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주는 다정한 위로,
나의 부엉이 인형들

전시도록 <작은 나라 큰 세상, 인형>

‘부엉이를 좋아해?’
부엉이를 좋아하는 것을 특이하다고 말하던 주변사람들이
‘네 말을 듣고 나니 부엉이가 자주 보인다’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다.
모르면 보이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그 다음부터 보인다.
그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통의 마음, ‘인지상정’이다.

이 보통의 마음은
누군가의 취향을 기억하게 하고, 그 취향을 공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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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지 않은, 그러나 그럴싸한 말들

설거지 거리를 남기고 자면 다음날 근심이 생긴다. 젖은 옷을 입고 다니면 억울한 일이 생긴다. 밥 먹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가난하게 산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 밤에 손발톱을 깎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 빗자루를 침대에 기대 놓으면 빗자루 귀신이 침대에 주문을 건다. 베개를 밟으면 부모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베개를 세우면 밤에 도둑이 든다. 문지방을 밟으면 논두렁 무너지고 복 나간다. 누군가가 잘 때 얼굴에 낙서하면 영혼이 돌아오지 못한다. 무덤의 수를 세면 안 된다. 정오가 되기 전에 꿈 이야기를 하면 좋은 꿈은 날아가고, 나쁜 꿈은 현실이 된다. 남이 빚은 반죽에 소를 넣으면 내가 살아갈 시간을 주는 셈이다. 이불 뒤집어 덮으면 팔자 뒤집힌다. 숟가락 젓가락 한 손에 쥐면 가난해진다. 안방에 시계나 그림을 너무 많이 걸면 사람이 피곤해진다. 입 방정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침대와 거울을 마주 걸어 자는 모습을 보면 운이 닳는다. 누워있는 아이 위로 지나가면 아이 키가 잘 자라지 않는다. 후춧가루를 흘리면 제일 친한 친구와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밝은 대낮에 올빼미를 보면 액운이 닥친다.

내가 아는 일상 속신을 적어 보았다. 나는 14살 이후로 계단의 수를 절대 세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둘이 남아 책을 읽다가 어둑해져서야 교실 밖 계단을 내려오던 길, “4층서부터 계단이 몇 개인 줄 알게 되면 단짝 친구가 죽는대. OO 알지? 걔가 계단 세다가 무서워서 멈췄는데 단짝 친구 사고 나서 학교 못나오잖아.” 라던 말도 안 되는 친구의 괴담 덕분이다. 그 후로 나는 계단을 보면 의식적으로 딴 생각을 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밋밋한 일상에 ‘간’을 맞춰준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을 하면 — 이렇게 된다’ 라는 식의 속신의 협박은 때론 공포스럽다.

다리 떠는 옆 사람의 허벅지를 잡으며 “복 나가요.” 말 한마디 안 해본 사람 있을까. 빨간색으로 사람 이름 적지 않으려 애쓰던 유년의 금기 없는 이 있을까. 아파트 14층에 살면서도 밤에 휘파람 부는 이에게 “뱀 나와요.” 말 안 할 사람 있을까. 모두 왠지 그럴싸해 보이는 말들이다.

남이 말할 땐 그런걸 누가 믿냐 하다가도 문득 밤에 손톱 깎으려다가 손이 멎는다. 지금껏 밤에도 잘 깎아오던 손톱을 “밤엔 몸에 모든 기가 사지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손톱 발톱에 모이는데, 그걸 깎으면 안 좋대.”라는 친구의 말을 들은 후, 더 이상 밤에는 깎지 않는다.

‘한 번도 안 걸려본 감기’라고 말한 다음날 감기에 걸리고, ‘차 안 막히네’라고 말한 이후 줄곧 걸리는 신호 체계는 사실, 단순히 그럴 수 밖에 없는 시간의 문제지만 결국은 입이 방정인 내 탓인 것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들

이쯤 되면 주변에서 부적이라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법 한데, 사실은 진짜 들고 다닌다. 용한 점쟁이가 내 사주와 액땜을 위해 만들어준 그런 부적은 아니고, 작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중국인 거리의 부엉이 가게에서 손에 넣었던 부엉이가 그려진 종이이다. 그것도 아버님 생신 즈음, 노인정 어르신들에게 선물할 점잖은 부엉이 수저 세트를 몇 개 구입하고 받은.

