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에 지신을 밟는 까닭은?

대보름 민속놀이 지신밟기,
현실욕망을 극대화한 잔치마당

 

사람은 놀이를 만들고 놀이는 문화를 고양시킨다. 그것도 일상의 놀이가 아니라 특정의 날에 행해지는 놀이라면 이 의제는 더욱 빛을 달한다. 대보름 놀이를 주목할 때 관심을 끄는 것은 전국적으로 연행되는 ‘지신밟기’이다. 이는 시간에 대한 민속적 인식의 산물이고, 의례적 맥락에서 행해지는 놀이라는 점 때문이다.

 

시간인식의 특별한 범주,
월령을 연행하는 날

 

대보름은 자연적인 시간을 분절시켜 고정한 시간 단위이다. 그러나 월령月令의 순환적 시간에서는 맥락적 의미를 응집한 주기적인 시간의 하나이다. 1월령 내지 정월령으로서의 정점에 닿아있고, 농사력의 일 년 시작으로서 공식적인 출발 선언점이다. 한 해에 보름이 12번 반복되지만 정월 보름을 일러 대보름 또는 한보름이라 한다. 보름 앞에 ‘크다’라는 뜻을 지닌 ‘대’자나 ‘한’자를 붙여 다른 보름과 차별화한 것이다.

월령은 사전적으로 ‘월별月別로 내리는 정치적인 명령命令’이라는 뜻이다.1) 내재적 의미를 감안할 때, 정월령 대보름 민속은 어느 월령 못지않게 당위론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월령을 기준으로 할 때, 특정한 시간(날)은 다달의 특정한 시간(날)으로 인식되고, 이에 대한 차별적 행위를 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월’이라는 특정 시간에서 행해지는 범주를 특정特定한 정월령은 정월의 위계적 질서에 값하는 행위 규범이다. 일 년 열두 달의 월령 중에서 정월령이 차별화되고,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설과 추석과 달리 제 스스로 자생적 전승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시간이 일직선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선험적인 인식을 통해 축적한 민속지식folk knowledge과도 연결된다. 시작과 끝이 있는 단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가지적인 시작에서 끝으로 가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순환론적 인식에서 가능하다. 이로써 시간 민속을 통해 해마다 거듭나는 삶을 살 수 있다.2) 이것은 분명 선언적이고 도발적인 시간 운영방식이다.

 

대보름에 연행되는 여러 민속에서 전국 단위로 펼쳐지는 것이 지신밟기다. 지신밟기는 이런 점에서 ‘대보름’의 시간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놀이형 의례이다. 집터를 지켜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복을 비는 놀이인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기에 걸립·걸궁·고사반·고사풀이·매구埋鬼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고사반告祀盤’은 제물로 차려놓은 고사상을 가리키며, 고사상을 차려놓고 지신의 내력을 풀고 달래며 잡신을 쫓고 복을 비는 축원 덕담을 ‘고사풀이’라 한다. 이는 지신밟기의 한 과정이면서 지신밟기 전반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의 지신밟기에서 ‘고사풀이’는 핵심적인 행위여서 주목할 만하다.

지신밟기는 풍물패에 의해 연행된다. 풍물패는 각종 깃발을 든 기수를 앞세우고 나팔·태평소·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대포수·창부·양반·각시·화동 등의 일정 역할을 연행하는 잡색雜色으로 구성된다. 많게는 40여 명에서 작게는 10여 명이 필요하다. 이들은 악기 연주와 소리는 기본이고, 장구놀이·상쇠놀이·무동놀이 등을 연행하며, 농사풀이·도둑잽이·수박치기와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곁들이기도 한다. 이른바 종합적인 민속예술이요, 신명 나는 잔치굿 마당이다.

