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비치는 계곡, 고둥도사

안녕하세요.
2016년 울산광역시 북구 무룡동 달곡마을에서 지역조사를 진행한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원 최범석 인사드립니다.
조사팀이 오랜 기간 동안 달곡에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 덕분입니다. 남자들끼리 살면 밥이나 잘 챙겨먹겠냐며 아침밥을 차려 주셨던 포실 어머님, 농사일을 미뤄가며 조사팀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셨던 통장님, 찾아뵐 때마다 반찬을 싸주셨던 사당골 어머님 등 달곡 주민들의 도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사팀에게는 주민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윗마을에 살고 계신 장덕일 어르신입니다.

요즘 울산에 “고둥(소라)도사”라고 불리는 한 젊은이가 나타나 앉은뱅이, 신경통, 소아마비, 정신병 환자들의 환부를 고둥으로
문질러 병을 완쾌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번져 멀리 경북(慶北)등지 등 각처에서 환자들이 찾아들어 화제거리.

마치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처럼 들리지만, 이 이야기는 부산일보 1966년 4월 19일자 기사이며, 이 기사의 주인공이 바로 장덕일 어르신입니다.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마을 사람들을 대하시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시는 훌륭한 인품으로 유명하십니다. 또한 여든에 가까운 연세에도 앉은 자리에서 소주 두 세병을 드실 만큼 애주가도로 유명하십니다. 조사팀이 찾아뵐 때마다 얼큰하게 취하신 얼굴로 “왔으니까 소주 한 잔 하고 가거라.”라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이처럼 인심 좋은 애주가로만 알았던 어르신이 과거에 울산에서 매우 유명하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에 일입니다.

“선생들이 자주 찾아뵙는 (장덕일)어르신이 젊을 적에는 울산에서 진짜 유명했다고. 고동(고둥의 사투리)도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어른이 고동을 아픈 부위에 갖다 대기만해도 안 낫는 병이 없었다.”

조사팀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마을에서 장덕일 어르신에 대해서 모르는 주민이 없었습니다.

“그 어른이 얼매나 대단했냐면, 젊을 적에는 군수, 군 의원,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그랬다. 하도 용하니까 안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니까.”

“그 고동인가 하는 돌이 있는데 그걸로 문지르기만 하면 신경통도 낫고, 정신병도 낫고 그랬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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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둥도사 신문기사(부산일보 1966년 4월 19일)

“동네 사람들이 그라던데 우리 영감(장덕일) 젊을 적에는 비 올 때 우산이 없어도 비를 안 맞았다고 하더라. 비가 영감을 피해갔다고.”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 조사팀은 장덕일 어르신을 찾아가 직접 여쭈어보았습니다. 어르신께서는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망설이시다가 조사팀의 거듭된 부탁에 고둥도사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내가 젊을 적에 우리 할매가 꿈에 나타나가 어디를 계속 가르치더라고. 그래서 깨자말자 일러준 장소로 가봤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런데 꿈을 꾸고 3번째 찾으러 갔을 때 그 근방에서 고동을 찾은기다. 그게 돌인데 생긴 모양이 고동같이 생겨가 사람들이 내보고 고동도사라 했다.”

어르신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음에도 고동이 환자를 낫게 한다는 것을 영감으로 아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마을에 환자들을 고둥으로 치료해주었는데 모두 효험을 보았습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어르신 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손님이 늘어났고, 이에 어르신은 울산 시내의 태화리(현 태화동)로 거처를 옮겨서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울산을 비롯해서 주변의 여러 지역에서 몰려든 환자로 집 앞은 인산인해였고, 나중에는 버스를 구입해서 환자들을 태우러 다니는 사람을 따로 두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의 장덕일 어르신은 고둥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 외에도 다른 능력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집안에 큰 잔치가 있었는데 이곳에 도둑이 들어서 손님들이 신고 온 구두를 훔쳐갔습니다.

“손님들이 당황도 하고, 화도 내고 그라고 있는데 내가 보니까 한 사람이 눈에 띄더라고. 그 사람한테 가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니 도둑이라. 그래서 내가 점잖게 “신발 어데다 숨겼노. 지금 갖고 오면 조용히 넘어갈끼고, 아니면 서(파출소)에 가자.”하니까 자기는 아니라고 우기는 거라. 내가 보니 도둑이 맞거든. 지금은 술을 하도 마셔서 그렇지만 도사 적에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총기가 있었다. 그때는 누가 안 가르쳐줘도 딱 보면 그런게 다 보였다고. 사람들도 내가 도사고 하니까 내 말을 믿고 도둑도 내 눈을 보니까 안 되겠다 싶었는지 “산에다 숨겼습니다.”하고 자수해가 신발을 찾았다.”

이처럼 대단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지금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서 여쭈어보았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도사한지 3년 쯤 됐을 땐가, 마을에 누가 자기 조상 묘를 이장한다고 하면서 꿈에 나타났던 그 할매 묘를 파간거라. 그때는 비석도 없고 그라니까 누구 묘인지 헷갈리고 그랬거든. 근데 하필이면 우리 할매 묘를 파갔다고. 그라고 부터는 이게(고둥) 효험이 떨어지더라고. 날이 갈수록 더 떨어지고 하니까 치료도 잘 안되고 해가 그만뒀다.”

그 이후로 어르신은 마을로 돌아와서 현재까지 평범하게 살고 계십니다. 다시 고둥으로 치료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장난스런 질문에 “나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약 타러 다닌다.”라며 받아치십니다.

지금도 가끔 어르신을 찾아와 치료를 부탁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어르신은 효험이 예전 같지 않다며 거절하시지만, 손님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손님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물어보시곤 고동으로 정성껏 문지르는데 이때만큼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영험한 고둥도사님의 모습입니다. 고둥을 이용한 치료가 끝나자 어르신은 저희를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저 가서 소주 한 병만 갖고 온나. 여태 못 묵었더니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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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범석 |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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