“부엉이는 중국에서 ‘묘두응猫頭鷹’이라고 불러요. 고양이 얼굴을 닮은 매라는 뜻이죠. 고양이 ‘묘’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자와 음이 비슷해 장수를 상징해요. 어른들에게 좋은 선물 될 겁니다.”

점원의 설명에 부엉이가 장수를 상징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까닭은 알지 못했기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인사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당신은 부엉이를 닮았는데, 너무 피곤하고 아파 보이네요.”라며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부엉이가 포근하게 잠들어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빙그레,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그녀는 이 그림을 지니고 있으면 꼭 잠이 필요한 순간에 잠들 수 있을 거라고, 마치 처방전을 내려주는 의사처럼 진중하게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림을 마치 은밀한 무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지갑 깊숙이 넣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솔직히 불면증은 여전하긴 하지만, 문득 한잠 푹 잠들었다 깨면 혹시 지갑 속 부엉이의 효력은 아닐까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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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행복, 긍정의 다른 말, 나의 ‘부엉이’들

“결혼을 앞두었던 무렵, 어느날 저녁에 부엉이를 우연히 보게 되었거든요. 부엉이를 실제로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는데 그 기운이 참 묘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남자 부엉이와 여자 부엉이는 만나면 평생 헤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같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런 의미로 부엉이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부엉이를 왜 좋아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늘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 그날 부엉이를 보았다는 말에 동네 어르신이 “해 지기 전에 올빼미를 본 거야? 낮에 올빼미 보면 안 좋아. 결혼도 앞둔 사람이. 소금 뿌려야겠네!”라며 굵은 소금을 집어다 여기저기에 뿌려주셨다. 올빼미를 본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의 나는 그 소금을 맞는 일이 더 기분 나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밝은 대낮에 올빼미를 보면 액운이 닥친다’라는 말과 함께 ‘부엉이 부부는 평생을 헤어지지 않고 산다’는 말을 발견했고, 더불어 내가 마주한 것은 ‘올빼미’가 아니라 ‘부엉이’였음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머리에 깃이 뾰족하게 올라와 있는 것은 부엉이, 둥글둥글하기만 한 것은 올빼미. 나는 마치 시한부 진단이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 사람처럼 뛸 듯 기뻤다.

그때부터였다. 부엉이가 내게 각별해진 것은.

여전히 나는 일상 속신의 금기 속에서 벌벌 떨거나, 감정 손해 보는 날들을 지내고 있지만 내겐 일상에 용기가 되어줄 ‘부엉이’들이 있다. 동네 어르신이 나에게 뿌리던 그 굵은 소금처럼, 브라질 우유니 소금사막 소금결정체로 만든 ‘소금부엉이’는 마음이 힘들 때에 곁에 챙겨 두곤 한다. 올 해 초, 잘 끓인 떡국에 한바탕 쏟아진 후추를 보며 ‘다행히 그릇 안에 쏟아졌으니 올 한해는 친구들과의 싸움 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만 가득하겠네’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를 보며 내 많은 부엉이들과 함께 웃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희망을 꿈꾸며 파랑새를 찾아 다녔다면, 밤삼킨별 나에게는 일상 속신을 멋지게 해몽해 줄 부엉이가 있다. 일상과 세상을 여행하며 만난 부엉이가. 가장 추운 도시에서 데려온 비에이 부엉이는 내 인생의 모든 겨울마다 함께 다정히 여행해 줄 것이다.

| 전시도록 <작은나라 큰 세상, 인형> – PDF
글·사진_ 김효정 | 밤삼킨별
전 세계를 다니며 ‘출장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사진작가이자 따뜻한 손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퍼. 전세계를 다니며 모은 부엉이 인형을 모아 부엉이 방을 만든 부엉이 중독자. 이 모든 것을 ‘밤삼킨별’ 필명에 담아 글과 사진과 손글씨로 감성을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래에서 기다릴게>, <당신에게 힘을 보낼게 반짝>, 한국판 킨포크 <더노크>, 포토다이어리 시리즈 <동경맑음> <파리그라피> <힐링 핀란드> 등이 있다.
blog.naver.com/bamsamkin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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