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 예술품이 되다

지체 높은 여인이나 기생의 화장 도구, 경대(鏡臺).
이 조선시대 공예품을 21세기로 소환해 생활명품 작가 윤광준의 눈으로 재조명했다.

거울의 용도란 뻔하다. 제 얼굴이나 몸을 비추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 유행했던 장롱 문짝의 전신 거울이 생각난다. 옷매무새의 마지막 점검용으로 온 식구가 장롱 앞에 섰다. 당시 내 어머니는 그 앞에서 화장도 했다. 갖고 싶다던 예쁜 경대조차 들여놓을 수 없었던 궁핍 때문이긴 하다. 반면 잘 나가는 안방마님이나 화류계 여성은 폼 나고 화려한 경대를 끼고 살았다.

 

거울과 경대는 아무래도 여자들만의 전유물이다. 미모에 대한 바람과 세월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은 멈추는 법이 없다. 80년대말 늙은 기생이 화장하는 걸 훔쳐본 적 있다. 이들이 나오는 요정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의 아련한 기억일 것이다. 문틈 너머의 기생은 얼굴의 주름진 골을 연신 분으로 메웠다. 자개 장식이 화려한 경대와 한몸이 된 듯한 여자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사람과 사물의 선명한 대비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팔자 좋은 안방마님과 기생이 쓰던 화려한 경대를 찾는 이는 없다. 주거 환경의 변화로 앉은뱅이 탁자와 비슷한 높이의 경대는 필요 없을 테니까. 요즘엔 종류조차 다 파악되지 못한 화장품이 즐비한, 거울이 달린 테이블을 경대로 쓴다. 기능적 편리함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뀐 여자의 경대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방에서 내밀한 힘을 뿜는다.

exhibit_img15
exhibit_img15
경대와 손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기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_국립민속박물관

 

볼수록 깊고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경대

여자의 물건을 내가 자세히 알 턱 없다. 다행히 우리의 공예품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느낀 지는 꽤 오래됐다. 첫 직장이었던 회사가 운영하던 민속박물관 탓이다. 나의 관심과 업무가 섞인 탓에 수시로 박물관을 드나들었다. 온갖 종류의 물건을 보았고 차이를 배워나갔다. 특히 조선 소목장이 만든 궤와 탁자, 경대, 소반을 유심히 봤다. 처음엔 우리 가구의 고답적인 투박함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느낌이 달라졌다. 무릇 분야의 우열은 비교로 분명해지게 마련이다. 나라 밖의 가구를 보는 횟수가 늘어났고 디자인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제 나라 문화의 자부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 가구의 평가는 인색해진다. 객관적 평가의 눈을 갖기 위한 힘이 중요하다. 그 출발은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의 장점을 알고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가구는 목재 본연의 질감이 표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느낌은 이상하리만큼 깊다. 자연목의 두께 때문이거나 칠의 특성에서 배어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나무의 물성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드러나지 않을 유기적 아름다움이다. 어디 그뿐인가. 결구의 다양함을 알게 되면 조선 가구의 매력이 새롭게 다가온다. 짜맞춤의 방식이 정교해서 조립된 가구는 튼튼하고 단단하다. 외형은 본질을 드러내는 얼굴 같은 것이어서 감춰도 저절로 보인다. 간결한 형태에 담긴 구조의 탄탄함은 온몸의 체중을 얹어도 충분히 견뎌낸다.

 

시대적 구분과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수법에 따라 다채로운 형태가 펼쳐진다. 목재와 쇠, 쇠뿔, 자개, 은입사…. 장식의 재료에 따라 개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매력이다. 호불호는 각각의 선택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자연스러움과 투박하고 거친 질감의 역동성이 좋다. 이들 가구는 비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 한옥 방에 놓여진다. 독특한 형태의 비례가 주는 포만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경대의 매력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은 서랍과 거울을 세워 놓을 수 있는 상판이 있는 구조만 다르다.

soso_10
soso_11
soso_12
soso_13
soso_14
조선시대 경대. 뚜껑은 접어 세울 수 있고, 안쪽에 거울이 달림. 앞면 상단에 잠금장치가 있고, 그 아래에 서랍이 있음. 서랍 문에 박쥐형 손잡이가 달림. 각 면에 물고기, 대나무, 학 등이 나전(螺鈿)으로 장식됨_국립민속박물관

 

생활에서 비롯됐지만 예술의 경지를 인정받다

거울이 들어온 시기를 생각하면 경대의 역사는 채 이백 년이 안될 듯싶다. 그 동안 만들어진 여러 경대들은 하나 같이 조선 가구의 특질을 이어받았다. 매끄러운 정밀함은 떨어진다. 하지만 야무지고 단단하다. 서랍을 열어보면 나무끼리 깍지를 끼워 물린 듯하다. 작은 손잡이를 달아 여닫는 감촉이 독특하다. 분통과 크기가 다른 붓과 솔, 참빗을 넣어두거나 바느질 도구까지 담는 서랍은 기능적이면서 조형적이다. 경대의 전면을 보면 대개 왼쪽에 큰 정사각형 서랍, 오른쪽에 칸을 나눈 직사각형 서랍이 포개져 있다. 표현주의 시대의 구성을 보여주는 듯한 전체 구획의 비례와 균형의 조화가 멋지다.

 

작년 독일의 함부르크 조형 미술관에 놓인 조선의 경대를 보았다. 은은한 조명을 받아 빛나는 짙은 갈색 나무 광택과 무뚝뚝한 장석裝錫의 조형성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독일인 큐레이터는 ‘한국의 공예품’이란 의미 대신 세련된 디자인의 완결로 받아들인 듯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친 우리 가구의 아름다움은 각별했다. 형태의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아름다움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체의 완결로 뿜어내는 조선 경대의 조형성은 현대의 가구 디자인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듯했다. 용도를 잃어버린 경대는 나라 밖에서 비로소 예술의 경지를 인정받았다.

soso_3
soso_4
soso_5
soso_6
soso_7
soso_8
soso_9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사용된 다양한 경대들_국립민속박물관

 

맨 얼굴의 여자는 진실해 보일지언정 항상 예쁘기는 어렵다. 화장이라는 보완의 방법이 있어 다행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세상을 밝게 한다. 미인들이 더 많이 활보하는 거리를 떠올려보라.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세상을 우리는 이상이라 부른다. 여자의 세련된 화장을 나라가 독려해도 모자랄 판이다. 우리의 화장품이 세계의 여성에게 각광받은 지도 오래됐다. 모처럼의 분위기를 세계적인 화장 산업 부흥으로 살려도 좋을 것이다.

 

요즘의 경대는 임시로 쓰기 위한 휴대용과 화장 전문가가 쓰는 장비로 변한 듯하다. 현재의 필요를 눈감을 수 없다. 여기에 과거 우리의 경대에서 뽑아낸 고유성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면 어떨까. 과거의 흔적이 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에서 이전의 경험이 갖는 요소를 적절히 섞는 것만으로 의외의 성과가 나올지 모른다. 옛 공예품의 가치는 눈여겨보는 이들에게만 활용의 힌트를 준다. 앞으로도 여자는 경대 앞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화장의 마법은 화장품 회사에게 돌려주자. 대신 경대란 그릇을 키워 화장 전체를 담아내는 문화로 키우면 더 큰 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03045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대표전화 02-3704-3114    팩스 02-3704-3113

발행인 윤성용    담당부서 섭외교육과  © 국립민속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