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만화방은 만화가게, 대본소 등으로 불린 ‘만화’를 볼 수 있는 ‘가게’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후반쯤에 등장했다. 초기 모습은 ‘방’이라기보다는 ‘좌판’ 형태에 가까웠다. 시장이나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업자가 만화를 가져와 좌판에 늘어놓고 아이들에게 빌려주었다. 이동형 책장수처럼 등짐을 지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만화를 빌려준 것이다. 이처럼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만화방이 아닌 만화좌판이 주를 이루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만화좌판에서 빌려보는 만화책은 어린이들이 싼값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오락이었다. 만화좌판이 장사가 잘되면서, 만화책을 출판하고 출판사와 이를 공급하는 도매업자,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빌려주는 소매업자들이 등장했다. 1957년 아현동에 서울총판이 설립되면서 만화책 도매가 시작되었다. 만화좌판은 골목 안으로 들어와 낡은 가게에 터를 잡았다. 흙바닥에 나무로 엉성하게 짠 의자를 놓고 벽에 만화를 늘어놓았다. 어둡고 음습한 곳이었지만, 만화방에서 빌려보는 만화에서는 대양을 건너고, 우주를 넘나들며, 악을 처단했다. 아이들은 푼돈을 가져와 최신 유행 만화를 빌려보았다. 우리나라의 만화방은 만화총판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던 1959년을 전후로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만화방의 탄생과 인기 작가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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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만화좌판 _박인하 씨 제공

1950년대 중반 만화 좌판으로 시작한 만화방은 1950년대 후반 만화전문 출판사가 늘어나며 만화 작품의 종수가 늘어났고, 196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전국에 만화방 영업망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가 되며 늘어난 만화방에 만화를 공급하기 위한 만화 전문 출판사가 등장했다. 이들은 인기 작가를 스카우트하고,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60년대의 만화 출판사 중 부엉이문고, 제일문고, 크로바문고의 활동이 활발했다.

1960년대 초반, 독자의 사랑을 받은 출판사는 부엉이문고다. 1950년대 후반 악동 콤비가 등장하는 우스개 만화 시리즈 <칠성이와 깨막이>로 인기작가로 떠오른 김경언과 SF 활극 <라이파이>로 역시 당대 인기작가로 부상한 산호를 모두 전속작가로 두어 1960년대 초반 만화시장을 장악했다. 김경언은 우스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가벼운 코미디 만화로 인기를 끌었고, 산호는 1959년 시리즈를 시작해 전 4부작 32권으로 완간한 <라이파이>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고생하는 소녀의 권선징악 이야기를 다룬 권영섭의 <울밑에선 봉선이>1960, <봉선이하고 바둑이>1961 등의 ‘봉선이 시리즈’는 나이가 어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 중반에는 제일문고가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 김종래의 사극 만화와 조원기, 엄희자의 순정 만화, 오명천의 액션 만화, 박기당의 괴담류 만화, 임창의 땡이 시리즈 등을 출간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초반이 <라이파이>의 시대였다면, 1960년대 중반은 김종래 사극의 시대였다. 김종래는 <보름달>1960을 시작으로 <마음의 왕관>1962, <황금가면>1964, <파도>1964, <눈물의 별밤>1965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박기당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만화를 창작한 대표적 작가인데, <만리종>1963, <신기한 레시바>1964, <유성인 가우스>1965, <바다의 독수리>1965 등의 작품이 있다. 1960년대 주로 액션극화를 발표한 오명천은 <싼디만>1961, <택견소년 창>1962, <탕>1964, <칼>1964과 같은 작품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땡이’라는 1960년대 대표 캐릭터를 창조한 임창은 1964년 <로봇 마치스테>로 데뷔한 후 <땡이와 영화감독>, <땡이의 사냥기> 등으로 196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만화방의 탄생과 인기 작가들의 등장

크로바문고는 다양한 장르의 장편 서사물을 주로 발표한 박기정과 두통이 캐릭터로 유명한 박기준의 만화, 그리고 <명견루비>1964같은 동물만화의 1인자였던 박부성과 <명탐정 약동이>1961와 청춘학원만화 <약동이와 영팔이>1962로 큰 인기를 얻은 방영진이 포진해 있는 출판사였다. 부엉이나 제일문고에 비해 많은 작가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러 장편 시리즈 만화를 발표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기정은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며 장편 만화의 지평을 확대시켰다. 박기정의 만화는 크게 순정, 액션, 스포츠 장르로 나눌 수 있다. 순정물에는 <가고파>1961, <들장미>1961, <은하수>1961 등이 있고, 액션만화로는 <폭탄아>1966이 대표적이며, 스포츠 만화는 축구만화 <치마부대>1964, 권투 만화 <도전자>1966, 레슬링 만화 <레슬러>1967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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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성 작가의 명견루비 _박인하 씨 제공

 

시대적 상황과 따라 변화되어온 만화방

 

1960년대 이후 만화방을 ‘대본소’나 ‘대본옥’으로 불렀다. 대본이라는 낯선 단어는 ‘빌려주는 책’을 뜻하는 일본어 ‘카시혼貸本’이고, ‘대본옥’은 이런 책을 빌려주는 가게인 ‘카시혼야貸本屋’를 그대로 사용한 명칭이었다. 만화방의 원형을 탐구하기 위해 일본을 먼저 들러봐야 한다.

