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전차’의 등장

강 건너 영등포엔 불빛만 아련한데
저 멀리 당인리의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 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1960년대 은방울자매의 히트곡 <마포종점>의 가사 일부다. 여기서 말하는 ‘마포종점’은 20세기 서울 도심을 달렸던 노면 전차 서대문~마포 노선의 종점을 가리킨다. 전차電車라는 것이 있었다. 전기를 이용해 노면의 궤도를 달리는 교통수단, 전차. 지금은 사라졌지만 전차는 20세기 도시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수단이었다.
 

마차와 인력거가 전부인 서울 거리에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가 등장하다

 
우리나라 전차의 역사는 1899년광무 3년 5월 17일, 서울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구간이 개통되면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1899년 개통되었고, 자동차가 1900∼1901년경 들어왔으니 이보다 앞서 등장한 전차는 근대 대중교통의 혁명이라 말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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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종로 등지를 다니는 전차의 모습이 담긴 일제강점기 당시의 우편엽서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전차가 처음 도입된 배경에는 명성황후에 대한 고종의 애틋한 사랑이 배어 있다. 고종은 청량리에 있는 명성황후의 무덤홍릉을 자주 찾았다. 그러나 행차로 인한 비용 부담과 번거로움이 뒤따르자 황실은 고민에 빠졌다.
 
한성전기회사의 실질적 운영자였던 미국인 콜브란이 황실의 고민을 알아채고, 고종에게 전차의 편리함을 강조하면서 전차 도입을 제안했다. 고종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1898년 9월 공사가 시작됐다. 기공식은 서울 경희궁 앞에서 열렸다.
 

1899년 공사가 마무리되고 공식 운행에 앞서 콜브란은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 초청장엔 ‘대중이 익숙해질 때까지 전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5마일8㎞로 운행할 것이며, 그 뒤로도 시속 15마일24㎞은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교통수단이라곤 마차와 인력거가 주종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전차 운행은 충격이었다. 전기에 의해 차가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일정한 선로를 따라 정해진 구간을 오간다는 점, 남녀노소가 같은 객차 안에 한데 뒤섞여 있어야 한다는 점 등등이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일대 사건이었다. 전차를 도깨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처음엔 정거장도 없었다.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들면 전차가 서곤 했다. 개통 석 달이 지나서야 승차권 제도와 매표소가 생겼다. 요금은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상등칸은 3전5푼, 하등칸은 1전5푼이었고, 5세 이하는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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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5월 1일부터 말일까지 사용할 수 있던 전차 통학 정기 승차권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끊이지 않는 전차 사고,
흉흉한 민심에 기름을 붓다

 
불상사도 적지 않았다. 개통 얼마 전 공중에 매달아 놓은 송전선 12m가 절단돼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두 명은 재판도 없이 즉각 참형에 처해졌다. 개통되고 열흘이 지나 탑골공원 앞에선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전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마침 민심이 흉흉할 때였다. 가뭄이 심할 때였는데, 그 가뭄이 전차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전차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던 터에 전차 사고로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으니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노한 군중은 일본인 운전사를 폭행하고 전차 두 량을 불태웠다. 놀란 일본인 운전사들이 “호신용 권총 착용, 경찰 동승”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석 달 동안 전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특히 술에 취해 전차 선로를 베고 잠을 자다 화를 당하는 사고가 많았다. 1929년 4월 22일엔 진명여고 학생 120명을 태운 전차가 과속으로 달리다 전복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2일 오전 9시 반 경,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3~4학년생 백여 명을 태우고 적선동 전차 정류장을 떠나 십자각의 커브를 돌던 효자동 남대문간 통행 제162호 전차가 돌연 탈선 전복되어 칠십여 명의 중경상자를 내어 조선에서 일어난 전차 사고로는 처음 보는 일대 참극을 연출하였는데 중상을 당하여 선혈에 젖은 부상자 중 세 사람은 생명이 위독하다.
전복된 전차를 운전하던 운전수 석갑동은 지난 15일에 운전 자격을 얻은 사람으로 경험이 적고 운전술이 능란치 못하였으므로 전복 원인에는 그것이 유력하나 운전수가 혼수상태라 전복 찰나의 상황에 대한 진상은 아직 판명되지 못하였다. 전복되는 광경을 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전차가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속력을 내 달렸다 함으로 전기회사의 책임 문제가 크겠다더라.
<동아일보 1929년 4월 23일 자>

 
이러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용산 의주로 마포 왕십리 등 서울 도심 곳곳으로 노선이 연장됐고 이 덕분에 전차는 서울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때, 전차는 일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승객이 늘어나면서 전차 노선 주변에 요리집이 등장했고, 전차 타고 활동사진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이 생겼다. 여가 생활의 변화였다. 부작용도 있었다. 일제는 전차 노선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경복궁의 동십자각, 서십자각을 비롯해 한양도성을 파괴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전차가 다녔다. 부산지역의 전차는 1915년 11월 1일 개통되었다. 개통 당시엔 부산역~온천장 구간을 운행했고 이후 전차 노선은 시내순환선 등 3개로 늘어났다.
 
 

서울시민들의 발이 되어준 전차
1968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다

 
그러나 1950~60년대 들어 버스의 편리함이 부각되면서 전차의 위상이 흔들렸다.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는 전차는 버스의 장애물로 변해갔다. 시설도 노후해졌고 승객이 줄면서 적자가 늘었다. 결국 1968년 11월 29일, 종로행 왕십리발 전차를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전차는 사라졌다. 부산에서도 1968년 5월 19일까지만 전차가 운행되고 이후 운행이 중단되었다.
 

전차 안녕 목메인 “종점입니다” 마지막 주자 303호
70년동안 시민의 발노릇을 해왔던 서울의 전차가 29일 밤 걸음을 멈췄다. 구한말 새 시대의 새 교통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던 전차가 이제 자동차 교통의 장애물로 몰려 교통의 뒤안자리에 물러서게 된 것이다.
<동아일보 1968년 11월 30일 자>

 
사라진 전차. 그 흔적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서울의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어린이과학관, 부산의 동아대석당박물관에 가면 예전에 노면궤도를 달렸던 전차 실물을 만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에는 옛 전차를 실물 그대로 복원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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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의 전차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의 중심을 운행하던 것을 재현한 것이다.

 
현재 국립어린이과학관에 있는 전차전차 363호와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전차전차 381호는 모두 1930년대 일본의 일본차량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1968년까지 서울 시내를 운행하던 전차였다. 동아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산 전차는 1927년 미국 신시네티에서 제작해 애틀랜타에서 운행했던 것으로, 1952년 미국의 원조기구를 통해 이 땅에 들어왔다. 중고 전차를 우리가 기증받아 사용했던 셈이다. 부산 전차는 그 이전 모습을 수리해 비교적 깨끗하고 깔끔하다. 좌석이 순방향 역방향으로 절반씩 되어 있다. 서로 마주보고 일렬로 앉은 일본제 서울 전차와 좌석 배치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1968년 서울과 부산에서 전차가 모두 사라졌으니 이제 50년이 다 되어 간다. 세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전차 하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현재 남아있는 전차가 3량에 불과해 아쉽긴 하지만, 그것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자주 찾았으면 좋겠다.

 

글_ 이광표 | 동아일보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홍익대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했다. 저서로 《사진으로 보는 북한의 문화유산》, 《국보 이야기》, 《손 안의 박물관》 등이 있으며, 《영혼의 새》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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