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환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추수 김제덕 초상화>

혼돈의 시기, 유학자로서의 고집을 귀한 초상화에 담다

초상화는 오늘날 역사나 풍속의 연구 자료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동양의 초상화는 단순히 인물을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정신까지도 옮겨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추수秋水 김제덕金濟德의 초상화를 보면 머리에는 정자관程子冠, 몸에는 심의深衣, 왼손에는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들고 있는 위엄 있는 모습이다. 그의 초상화는 왜 그려졌으며, 어떤 정신을 담고자 했을까? 박수환 큐레이터에게 추수 김제덕 초상화에 대해 들어봤다.

 

조선시대 인기화가 채용신이 그린 추수초상화,
후손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추수 김제덕 초상화는 2007년 전주에 거주하는 김학수 선생이 집안에서 귀중하게 보관하던 조상의 영정을 기증한 것이다. 이 그림은 추수선생이 67세인 1921년 10월 상순에 인물화가인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그린 작품으로 흡사 사진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가 일품이다. 얼굴의 주름살, 수염, 눈동자까지도 매우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추수 초상화가 기증됐을 당시 저는 수장고에서 유물을 정리하는 일을 담당하던 신출내기 학예사라 이 그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기증자이신 김학수 선생님께서는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그림을 사용하지 않고 지방만 쓰셨다고 해요. 대개 그림은 집안 어르신 방에 모셨고, 가끔 후손들에게 조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에만 그림을 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런 그림들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것이었죠.”

 

이 그림의 주인공인 추수선생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초상화와 자신이 쓴 시문詩文을 간추려서 한권으로 엮은 책인 『추수사고秋水私稿』 뿐이다. 이 책에는 을사늑약 체결에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을 추도한 시와 국권상실의 혼란한 시기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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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는 조선시대에는 더욱 귀중한 물건이었고 매우 특별한 분들만 가질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습니다. 추수초상화를 그린 채용신은 고종 어진御眞을 도사圖寫한 것을 비롯하여 황현黃玹, 1855.12.11.~1910.9.10., 최익현崔益鉉, 1833.12.5.~1906.11.17., 류제양柳濟陽 구례 운조루의 주인 등의 초상화를 그린 인물이죠. 국립민속박물관은 추수초상화 외에 「윤씨조모초상」이라는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한 점 더 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추수선생은 당시 유명 화가인 채용신에게 의뢰해 초상화를 그렸던 것으로 봤을 때 재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특이한 점은 그림을 보관하는 나무상자가 따로 있습니다. 상자도 무척 예쁘게 잘 만들었지요.”

 

조선시대 가치 무너져갔던 일제강점기,
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담다

 

추수초상화가 그려진 시기는 1921년으로 이미 조선시대적인 가치는 점점 무너져 가는 일제 강점기였다. 조선시대에 출세하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관직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 외의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학교육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 일부 부유한 집안 자제들은 일본유학을 다녀오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근대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복장과 사고방식, 경제적인 부분이 달라지면서 점차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추수초상화에서는 어느 한 곳에도 그런 변화의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추수선생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자 한 모습이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에 우리 부모님들이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대개 정장을 차려입고 찍은 것들이 많죠. 추수초상화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것으로 사진보다 100배는 더 귀한 것이었으니, 자신의 정체성인 유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복과 주자대전과 같은 책을 그림에 남기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변화의 물결이 추수초상화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로 여겨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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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윤승길尹承吉의 영정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광경,
2003년 10월 _출처 박수환 학예사 촬영

그렇게 귀하게 여겨진 초상화는 보관방식도 특별했다. 특히 초상화 중에서도 나라에서 임금이 내려주는 귀한 영정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1년에 한번 그림을 햇볕에 내놓고 말리는 포쇄曝曬를 하면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2003년 무렵 경기도 여주에서 해평 윤씨 동강공파의 시제 때 영정을 놓고 제사 지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광경을 회상해보면 영정을 모시고 올리는 제사라 조상에 대한 위엄이 한층 높아 보이고 제사를 지내는 후손들의 자세도 더욱 경건해 보였습니다. 대한제국 시기 서구의 사진기술을 빨리 받아들인 연유도 백성들에게 황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황실의 위엄을 올리기 위함이었다는 연구도 있지요. 과거나 지금이나 이미지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히스토리가 뚜렷한 귀한 유물,
박물관을 찾는 이들도 그림 속 의미 찾아보길

 

그렇다면 박수환 큐레이터가 추수초상화를 추천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민속박물관에는 2017년 12월 기준 약 15만 9천여 점의 많은 유물들이 있습니다. 유물들은 대개 히스토리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요. 저는 추수초상화처럼 어느 정도 히스토리가 있는 유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유물 자체로는 매우 좋은데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분이 사용했는지 모르는 유물들은 사실 저 같이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죠. 할 말이 별로 없거든요.(웃음) 그런데 추수초상화처럼 히스토리가 뚜렷한 유물은 할 말들이 많아지죠. 그래서 좋아하고요.”

 

추수초상화는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의미 있는 유물 중 하나다. 민속을 다루는 박물관이다 보니 명품유물보다는 일반 민속품이 많지만, 그 중 추수초상은 진귀한 명품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국립전주박물관 ‘석지 채용신, 붓으로 사람을 만나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전’, 2014년 전북도립미술관 ‘초상화, 그를 기억하다’, 2016년 국립민속박물관 ‘때깔전’, 2017년 천안박물관 ‘모자, 품격의 완성’ 등을 통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전시되기도 했다.

 

“추수초상화는 그림의 의미와 더불어 그림을 보관하는 문이 달린 나무상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생김새가 특별하고 매우 재미있습니다. 또한 나무상자는 전라도 운암저수지에 잠겨 있던 배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참 귀한 상자이지요. 이처럼 귀한 추수초상화는 앞으로도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에 종종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박물관은 찾는 분들이 추수초상화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발견하셨으면 합니다.”

인터뷰_ 박수환 |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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