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

– 강운구 사진작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과 중력 앞에서 소멸해간다. 아무리 또렷했던 기억도 시간의 녹이 끼기 시작하면 안개처럼 아스라해진다. 우뚝 솟은 봉우리도 평평한 대지로 몸을 낮추고 언젠가는 바닷가의 모래가 된다. 강운구 작가의 표현은 그래서 비감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이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분분한 추측이 있지만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들고 싶은 간절함의 산물일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빛바랜 사진 속 선명한 추억

 

빛으로 그린 그림이랄 수 있는 사진이 그림의 재현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한지 150년이 훨씬 넘었고, 눈부신 영상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동영상이나 홀로그램, 3D. 4D와 같이 사진을 무색하게 하는 경이적인 재현representation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컷의 사진은 때로 한 시간의 동영상보다 강렬하게 추억을 소환하는 매력적인 매체로 살아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그려낸 이 마술 같은 사진은 그 빛이 오래된 것일수록 마음 깊숙이 추억의 그늘을 짙게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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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와 그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흑백 사진 총 55장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어릴 적 누구의 집이랄 것도 없이 마루나 거실에는 낡은 액자가 걸려 있었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흑백사진이 모자이크처럼 들어 있었다. 다시 그 모자이크 안에는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한 가족의 삶이 더 작은 모자이크로 들어앉아 있었다. 그 빛바랜 사진 하나하나는 다시 소설책 한권 분량으로도 버거운 복잡하고 섬세한 삶의 무늬로 아롱져 있다. 라이프니츠 식으로 설명하자면 그 사진 속 얼굴 하나하나가 우주에 맞먹는 복잡한 삶을 설명해주는 모나드Monad, ‘무엇이 실체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활용된 개념인 셈이다.

김중만 사진가는 그래서 사진을 ‘삶의 기록이자 일기장’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가? 한 컷의 주름진 얼굴은 사진 속 주인공이 걸어온 삶의 여로를 훤히 드러내고 있고,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과 배경이 된 집과 마당 혹은 마을의 풍경에는 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문화적 코드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어릴 적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묵직한 금속성의 몸통에 매끄러운 렌즈를 지닌 카메라는 늘 갖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윗길을 차지했다. 어쩌다 친구의 카메라를 빌려 셔터를 누를 때 손가락 끝으로 전해져오는 긴장감과 가슴 지그시 밀려오는 흥분감은 사랑했던 여인의 손을 처음 잡을 때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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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레인지파인더 방식의 수동 카메라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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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수퍼리아, 사진촬영을 위해 필름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필름을 넣어 사진을 찍던 아날로그 시대, 사진관에 현상을 맡긴 필름이 사진으로 환생해 나오는 날, 때로는 탄성이 때로는 실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사진을 돌려보며 깔깔대고 재잘대던 기쁨을 어디에 비하랴. 한 시인은 동네를 거닐다 발견한 사진관에서 문득 눈에 보이는 외양뿐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 잃어버린 사랑도 복원이 될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화계동 사거리 먼지 골목의 입구
사진관 햇살 스튜디오
백일사진, 돌사진, 증명사진 위로
떨어지는 햇살 위로
옛날 사진 합성, 훼손 사진 복원!이라는 말
찢어진 사랑도 감쪽같이 기워줄 듯한 그 말

– 최정례 시인, ‘햇살 스튜디오’ 일부

삭막해진 현재, 사진으로 따뜻한 온기 감돌길

 

1990년대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날로그 카메라를 삼키고, 이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스마트폰이 다시 디지털 카메라를 빨아들여 사진기도 사진관도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추억을 강렬하게 소환하던 사진과 사진관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던 속도도, 휴대전화가 보급되는 속도도 세계 1위다. 사진 기능도 날이 갈수록 향상되다 보니 별다른 기술 없이도 휴대전화만으로 누구나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사진가가 된’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언제나 어디서나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고 빛의 속도로 전송도 할 수 있게 되니 편리한 만큼 아쉬운 것도 많다. 조작의 간편함과 속도, 그리고 가격과 비용 같은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아날로그 카메라 시대보다 장점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풍요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너무 풍부해서 도리어 한 컷의 애틋함과 소중함, 그리고 진정성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무제한으로 찍어도 되고 또 지워도 되는 디지털의 속성상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나 셔터를 누르는 정성, 그리고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아날로그에 비해 엷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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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다”

 

20세기 최고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인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그는 “일상 속에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결정적 순간이 어디에나 있다.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이 아닌 순간은 없다”라고 역설했다

공짜라고 함부로 순식간에 눌러대는 손가락을 잠시 멈추자. 너무 짧은 세상에 대한 눈길도 좀 찬찬히 오래 머물도록 하자. 다시 눈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을 성찰하는 매체로서의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보자. 또 그 아름다운 피사체들을 손 안의 창백한 디지털 감옥에만 가두지 말고 예쁘게 프린트해서 벽에 거실에 책상에 침실 머리맡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하자.

더는 간판을 내리고 자물쇠를 채우는 사진관도 없었으면 한다. 사진이라는 매력 있는 빛의 선물을 통해 삭막해져만 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관계가 다시 따스한 빛이 감도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글_임병걸 │ KBS해설위원‧시인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법률보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알아보고 기록하는 일에 더 마음이 끌려 1987년 KBS 기자가 되었다. 도쿄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는 한일관계를 깊이 들여다보았고, KBS 보도본부 경제부장과 사회부장을 지냈으며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일요진단> 앵커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KBS 해설위원으로 경제현안을 주로 해설하고 있으며 KBS 일본어 방송에서 시사 토론 프로그램 <금요좌담회>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 생활 틈틈이 시와 음악, 미술과 역사 등 인문학에도 매력을 느껴 시를 쓰고 각종 공연이나 전시회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평론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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