다. 값비싼 디지털 카메라 렌즈를 모으며 뿌듯해 하는 요즘 남자들처럼 조선시대 남자들도 귀한 재료로 담뱃대를 치장해 멋을 부리고 재력을 과시하고 유행을 만들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서 ‘전국에 걸쳐 다투어 사치하는 자들이 백통이나 오동烏銅, 검은빛이 나는 구리으로 담뱃대를 만들고 금은으로 치장해 쓸데없이 막대한 비용을 허비한다’고 한 것으로 미뤄보면 당시 담뱃대가 ‘럭셔리 액세서리’이기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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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엽서. 부산오죽당서점釜山吳竹堂書店에서 발행한 조선풍속朝鮮風俗 시리즈 중 36번째 엽서임. 제목은 「鮮人ノ娛樂(將基)」임_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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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엽서. 경성일지출상행京城日之出商行에서 발행한 조선풍속朝鮮風俗 시리즈 중 32번째 엽서임. 제목은 「끽연喫煙」임_국립민속박물관.

 

담뱃대는 기호품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담배를 담는 대통. 연기가 올라가는 통로인 설대. 입에 무는 물부리. 담뱃대의 생김새를 찬찬히 감상하다보면 결국 기호품의 속성이란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작은 발견에 이른다. 지위가 높은 남자가 설대가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엣헴!’ 했던 것은 마치 높은 연봉을 받는 월스트리트의 금융맨이 기다란 쿠바산 시가를 피우며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것과 같다. 담뱃대와 함께 재떨이 · 부싯돌 · 쌈지를 끽연사우喫煙四友라고 부르며 아꼈던 것은 요즘의 애연가가 ‘퐁’ 소리와 함께 열리는 라이터를 구입하고, 시가가 마르지 않게 온도와 습도를 관리해주는 휴미더를 사진으로 찍어 자기 블로그에 올리는 것과 같다. 멋 좀 낸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서양의 담배 파이프가 유행할 때는 이태원 등의 술집에서 파이프를 케이스에서 꺼내 담배를 털어넣고 여유있게 한 모금 피우던 남자들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소셜 스모킹’이라는 말이 증명하는 것처럼 담배는 유대를 다지고 시간을 함께 나누는 도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산과 강이 바라보이는 정자에 둘러앉아 시조를 읊을 때 담뱃대를 손에 들지 않은 사람은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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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담뱃대가 가진 기호품의 속성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담배를 둘러싼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담배는 건강을 해치는 원흉이 됐다. 담배 피울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좁은 흡연실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한 대 피우고 다시 회사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는 오늘의 흡연 풍경. 만약 조선시대 끽연가가 ‘타임 슬립’ 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어서 빨리 조선시대로 되돌아가자고 재촉하지 않을까. 왜 아니겠는가. 긴 담뱃대 손에 쥐고 마실 나가면 마을 사람 모두 고개 숙여 인사하고, 기생들과 함께 담뱃대 물고 꽃과 음악을 완상하고, 시조를 읊으며 한나절 여유 있게 담배를 음미할 수 있는 것을.
담뱃대를 다시 보니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어 반가우나 요즘은 천천히 담배 한 대 음미할 시간도 없을 만큼 어찌 이리 여유가 없나 싶어 서운해진다.

 

 

글_국립민속박물관 웹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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