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눔의 미덕

느리미와 느름적, 산적의 문화

‘산적’하면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 때 꼬치에 길게 끼운 고기, 버섯, 파, 맛살 등을 달걀물에 묻혀 전처럼 기름에 지져내는, 공이 많이 드는 음식을 연상하게 된다. 이런 음식은 엄밀히 말해 ‘지짐느름적’, ‘느름적’ 혹은 ‘누름적’이라 하고, 달걀 옷을 입히지 않고 고기나 해물, 채소를 가늘게 썰어 양념하여 꼬치에 끼워 불 위에서 굽는 법은 산적이라 한다. 산적은 재료가 그대로 보이는 반면, 느름적은 달걀 옷을 입혀 기름에 지졌으니 재료들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산적은 절기에 따라 두릅, 송이, 움파 등 제철 재료를 사용하여 쇠고기와 번갈아 끼워 지진 것이다. 산적처럼 꼬치에 끼운 여러 가지 재료를 서로 붙게 하느라 달걀물이나 밀가루즙을 묻혀 기름에 지진, 조리하기에 편한 방법으로 발전한 것을 느름적이라 볼 수도 있다. 산적과 느름적의 경계를 직화구이와 간접구이의 차이로 볼 수도 있지만 옛날 조리용어에는 느름적보다는 느리미, 누르미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약간의 풀기를 더해 촉촉하게 먹는 ‘느리미’

1800년대 초기 조리서인 《옹희잡지》에는 두 가지를 확실히 구별하고 있다. “염통, 간, 위, 천엽 등 고기를 서로 섞어 대꼬치에 꿴 것을 잡산적이라 하고, 구운 후에 장을 묻힌 것은 장산적이라 하며, 개성인들은 잡산적을 즙재료를 많이 써서 만드는 즙산적이라 한다.”

팬에 지진다고 해서 느리미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재료들을 양념하여 마지막 단계에서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약간의 풀기를 더하는 방식을 느리미라 일컫는다. 이는 중국요리의 탕수육, 난자완즈의 조리법인 류채법녹말풀을 만들어 끼얹어 내는 법의 일종으로, 우리 조리법에는 이렇게 풀기를 더하는 방식이 없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느리미가 바로 가장 대표적인 조리법이라 할 수 있겠다.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도 느리미 음식 등장한다. ‘대구껍질느리미’, ‘동아느리미’, ‘가지느리미’는 재료를 지지거나 구워 마지막에 가루즙을 끼얹는다. 1800년대의 조리서인 《음식방문》, 《주식시의》, 《윤씨음식법》에 기록된 느르미도 가루즙을 끓여 바르거나 담갔다 꺼내는 방법으로 소개하였다. 1800년대까지 등장한 고조리서에 나오는 느리미의 종류로는 ‘동아느르미’, ‘가지느리미’, ‘집느리미’, ‘생치느리미’, ‘제육느리미’, ‘달걀느리미’, ‘게느리미’, ‘낙지느리미’, ‘석이느리미’ 등 다양하다. 느리미처럼 풀기를 주는 이유는 음식이 촉촉하여 마르지 않고 따뜻하게 보온하며 부드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1924년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적 만드는 법’ 항목에 누름적이라고 하고 누르미와 화양적을 같이 표기하면서 이 음식들을 하나로 보고 재료를 꼬치에 끼워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묻혀 지지는 법으로 소개하였다. 느리미가 없어지고 느름적의 형태로 바뀐 이유는 기름과 달걀을 넉넉히 사용하게 되니 옷을 전체에 입혀 누릇한 색과 기름의 고소한 맛을 더 즐기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느르미라는 음식의 조리법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시기를 알 수 없는 고조리서의 경우 이 음식의 조리법을 바탕으로 책의 집필시기를 추정하기도 한다. 느리미처럼 걸죽한 즙을 넣어 만드는 조리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구찜이나 미더덕찜처럼 콩나물을 많이 넣고 맵게 하여 마지막에 찹쌀풀이나 녹말풀을 넣어 전체를 어우러지게 만드는 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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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굽거나 작고 다채롭게 굽거나 ‘적’

‘적’은 굽는다는 뜻으로 제사상에서 적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쇠고기를 두툼하고 넓적하게 썰어 양념에 재웠다가 굽는 ‘우적’과 닭이나 꿩을 통째로 넓적하게 펴서 기름장에 발라 굽는 ‘봉적’, ‘생치적’이 있으며, 생선을 통째로 굽는 ‘어적’이 있는데 이를 ‘삼적’이라 한다. 제기틀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다진 고기를 양념하여 한 덩이로 만들고 얇게 펴서 잔칼질을 많이 한 후에 구워서 맨 위에 덮듯이 올린다. 다시 말해 적은 육류, 조류, 어류를 각각 통째로 구워낸 것을 말한다. 그밖에 두부를 크게 해서 지진 것은 ‘두부적’, 채소나 다시마를 밀가루즙에 묻혀 지진 것은 ‘소적’이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정음식이나 잔치음식에서의 적은 많은 사람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작게 자른 재료를 골고루 꼬치에 끼워 굽거나 지져 내놓는다. 적은 대개 고기로 만든 것이기에 맛난 고기음식을 동시에 골고루 나눌 수 있게 만든 배려의 음식이다.

1700년대 초반의 궁중 잔치에는 어음적이란 음식이 나오는데, 생복, 낙지, 달걀, 천엽, 양이 재료가 되어 있다. 이후에는 어음적의 명칭이 화양적으로 바뀌면서 생선, 전복, 낙지, 양, 천엽, 동아 등이 주재료로 쓰였다.

1795년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수원 화성에 8일 동안 행차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진찬시 내외빈과 제신들에게 차린 잔칫상에 모두 떡, 면, 약과, 과일과 함께 화양적이 들어가 있다. 화양적은 일종의 산적이다. 제육, 도라지, 파, 참기름, 밀가루, 석이, 표고버섯, 계란, 소금, 간장의 재료가 들어간다고 하였다. 조리법을 짐작하건대 고기, 채소, 버섯을 양념하여 끼운 후 밀가루즙을 묻혀 지져낸 뒤 달걀과 석이버섯을 채 썰어 고명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산적으로 나타나는 예는 1868년 잔치에서 여령들과 악공들을 위한 밤참에 떡국, 과일과 함께 산적 400꼬치를 제공하였고, 1873년 잔치에는 외빈을 위한 상에도 백반밥, 국, 침채김치와 같이 산적을 올린 예가 있다.

선조들은 느름적이나 산적처럼 힘이나 노력이 많이 드는 음식에 대해 귀찮게 여기지 않으며 정성을 다하여 골고루 나누어 먹게 하고픈 마음을 전했다. 산적, 느름적의 조리법 변화를 보며 나눔의 미덕을 새삼 느껴 본다.

글_ 한복려 | 궁중음식연구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기능보유자. 궁중음식 연구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식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 하는 것에서 사람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기며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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