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까지 김장을 할까?

김장 문화

‘김장’이란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많은 양의 김치를 미리 담그는 일,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를 의미한다. 삼동三冬을 나는 겨울채비인데, 이를 통해 한겨울 각종 채소가 나지 않을 때에도 채소를 먹을 수 있었으며, 가을철 수확한 채소도 잘 갈무리하여 저장할 수 있었다. 김장은 ‘침장沈藏’ ‘진장陳藏, 珍藏’, ‘짐장’이라고도 한다. 시대에 따른 변화는 있었을지라도 아직도 여전히 한국인의 생활풍속을 보여주는 가정의 큰 연중행사이다.

 

긴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만의 방법
‘배추 150포기’

김장철은 주로 ‘입동立冬’을 전후해서 시작되는데, 《동국세시기》에는 ‘입동’이 드는 음력 10월에 김장풍속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도 ‘입동’의 연관검색어로 ‘김장’이 뜰 정도이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것을 알리는 ‘입동’이니, 겨우살이 준비를 시작하라고 알리는 것이다. 김장철이 되면 언론 등에서는 앞다투어 올해 김장 재료로 쓰일 무, 배추나 고추, 마늘, 생강, 파, 굴 등의 시세나 이들의 운송 및 배급 등 김장 관련 정보를 보도하고, ‘김장 적정 시기’ 알려주는 김장예보를 한다. 김장김치는 4~5℃ 정도의 일정 온도에서 잘 저장되어야 그 맛이 좋기 때문에, 김장 후 날씨가 따뜻하면 너무 빨리 익어 겨우내 맛있는 김치를 먹기 어렵고, 너무 추우면 힘들게 담은 김장김치가 얼어버릴 테니 날씨예보에 맞춰 김장 날을 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배추와 무를 산처럼 쌓아 올려놓고 파는 김장시장이 서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김장철이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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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김장’을 통해 한겨울에도 채소를 먹을 수 있었고, 수확물을 저장해 둘 수도 있었다.
김장 김치는 “겨울의 반식량半食糧”이었으니, 겨우내 3~4개월동안 밥상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많은 양의 김치를 담가야 하였다. 보통 배추 100~150통을 담갔으나 그 양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1921년 11월 8일자 동아일보에는 ‘今日금일은 立冬입동 시급한 보리망종 급박한 진장준비’라는 제목의 기사에 “겨을량식으로 중대한 진장도 립동전후에는 하여야 되는 것이니 이제 경성시내의 진장시세를 대개 소개하면 배차 백통 보통 오원, 무 한섬 보통 일원오십전이라하며”라 하여, 입동전후가 적절한 김장철임을 알리고 있다. 또한 배추 100통 정도가 김장량의 기본단위가 되고 있는데, 이로부터 50년이 지난 1971년 10월 21일자 매일경제 기사 ‘걱정 덜게 된 김장經費경비’에는 “5人家族인가족을 위한 凖備준비가이드 1만 3천 원정도면 無難무난 배추 50통 무우 1백50개로 금년 추위는 예년보다 20일이나 앞당겨 기습할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11월초부터는…” 거의 50년만에 김장량 단위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김장김치는 배추 통김치, 석박지, 짠지, 동치미, 깍두기 등과 고들빼기김치, 파김치, 갓김치 등의 별미김치를 담는다. 보통 김치보다 양념을 많이 쓰며 간이 세다. 주로 배추통김치를 담그는데, 익으려면 3주 이상 걸린다. 익기 전에 김장김치를 덜어내 먹으면 맛도 적을 뿐만 아니라, 덜어낼 때 공기가 들어가면서 김치의 발효숙성이 방해되어, 맛도 저장성도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선조들은 ‘지레김장’ 또는 ‘애벌김장’을 담가 김장김치의 맛을 유지하고 저장 효율도 높이고자 하였다. 11월 초순에 미리 총각김치나 별미김치 등을 지레김장으로 담근다. 지레김장은 본김장 김치가 익기 전에 미리 먹을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으로, 김장김치를 먹기 전 지레 먹는다 하여, ‘지레김치’ 또는 ‘지럼김치’ 또는 ‘질엄김치’로 부른다. 지레김장을 담그면 본김장은 11월말부터 12월초순까지 담근다. 때로는 김장날 ‘석박지’를 담거나, 김장하고 남은 허드레 배추, 무 등으로 만든 ‘허드레김치’, 빨리 숙성되는 파김치 등의 별미김치를 지레김치로 먹기도 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발이 척척 ‘김장 품앗이’

