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과 연결고리를 잇는 문화적 행위

학술자료집 <한국의 제사>

 

TV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주인공은 친구를 찾아 하소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검은 비닐봉지에 소주, 명태, 배와 같은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부모님 산소를 찾는다. 주인공이 산소에 도착하면 간단한 제수를 제단에 올리고 술을 따르며 절을 한다. 그리고 무덤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리며 억울한 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인공이 부모 산소를 찾아 한바탕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일이 해결될 리가 없다. 왜 그럴까? 앞뒤 맥락을 알려면 우리는 전통적인 생명관을 알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동아시아 사람들은 혼과 백이 결합하면 살고 둘이 흩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고 나면 혼은 하늘로 가소 백은 땅에 묻힌다. 그래서 백이 머무는 곳이 무덤이고 혼이 머무는 곳이 사당이다. 원래 혼은 후손과 소통할 수 있지만 백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므로 소통 능력이 없다. 따라서 죽은 부모랑 이야기를 하려면 무덤이 아니라 사당을 찾아야 한다. 옛날부터 고유告由라고 하여 제사가 아니더라도 집안에 중대사가 있으면 사당에 가서 사실을 알리곤 했다.

 

조상을 잊지 않기 위한 주기적인 의식

 

조선시대에만 해도 사대부나 웬만한 가정이면 집을 지으면 제일 먼저 사당을 지어 조상의 위패를 모셨다. 화재가 나면 위패를 제일 먼저 챙겨서 안전하게 보존하거나 선조처럼 피난을 가게 되면 위패와 동행을 했다. 위패는 조상이 영혼이 어린 성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촌의 주택이 개량 사업의 대상이 되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주택은 죽은 조상을 모시기보다 산 사람 위주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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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 조선시대, 선교가 부모의 장례와 제사 때 신명께 고한 글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단독주택에는 조상의 사당을 별도로 짓지 않았고 좁은 아파트에는 위패를 모실 공간을 따로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결과 제주로부터 먼 조상의 영혼은 개인 가정이 아니라 종중의 재실로 옮겨가지만 정작 자신과 가까운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영혼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줄 모르고 TV나 영화의 주인공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산소가 사당의 역할을 겸하는 마냥 백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예컨대 위령탑慰靈塔의 건립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기념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사회는 원래 유일신이 영혼을 구원하여 영생을 누리는 사회 문화가 아니다. 대신 제사가 바로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더라도 소멸하지도 잊히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제사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지금 지내고 있는 제사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제사하면 주로 여성이 많은 시간을 들여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남성이 차례를 지내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명절과 제사 때가 되면 ‘명절 스트레스’라는 주제로 성 역할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게 된다. 이것은 제물 중심의 제사관이 낳은 폐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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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도, 조선시대, 사당이 없거나 외지에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붙이기 위해 사용한 그림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실 제사는 향을 피워 죽은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과 술을 땅에 따라 백을 불러들여서 제상 앞에 혼백이 만나고 그 조상이 다시 제사를 지내는 후손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건이 중요하다. 죽은 조상이든 살아있는 후손이든 만나면 먹는 음식이 빠질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전에 제사 음식이 영양을 보충하는 중요한 잔치였다고 한다면 지금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그러한 기능이 축소될 대로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많은 음식을 장만하는 제물 중심의 제사에서 조상과 후손이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사건 중심의 제사로 진화한다면 제사는 죽은 사람을 추억에서 되살려내고 이를 통해 조상과 나의 연결 고리를 확인하는 문화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제사 음식은 가정과 집안의 합의를 통해 최소한으로 마련하고 조상과 후손 그리고 후손과 후손끼리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동질성을 되새긴다면 명절과 기일에 지내는 제사의 부정적 측면이 줄어들고 긍정적 측면이 늘어날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간소화되는 제사풍습

 

지금 우리가 지내는 제사는 『소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큰 영향을 받지만 우리나라에서 편집한 『국조오례의』와 『상례비요』 등에 규정한 사시제, 기제, 묘제 등의 절차를 많이 따른다. 조선시대에는 신분마다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달랐지만 지금 보통 4대 봉사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 경우도 도시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인해 간소화의 대세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가정의례준칙」이 마련되어 허례허식을 줄이고 그 의식 절차를 합리화하고 했다. 「가정의례준칙」은 낭비를 억제하고 건전한 사회 기풍을 진작하기 위해 관혼상제의 의식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여 제시한 법률이다. 이 법률은 1957년 국민재건운동본부에서 마련한 「표준의례」와 1961년 보건사회부에서 마련한 「표준의례」를 바탕으로 하여, 1969년 1월 16일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반포되면서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의 법률은 법령으로 공포는 되었지만 이를 위반했을 때 규제하거나 강제하는 내용이 없는 권고적‧훈시적인 법률이었다. 그러나 1973년 6월 1일에 「가정의례준칙」과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이 제정되면서, 제10조에 벌칙 조항을 신설하여 법적으로 가정의례를 실효성 있게 강제하고자 하였다. 이 법령은 이후 자주 개정되다가, 1999년에 「건전가정의례준칙」이 새로 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제사는 법률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제사는 근대의 법률 체제가 정비되기 이전부터 삶에 뿌리를 내린 제도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사의 의미와 절차 그리고 방식과 관련해서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과거 제사가 다자녀와 대가족을 바탕으로 하여 설계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그런 토대가 사라지고 있다. 결혼도 선택이 되면서 1인 가정이 늘어나고 있고 결혼하더라도 출산도 선택이 되면서 무자녀 가정이 많다. 출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꼭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과거에 제사는 조상과 부모 세대의 물적 정신적 기반을 부계 중심으로 전승하여 사회 질서를 도모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제사는 지낼 사람조차 분명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 60세 이상의 사람들은 “내가 죽으면 제사 밥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을까?”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자녀 세대도 조상과 이어져있다는 사고보다 독립적 인격체라는 사고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제 제사는 간소화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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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과 사회제도가 이전과 다르지 않다면 제사는 의미와 상관없이 되풀이될 수 있다. 하지만 결혼, 상속, 가족 등에 대한 사고가 급격하게 바뀌는 상황에서 제사를 옛날에 지내던 방식으로 지내라고 요구한다면 제사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보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제사는 제물이 아니라 사건 중심으로 ‘나’를 개인의 욕망보다 더 넓은 지평에 놓고 생각할 수 있는 의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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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신정근│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동서철학을 배우고 동양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유교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사)인문예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다. EBS ‘인문학 특강’에서 논어, 인간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강의했으며, 연구서, 번역서, 해설서, 교양서 등 세계에서 논어에 대한 가장 많은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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