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기

외출할 때 저고리 위에 입는 우리나라 고유의 겉옷, 두루마기의 기원, 유래 등을 살펴보자.

두루마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두루마기의 기원을 찾으려면 삼국시대의 포袍,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겉옷의 총칭 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구려의 포는 깃이 밑단까지 내려오는 것이 현재의 두루마기와 조금 다르고, 고름 대신 띠를 둘렀을 뿐 두루마기와 큰 차이가 없다. 중국을 찾은 백제와 신라의 사신들 역시 그와 비슷한 포를 입었다. 삼국시대의 포는 고려시대 들어 백저포白紵袍로 진화했는데, 고려 중기를 지나며 좀더 활동이 편한 형태로 바뀌었다. ‘두루마기’라는 이름은 고려 말에 몽골어의 ‘후루막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다른 포와 달리 트임 없이 ‘사방을 둘러막았다’는 의미로 ‘두루막이’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의견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한자로는 ‘주의周衣’라고 한다. 고려의 포는 조선시대에 직령포直領袍로 발전해 조선 후기 두루마기의 원형이 된 것으로 본다.

exhibit_img15

부부의 초상화 중 남편을 그린 그림, 정자관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_국립민속박물관

엘리자베스 키스, 원산元山 학자와 그 제자들, 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노인이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 모습_국립민속박물관
양반의 밑받침 옷에서
남녀노소 모두의 겉옷으로

조선 양반 사내는 외출할 때 우선 두루마기를 챙겼다. 긴 고름과 짧은 고름을 앞가슴에서 맺어 왼쪽으로 고를 내어 두루마기를 입은 다음, 그 위에 다시 소매가 넓고 옆구리가 트인 중치막, 도포를 입어 격식을 차렸다. 중치막이나 도포를 입을 수 없는 상민 계급 등은 할 수 없이 두루마기를 마지막 겉옷으로 입었다. 고종 갑신년에 의복 제도 개혁이 일어나 창옷·중치막·도포 등이 폐지되면서 홀가분하고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두루마기가 밑받침 옷에서 겉옷으로 바뀌었다. 1895년 을미개혁 때는 관리와 백성의 차별을 두지 않는 평등의 의미로 모두 검정색 두루마기를 착용하게 했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두루마기는 남녀노소 구별 없는 가장 대표적인 한복의 겉옷, 그리고 예복으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종류와
갖가지 색깔

가장 대표적인 겉옷이었던 만큼 두루마기는 종류와 색깔이 다양했다. 길이에 따라 긴 두루마기와 반두루마기로 나뉘었고 백이 두루마기, 홑단 두루마기, 겹두루마기, 솜두루마기 등의 형태가 있어 계절에 맞춰 입었다. 계절별 옷감도 다양했다. 겨울용으로는 명주·모직·무명·옥양목·부사견을 주로 쓰고, 봄과 가을용으로 명주·항라·옥양목을 사용했다. 모시·쟁친 모시다듬이질 하지 않은 모시·항라는 여름용 두루마기에 썼다. 조선말부터는 대부분 검정색과 흰색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회색, 고동색 그리고 분홍색, 군청색, 옥색, 자주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의 옷감으로 두루마기를 만들어 입었다.

durumagi_3
durumagi_4
durumagi_5
durumagi_6
durumagi_7
durumagi_8
21세기에도 한복의 멋을
대표하는 두루마기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며 한민족의 몸을 감싸고 신분을 드러내고 멋을 표현하던 두루마기는 21세기에도 한복의 기품을 대표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은 두루마기를 입고 기념 촬영을 했다. 배자, 창의, 저고리 등을 놓고 고민하던 APEC 준비기획단은 한복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정상들도 쉽게 입을 수 있고, 한국의 멋이 물씬 풍긴다는 점 때문에 두루마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이 패션에서도 두루마기를 통해 한복의 멋을 표현하곤 한다. ‘한복에 대한 오마주’를 주제로 열린 2015/16 샤넬 크루즈 컬렉션에서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두루마기를 본뜬 드레스와 짧은 통바지의 매치를 통해 한복의 멋과 현대성을 함께 연출했다.
서양 복식의 코트를 닮은 두루마기는 그 단순함과 간결함 덕분에 대표적인 생활 한복으로 사랑받고 있다. 두루마기를 변형시킨 무채색 한복 외투는 청바지나 운동화와도 잘 어울리며, 한복은 일상 생활에서 입기에는 불편하다는 선입견도 깨트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두루마기를 차려 입은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이 고궁을 산보하는 모습이 눈에 띄더니 이제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참고
『한국의식주생활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글_편집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03045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대표전화 02-3704-3114    팩스 02-3704-3113

발행인 윤성용    담당부서 섭외교육과  © 국립민속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