이들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집에 거주하는 지신을 밟아 위무하고, 집안의 곳곳에 자리 잡은 신들을 달래면서 한 해가 무탈하기를 빈다. 이때 ‘밟는다’는 것은 현대어로서 어색하지만 대지의 신을 안정시키고, 마을과 집안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소리하며 빌고,
액을 막고 풀어내다

 

대보름 민속놀이 ‘지신밟기’는 의례 행위를 가리키는 통칭이기도 하지만 이때에 불리는 노래 이름 자체가 「지신밟기」이기도 하다. 물론 「액막이 하는 소리」, 「고사요告祀謠」, 「고사풀이」와 같은 지역적인 이름도 쓰인다.
「액막이 하는 소리」는 거듭 닥쳐오는 액운3)을 다달이 치르는 명절로써 막아내고 안녕을 누리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일 년 열두 달의 시간 흐름을 사설 전개의 얼개로 삼는 달거리 방식이다. 이른바 월령체月令體 노래인데, 고려가요 「동동動動」에도 나타날 만큼 아주 오래된 우리의 노래 양식이다.
「지신밟는 노래」의 내용은 마을과 집의 내력을 설명하는 본풀이 및 축원과 함께 액을 막는 ‘액막이’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경기도 화성 지방에서 전승된 「고사요」이다.

 

ee_말따옴표정월이라고 드는 액은 이월이라 초하루날은
나딱[딱따기]으로서 막어내구

이월 한 달 드는 액은 삼월이라 삼진날은
연자일으로다가 막아내구

삼월이라 드는 액은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놀이로 막어내고

경기도 화성 지방에서 전승된 「고사요」 중

 

일 년 열두 달에 들 수 있는 액을 풀어내는 데, 달마다 상응하는 날(이월 초하룻날, 삼월 삼짇날, 사월 초파일 등)의 세시를 활용하고 있고, 이를 월령체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월령에 기반한 일 년의 주기적인 날들을 표지標識로 삼아 한 해를 운영하고 이를 통해 매달에 이미 든 액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노래 가사를 보면 드는 액과 막는 때가 다달이 제시되고, 막는 도구는 매달의 월령을 반영한 것들이다. 막는 도구는 놀이(도구), 절식, 조리기구가 주를 이룬다. 삼월 삼짇날의 경우는 ‘연자일燕子日’인데, 연자일은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데서 붙여진 삼짇날의 이름이니 구체적인 액막이 도구는 ‘제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액이 드는 달과 드는 액을 막는 달의 앞뒤가 바뀌어 있는 듯하다. ‘정월의 액을 2월에 막고, 2월의 액을 3월에 막는 방식’이라는 점은 논리적으로 어긋난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때의 ‘막아내다’는 앞날에 대한 행위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현재의 행위이니 어법상 ‘풀어내다’의 뜻으로 봐야 한다. 이를테면 정월에 든 액을 풀어내고, 그럼으로써 액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방식이다.
경기도 고양에서 전승되고 있는 「고양들소리 고사반」도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드는 액을 막아내는 방식’에서도 조금 다르다. 이는 월령인식을 달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세시를 행하는 지역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ee_말따옴표정월 한 달에 드는 액은 이월이라 한식날 한식차례로 막아내고
이월 한 달에 드는 액은 삼월이라
삼짇날,
강남갔던 제비새끼 명박씨를 물어올제 연자추리로 막아내고
삼월 한 달에 드는 액은 사월이라
초파일
석가여래 공덕장엄 관등불로 막아내고

경기도 고양에서 전승되고 있는 「고양들소리 고사반」 중

 

「고양들소리 고사반」은 「고사요」처럼 월령에 기반한 일 년의 주기적인 날들을 표지로 삼아 한 해를 운영하고 이를 통해 매달 드는 액을 막아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른 사례로 강화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고사반」을 든다. 「강화 고사반」이라 이름한 이 노래는 다른 「고사반」처럼 노래의 서두에 천지개벽과 공간적 좌정처坐定處를 읊고 가정에 들 수 있는 각 달의 액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ee_말따옴표정월달이라 드는 액은 정월이라
대보름날
액막이연으로 날려보내고
이월달에 드는 액은 이월이라
초하루닫이
쥐불놀이로 태워버리네
삼월달이라 드는 액은 삼월이라
삼짇날
화전놀이로 막아내고

