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고층건물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 하나가 창문을 부수고 건물 밖으로 몸을 날렸다. 줄에 매달린 덕분에 바닥으로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소방관은 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사다리차의 동료에게 손을 뻗어보지만 좀처럼 닫지 않아 직접 하강하던 중 불길에 닿은 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추락했다. 인명구조용 에어매트가 있었지만 모서리 부근에 떨어져 소방관은 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별 탈 없이 일어나 자신이 살린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황급히 뛰어오는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그 미소를 지나쳐 간다. 이상한 마음에 소방관은 뒤를 돌아보고 그곳에서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는 자신과 슬퍼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본다. 당황하던 남자는 갑자기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놀란다. 그러자 맞은편에 서있던 남자가 다가오며 이렇게 말한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 오늘 처음 죽어봐서 그래.” 소방관은 죽은 뒤였다. 그리고 그가 만난 건 저승차사였다. 죽은 소방관은 그들에 의해 저승으로 가게 된다.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어온 우리 민족,
저승차사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죽음의 여정

 

<신과 함께-죄와 벌>은 이렇게 시작된다. 죽은 소방관이 저승차사,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승사자를 만나 저승에서 7번의 재판을 거쳐 지옥을 건너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저승차사들은 죽은 영혼을 거둬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죽은 이가 지옥으로 빠지지 않도록 돕는 변호사 역할을 병행한다. 본래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에서 저승차사와 저승의 변호사 역할이 분리됐던 것을 영화는 하나로 더해버렸다. 상대적으로 러닝타임의 한계가 큰 영화로서는 어떤 결단을 한 셈인데 막상 영화화된 것을 보니 그것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신과 함께-죄와 벌>은 주호민 작가의 원작에 큰 빚을 진 작품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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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작가가 <신과 함께>를 처음 구상한 건 2009년이었다. 당시 그는 무당이 된 전직 연예인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래서 무속에 관한 공부를 하다 점차 신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돼 한국 신화를 탐구했고, 그 세계관에 놀라게 됐다고 한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다양한 캐릭터들이 존재하며 극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었다는 것. 결국 <신과 함께-죄와 벌>의 토양이 된 ‘저승편’과 올해 8월에 개봉할 속편의 토양이 됐다는 ‘이승편’, 그리고 두 작품의 프리퀄 격인 ‘신화편’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창작해냈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이야기가 한국의 신화와 민속 역사 속에 자리한 토착적인 세계관과 신들을 소환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죽으면 사후세계, 즉 저승이 있다고 믿어왔다. 저승세계로 이끄는 저승차사의 만남으로부터 죽음의 여정은 시작된다. 그리고 저승에 도달하면 저승의 시왕, 즉 열 명의 왕들의 심판이 이어진다. 그 중에서 7명의 대왕이 재판에 관여하고, 한 명의 시왕당 7일씩 총 49일간의 재판이 진행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승에서는 죽은 이의 제사를 49일 동안 지낸다고 한다. 이것이 49제다. 그리고 더 심한 죄를 저지른 이는 나머지 세 시왕에게 각각 죽은 지 100일 만에 한번, 1년 만에 한번, 3년 만에 한번 재판을 더 받아야 한다. 이처럼 저승세계가 구체화된 건 중국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도교사상과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런 류의 지옥을 구체화한 그림들이 사찰에서 발견되곤 하는데 화엄사와 해인사 명부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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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도(십대왕), 광복 이후, 무속(巫俗)에서 모시는 신상(神像)을 표현한 그림으로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10명의 대왕들이 홀(笏)을 들고 줄지어 서 있는 형상. 아래쪽에 2명의 저승사자와 쇠사슬로 묵인 남녀의 모습이 그려짐
내세와 지옥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곧
현생을 잘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

 

한편 영화에서는 저승차사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멀끔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실상 우리 전통에서 묘사되는 저승차사는 훨씬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간혹 저승사자를 등장시킨 <전설의 고향> 같은 곳에서 까만 갓을 쓰고 까만 도포를 입은 존재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화려한 복색을 하고 있으며 쇠줄이나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거칠게 망자들을 끌고 가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굿에서는 저승차사를 군졸 복장을 한 것으로 묘사했다.

또한 강림도령과 월직차사, 일직차사 3인조로 구성된 저승차사는 전통과 얼마나 다를까? 이건 항상 3명으로 구성됐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사찰의 명부전에는 2명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4명으로 그려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사람이 죽으면 저승차사를 모시고자 엽전 3개와 짚신을 놓고 망자를 저승길로 잘 인도해 달라 청탁(?)하기도 했다. 49제를 지내는 것도 망자가 좋은 내세로 가길 바라는 데서 비롯된 의례라고 한다.

이러한 내세신앙은 유교가 주류를 이뤘던 조선시대에 더욱 발달했다. 그만큼 뿌리 깊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의 민간신앙은 대륙에서 넘어온 샤머니즘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교류라는 신앙이 발생했고, 고려시대에 다다라 불교와 도교가 융합돼 재판을 하고 죄를 가리는 <신과 함께> 속 저승의 형태가 완성됐다고 한다. 심지어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으로 임명된 이들이 지방의 유력한 신들을 찾아 인사를 드려야 했고, 이를 어기면 파면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에도 잘 알고 있는 굿 형식이 성립된 것도 고려시대라고 한다.

이처럼 내세와 지옥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결국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선 현생에서 열심히 선행을 하고 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내세에서의 구원을 갈망하기보단 현생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제하고 있는 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죄와 벌>에 많은 관객들이 호응을 보인 것도 어쩌면 작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현생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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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와 세상만사에 관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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