김장김치를 대량으로 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재료도 많고 공간도 필요하며, 일손도 많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생긴 풍속이 ‘김장품앗이’이다. 한 마을에 사는 가구당 순서를 정하여 품앗이로 김장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경기도 한 농가의 김장을 조사한 적이 있다. 마당에 10여 명의 주부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한 편에서는 깍두기 무를 썰고 다른 쪽에서는 무채를 고춧가루 등으로 버무려 김치소를 만들고, 한쪽에서는 절인 배추를 씻어서 채반에 널어 물을 빼는 분업의 현장이었다. 누가 뭐라 시킬 것도 없이 알아서 척척 김장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초보 주부였던 필자는 자연스러운 김장 과정이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오랫동안 김장을 해온 경륜이 쌓인 결과였다. 함께 온 아이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인 배추 고갱이에 김치소를 올려 ‘배추속대쌈’을 먹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니 김장 당사자인 주부는 부엌으로 들어가 김장을 도와주러 오신 분들께 대접할 음식을 만들었다. 추운 겨울에 마당에서 김장하느라 꽁꽁 언 몸을 따스하게 녹여줄 ‘배추된장국’에, 돼지고기를 삶아 ‘제육편육’을 만들고, 배추속대와 김치소, 마늘, 파, 돼지고기, 새우젓 등을 넣어 ‘배추속대찌개’를 준비하였다. 1년에 한번 먹는 찌개라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게다가 준비한 김장재료로 만든 것이니 조리과정도 간편하고, 참으로 합리적인 음식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김장김치는 차곡차곡 항아리에 담아 김치광에 보관하였으며, 자녀들에게 택배로 보내 줄 김치들은 작은 플라스틱 김치통에 담기어 줄지어 있었다. 배추통김치 1통씩은 비닐봉지에 담겨,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의 손에 하나씩 쥐어졌다. 김장김치를 담그고 가족과 친척, 이웃 등과 나누는 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얼마나 ‘정’이 넘치는 김장풍속인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곤 한다. 2013년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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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담그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엽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김장, 가족을 위한 나눔에서
사회를 위한 나눔이 되다

오늘날 김장풍속은 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사시사철 나는 채소, 김치전용 냉장고의 발달, 달라진 주거생활, 핵가족화 등 달라진 변화상들 때문이다. 흔히 김장김치는 중간 정도 크기의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거나, 김치광에 넣어 저장을 하였다. 아파트로 주거생활이 변화되면서, 땅에 묻을 수 없으니, 보냉이 잘되는 ‘플라스틱제 김치독’을 만들거나, 땅 속 환경을 제공하는 ‘김칫독 싸개’를 만들어 저장을 하였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냉장고용 스테인레스 김치통이 나오다가 급기야는 김치전용 냉장고의 발달까지 가져왔다.

1960년대부터는 김장에 쓰일 무채도 채칼로 쓰는 가정도 늘었고, 고춧가루 때문에 화끈화끈한 손을 보호해주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거나 플라스틱, 혹은 고무 함지를 이용하는 등 김장의 모습도 바뀌어갔다. 1980년대부터는 공장에서 김치가 생산되면서 김장김치도 배달해주는 시대가 열리고, 1982년 이후로 절임배추나 배추소 등의 재료가 판매되거나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인스턴트김장’의 시대로 들어섰다. 겨우내 김장김치만 먹던 한국인에게 이제 겨울에도 신선하고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해먹을 수도 사먹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김장도 담그기 편해졌고, 겨울이라도 다양한 채소를 먹을 수 있으며, 전국 각 지역의 특별한 별미김치도 주문하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주문김장’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이런 변화는 김장 배추의 양도 줄이게 됐고, 심지어 김장을 담그지 않는 것을 빗댄 ‘김포족’이란 신조어처럼 여러 이유로 김장을 포기한 가정조차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김장풍속이 사라질까? 대답은 ‘아니다’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들이 김장김치를 어디에서든 먹을 것이기 때문이며, 알싸한 김장김치의 맛은 추억이 되어 올해는 김장을 포기하였어도 내년에는 시도해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가 가졌던 김장의 추억을 가족들과 함께 가졌으면 한다. 요즘에도 여전히 방송에서는 김장정보 프로그램이 많고, 주부들의 관심사 1위가 ‘김장’이라는 보도 등을 보면 2016년에도 김장은 여전히 ‘가정’의 큰 행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요즘, 1970년대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사 제목들이 눈에 띈다. 바로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가족 등과 나누었던 정을 ‘지역사회’ 또는 ‘단체’ 등의 활동을 통해 소외계층과 나누고 있다. ‘가정’의 연중행사가 ‘사회’의 행사로 확대 변화하며 김장풍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장풍속에 담긴 따스한 ‘정’을 나누는 것은 모양은 바뀌었지만 가족보다는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글_ 정현미 |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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