강화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강화 고사반」 중

 

「강화 고사반」은 매달 드는 액을 매달에 해당하는 세시와 관련시켜 막아내는 내용을 진술한다. ‘정월달에 드는 액’을 ‘정월 대보름날’의 세시풍속인 ‘액맥이연’으로 막는 방식이다. 이 논리는 다달의 있음직한 문제를 매달에 배치된 월령과 월령의 세부내용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특히 막아내는 방법은 ‘날려 보내고, 태워버리고, 묶어내고, 꾸려내고, 막아내는’ 방법을 취하는데, 이는 각 달의 세시풍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액을 날려 보내는’ 행위는 정월 대보름에 액을 실어 보내는 ‘액막이연’을 가리키는 것이고, ‘태워버리는’ 행위는 초하루의 민속인 ‘쥐불놀이’를 말한다. 쥐불놀이는 보통 정월 대보름에 많이 행하는 민속놀이인데, 강화도에서는 이월 초하루에 하는 것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는 강화 지역의 민속적 개별성에서 비롯된 구현 양상이지 큰 차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달마다의 민속행위가 행해지는 본디의 의례적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강화 고사반」은 매우 구체적인 세시내용을 통해 ‘액막이’를 의도하고 있고, 월령 체계를 분명하게 반영한 노래라 할 수 있다.

 

지신밟기는 욕망달성의
꿈을 반영한다

 

현실문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이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무엇이 걸림돌이 되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더욱 모른다. 이른바 ‘내일은 불확실성을 지닌 불안한 미래’일 뿐이다. 정월 대보름을 맞아 이 같은 불안을 해소하려는 것은 한 해의 시작에 앞선 의지의 표현이다. 집안 곳곳에 자리 잡은 신들을 달래고, 잡귀를 쫓아내고, 또 복을 비는 것은 인간의 현실적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꿈의 행위이다. 행위로서의 지신밟기는, 그래서 노래로서의 고사풀이로 전승되고, 이를 통해서 현실의 욕망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행위적이고 언어적인 선언이다! 비록 사람이 놀이를 만들었지만 놀이가 결국 사람을 만드는 셈이다. 대보름민속 지신밟기가 지닌 무형문화재적 의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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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月令禮記篇名 所以記十二月之政令也. 「楊升菴外集」; 呂不韋月令 自東風解氷 至水澤腹堅 後魏始入曆爲七十二候其所載 與夏小正淮南子時 則訓管子及汲家書 互有出入 朱文公作儀禮經傳通解 備引之. 출처 「詞源」.
2) 고사덕담 또는 지신밟기가 이루어지는 연행환경은 공간과 시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시간상으로는 한 해의 시작에 해당되는 정월 대보름이며, 공간상으로는 방문한 가정의 집이다.
지신밟기의 연행을 통해 “한 해 동안 방문한 집에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액을 막기” 위함이다. 이는 정월 대보름의 지신밟기 현장이라는 한정적인 시간과 공간에 펼쳐놓음으로써 새로 시작하는 일년이라는 시간을 정화하고자 하는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이옥희, 「열두 달을 노래한 민요의 연행 맥락과 시간 의식」, 「한국민요학」 30, 한국민요학회, 2010, 302~303쪽.
3) 액운은 액을 당하는 운수를 말한다. 이때의 厄은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불운인데, 인간에게 병이나 재앙을 가져다 주는 나쁜 기운을 뜻하는 煞과는 다른 개념이다.
살이 공간의 개념이라면 액은 시간의 개념이다(최상일,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2, 돌베개, 2007, 24쪽). 달거리에서 다달이 드는 액을 막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_장장식 |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관

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밀려오는 서구문명에 자아를 상실한 우리민족 에게 우리전통문화 유산을 일깨워주고 정신을 함양하여 주시는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님들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소중한 한민족의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기고 하신 필자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2. 요즘 도시생활에서 정월대보름 민속놀이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기사를 통해 무사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쫓아내는 신명난 정월보름 굿 한판을 보며 우리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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