책을 빌려주는 사업, 즉 책 임대업이야 조선이나 에도 막부시대에도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 이를 산업적으로 발전시킨 출발은 일본에서다. 1948년 고베에 문을 연 ‘로망문고’에서 보증금을 받지 않고 책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네오서방’이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가, 1960년대 정점에 이르렀을 때 3만 개까지 늘어났다. 패전 후 처음으로 인기를 끈 만화는 빌려보는 대본만화가 아니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싸구려 만화인 ‘아카홍(赤本)’이었다. 눈에 잘 띄는 붉은색 표지를 사용해 ‘아카홍빨간책’이라 불린 싸구려 만화는 정식 출판사에서 출간해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고 구멍가게나 노점, 문방구 등에서 어린이들에게 팔린 만화다. 테즈카 오사무의 <신보물섬>1947도 아카혼으로 출판되었고, 테즈카 오사무를 스타로 만든 첫 시작도 아카홍이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후방기지로 활용되면서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경제회복과 함께 물가가 오르고 더 이상 저가에 만화를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대본만화가 인기를 얻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대본만화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대본’이라는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거나 5년 정도 빠르게 만화방이 정착한 것을 미루어 보면, 우리나라의 만화방은 일본의 카시혼야를 참조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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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만화방은 동네마다 문을 열었다. 만화방 아들 박재동의 기억을 빌리자면 출간된 만화책을 몇 권으로 분책해 시멘트 포대 종이로 표지를 삼고, 두꺼운 철사로 묶어내 정갈하게 정리된 곳이 만화방이었다. 흑백 TV가 보급되며, 만화영화가 전파를 타게 되자 만화방은 만화와 싸구려 주전부리, 그리고 최첨단 영상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타이거마스크>, <요괴인간> 혹은 홍수환 챔피언전을 보기 위한 TV 시청 딱지는 만화 10권을 빌려보면 증정되는 사은품이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도시를 중심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가자 만화방과 함께 아동잡지가 등장하며 새로운 소비의 패턴으로 떠올랐다. 길창덕의 <신판 보물섬>이 연재되던 ⟪새소년⟫,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가 연재되던 ⟪소년생활⟫,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가 연재되던 ⟪어깨동무⟫, 이두호의 <폭풍의 그라운드>가 연재되던 ⟪소년중앙⟫ 같은 잡지가 매월 독자들을 찾아갔다. 게다가 이 잡지에는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만화들을 번안한 만화가 여러 편 수록되었다. 여유 있는 아이들은 정기구독을 하였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친구의 잡지를 빌려보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드디어 만화전집이 등장했고 점점 어린이들이 만화방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만화방이 살기 위해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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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짧은 민주화의 봄을 지나 암울한 시대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탱크를 앞세운 신군부의 위세에 눌려 공포에 적응했다. 1982년 신군부는 전국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를 전격적으로 출범시켰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다음해인 1983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만화방용 만화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혜성, 엄지, 동탁 세 명의 삼각관계를 이야기의 씨줄로, 카리스마 넘치는 손병호 감독이 퇴출 선수를 모아 지옥훈련을 시켜 탄생시킨 외인구단의 성공기를 날줄로 한 이 만화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 절망하던 대중들을 위로했다. 작품의 성공은 스포츠와 성공 스토리가 혼합된 수많은 만화방 장편들을 양산되었고, 죽어 가던 만화방은 어린이 독자가 아닌 어른 독자들로 다시 살아났다. 대학가, 역 등에 커다란 만화방이 새로 문을 열었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이 만화방을 찾았고, 힘겨운 시대를 만화방의 만화를 보며 통과했다.

이후 만화방은 1990년대 후반 아파트 단지마다 문을 연 만화 대여점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그러다 2010년 이후 웹툰이 등장하며 ‘빌려보는 만화’의 시대는 완전히 저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추억의 공간이 지닌 힘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거의 사라졌던 만화방이 최근 몇 년 간 홍대와 같은 조심 번화가에 주로 만화카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만화에 둘러쌓여 푹 쉬고 싶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만화카페를 찾았고, 만화카페는 조금씩 더 흥미롭게 변화하고 있다.

 

글_박인하
만화 없이 24시간 이상 버티기란 상상할 수도 없는, 만화를 그리지는 못하지만, 누구보다 만화를 사랑하는 만화 마니아다. 광운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광운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만화평론가로 등단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박인하 교수님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만화방에 대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의 만화의 역사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명료하게 소개되어 있어
    이 글을 광주에서 열리는 충장로 축제의 ‘그시절 그 추억’이라는 전시관에 마련된 만화방 코너에
    사용하고자 합니다.
    교수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아울러 글을 싣고자 하오니 승인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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