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평창 이전에 한강이 있었다. 지난 시절 한강에서 열린 우리 모두의 동계 올림픽.

허리가 구부정한 아버지는 겨울철 한파 특보를 접할 때마다 그 옛날 한강에 대해 읊조리곤 했다. 요즘 한강물이 얼면 마치 혹한이 들이닥친 것처럼 호들갑 떨지만, 당신의 젊은 시절엔 겨울이면 당연히 한강이 얼어붙어 호기로운 강태공들을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강에서 얼음 낚시를 하고, 스케이트를 탔으며, 어린 삼촌들을 태운 썰매를 밀기도 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 이야기다. 나는 조선시대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보관하던 동빙고東氷庫와 서빙고西氷庫를 언급하며, 아버지에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라고 대거리하곤 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1960년대까지도 한겨울이면 한강 얼음을 캐서 사용했노라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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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_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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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케이트_국립민속박물관
 

“한강이 얼면 썰매를 타고 밤섬까지 나가기도 했지”

유람선이 가로지르고 둔치가 시민의 말쑥한 휴식처로 단장된 21세기의 한강을 마주하면 믿기지 않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1960년대말 강가에 처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아니 1980년대 8차선 올림픽대로가 놓이며 강변의 백사장이 콘크리트 아래 파묻히기 전까지만 해도 한강은 단단하게 얼어붙는 날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일대의 빙판은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고, 얼레를 잡고 연싸움에 나서는 동네 꼬마 녀석들의 동계 올림픽 경기장으로 변신했다. 국가기록원의 흑백사진 안엔 1957년에 벌어진 한강 채빙採氷과 빙상대회, 1964년의 얼음 낚시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썰매는 조선시대부터 건축 공사에 널리 사용됐다고 한다. 17세기 창경궁과 창덕궁 재건 공사를 기록한 『의궤서儀軌書』에도 물건을 나르는 도구로 썰매가 등장하고, 18세기말 수원성을 축조할 때도 썰매가 여러 대 이용됐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스며들게 된 것일까?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나서기라도 한 것처럼 너도나도 의기양양하게 썰매를 끌고 강변에 모여들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공해가 심하지 않아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벙거지를 쓰고 강변에 앉아 이미 얼음 낚시를 시작하고 계셨어. 어느 동네에서 쏟아져 나왔는지도 모를 아이들이 한데 뒤엉켜 썰매를 타고, 때론 밤섬까지 가기도 했지. 부잣집 녀석들은 스케이트 날이 두 개 달린 썰매를 탔는데, 보통은 날이 하나거나 아예 날 없이 손잡이용 꼬챙이로만 끌어가는 썰매들도 허다했어. 스케이트를 탄 아이들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아버지는 소년 시절 겨울이면 더욱 별이 총총하던 서울의 밤하늘을 회상했다. 당신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얼어붙은 한강은 따뜻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내복도 입지 않았다는 호언장담은 왠지 끝까지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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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겨울 스포츠는 연싸움이었다. 요즘도 한강변 편의점에서는 현대화된 연날리기 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예전엔 연을 직접 만들었고, 유독 겨울에 민속놀이로 즐겼다는 사실 정도. “우리나라는 대대로 농업이 기반이었잖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음력 12월에 접어들면 농한기가 되고, 그제야 사람들은 여유가 생겨 놀이 삼아 연을 띄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 정월대보름쯤 절정을 이뤘지. 바람을 타면서 친구의 연줄을 끊어먹는 연싸움에 푹 빠져서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바람이 거셀수록 연싸움이 격렬했지.” 아버지는 전장에 나선 장수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흘러간 가요를 흥얼거렸다.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그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는 팽이치기도 맹렬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울에는 물을 받아 집집마다 날라주는 물장수가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이들이 나르다 흘린 물이 길가에 얼음판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이곳에 모여들어 팽이를 쳤다. 다 나무로 만든 팽이여서 얼음판이 가장 좋은 놀이 장소였다. 아이들은 한겨울 개천 위에 모여 팽이를 치며 나름의 승부를 겨루곤 했으니, 얼어붙은 한강이 거대한 경기장이 되어준 것은 당연했다. “팽이 싸움은 팽이를 서로 부딪치게 해서 한쪽이 튕겨 나가 넘어지면 지는 거였어. 손이 부르트도록 팽이를 쳐 이겨서 상대 녀석의 스케이트를 당당하게 빌려 타기도 했지.” 아버지는 능숙하게 팽이에 줄을 감는 시늉을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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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강을 가르던 기억,
이젠 아득한 추억속으로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펼쳐지는 올해는 지구촌 겨울 축제를 제대로 축하하기 위해서인지 연초부터 매서운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1월 15일에는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한강은 평균적으로 매년 1월 13일경 결빙되고 2월 5일께 해빙된다. 결빙 기간은 한 달에 못 미치는데, 조금씩 짧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1960년대 연평균 결빙 일수가 42일에 달했던 것이 1970년대에는 28일, 1990년대는 17일, 2000년대 들어서는 14일로 줄었다. 1967년 시작된 대대적인 한강종합개발사업 여파로 한강의 수심이 깊어지고, 유속이 빨라지며 한강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고 겨울 한강을 가로지르던 기억을 아득한 추억 속에 가둬두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시절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교문을 내달려 얼어붙은 한강에 나와 썰매를 타고 팽이치기와 연날리기에 몰두했다. 풍족하지 못한 옛 시절의 놀이 문화였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흐뭇한 구전처럼 가장 풍요로운 추억을 선사한 한때였는지 모른다. 따끈한 아랫목 생각이 간절해질 법도 하건만, 그 시절 아이들은 동장군과 더불어 겨울의 참 맛을 즐겼다. 이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고 얼어붙은 한강을 내달릴 순 없지만, 강변에서 방패연을 날리는 정도는 오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강의 얼음이 다 녹아버리기 전 허리를 펴고 강변에 나가봐야겠다.

 

글_ 정명효
여행 잡지 <에이비로드> 편집장 출신으로 에세이집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를 펴낸 작가. <모닝캄> 등의 잡지에 한국의 명승지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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